[송영대 칼럼] 러시아 가스관과 북의 불가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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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최근 러시아 방문을 통해 러시아 가스관의 북한 통과문제가 내외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김정일과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24일, 정상회담에서 사할린 지역의 가스를 북한지역을 통과해 남한으로 보내는 가스관 건설을 위한 특별위원회 발족에 합의했습니다. 이 가스관 건설은 2008년 남한과 러시아 두 정상 간에 합의했지만 지금까지 진척이 없었던 사업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과 러시아간에 합의된 가스관이 연결될 경우, 북한은 가스관 통과국으로써 앉아서 연간 1억 달러 이상의 통과료를 챙길 수 있고, 러시아는 향후 30년간 안정된 시장을 확보함으로써 900억 달러에 이르는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남한 정부도 현재 전량을 동남아 또는 러시아로부터 수입하는 천연가스를 가스관을 통해 공급받게 되면 연간 5,000억 원에서 1조원 정도의 수입비용을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가스관 사업은 세 나라 모두에게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되는 사업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이 사업은 본질적으로 경제적 사업이기 전에 정치적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사업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세계적인 추세를 볼 때 천연가스공급의 25%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는 유럽연합은 2000년 이후 두 차례나 가스관 통과국인 우크라이나에 의해 야기된 가스공급 중단으로 심각한 에너지 위기를 겪었습니다. 또 남미에서도 볼리비아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가스관 경로를 둘러싸고 볼리비아는 칠레, 아르헨티나와 첨예한 분쟁을 겪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북한이라 해서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북한이 정치, 군사적 의도로 가스관을 차단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대남사업에서 남한 측이 자기들 뜻대로 따라오지 않을 경우 가스관을 잠갔다가 열었다 하는 장난을 침으로써 에너지를 무기로 전략적 지렛대를 갖게 될 것입니다. 가장 큰 난관은 북핵문제 해결입니다. 핵무기를 체제생존의 절대 수단으로 생각하는 북한과 핵을 기필코 포기하게 만들려는 미국, 남한 등 유관국 사이에 6자회담을 재개한다 하더라도 접점을 찾기는 매우 어려워 보입니다. 따라서 그 과정에서 갈등과 긴장이 재발할 경우, 북한은 남한에 대해 가스관이라는 지렛대를 갖고 좌지우지 하려들 것입니다. 이와 관련, 어떤 사람들은 러시아가 참여한 사업이기 때문에 북한 마음대로는 하지 못할 것이라는 낙관론을 말하지만 과거 경수로사업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경수로사업은 1994년 북한과 미국의 제네바합의에 의해 시작된 사업으로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신 남한, 미국, 일본 세 나라가 함경남도 금호지구에 경수로 원자력발전소 2기를 건설하는 사업이었습니다. 그러나 2000년 2월 시작된 이 사업은 2년 후 북한의 핵개발 의혹이 다시 제기되면서 중단되었습니다. 요컨대 북한은 남한 외에 다른 외국이 참여했다고 해서 약속을 지키는 집단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중국에 이어 러시아를 향해 신예 전투기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한데서도 알 수 있듯이 북한의 모험주의와 불가측성이 가스관 사업에서 최대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