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남한 정부의 대북 원칙론을 연일 비난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노동신문 등을 통해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북남 공동선언에 도전하는 극악한 반(反)평화론, 북침전쟁론이라는 비난을 퍼붓고 있습니다. 북한은 ‘최근 모처럼 마련됐던 북남대화가 중단되고 인도주의 협력사업이 연기된 것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라 반민족적이며 반통일적인 남한 당국의 원칙론이 몰아온 필연적 결과’라고 비난했습니다.
이어 북한은 ‘6.15공동 선언과 10.4선언을 외면하면서 어느 일방의 원칙을 고집하는 반통일행위가 북남관계에 얼마나 엄중한 후과를 가져오는가를 똑똑히 보여준다.’고 주장했습니다. 남한 정부의 대북원칙론은 남북 간 신뢰회복을 위해 대화와 대북 인도적 지원은 계속하겠지만 북한의 도발과 핵무기 개발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해 나가는 것을 기본으로 삼고 있습니다. 즉 북한의 태도에 따라 대화와 압박이라는 두 가지 수단을 병행해 사용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부관계 개선을 위해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정책이라는 평가를 국내외적으로 받고 있어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일관되게 추진해온 정책입니다.
그런데 북한이 지난달 이산가족상봉 연기하면서 남한 정부의 대북원칙론에 대한 비난을 강화한 것은 일차적으로 이산가족상봉 연기 책임을 남측에 전가시키려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지난달 25일로 예정된 이산가족 상봉을 돌연 무기 연기시킨 것은 바로 북한당국입니다. 상봉을 연기시킨 이유도 인도주의와는 무관한 남한 내 이석기의 내란음모사건 등 정치적 이유를 내세웠습니다. 그럼에도 상봉 무산에 관한 대북 비난여론이 국내외적으로 쏟아지자 그 책임 모면을 위해 남한정부의 원칙론에 대한 비판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이는 마치 도적이 매를 드는 것과도 같은 적반하장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북한이 6.15선언과 10.4선언 이행을 강조하고 나온 배경에도 불순한 의도가 깔려있습니다. 6.15선언에 연합 ․ 연방제 통일과 경제협력 등의 내용은 포함돼 있지만 남북 간에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북한 핵문제 등 평화정착에 관한 조항은 누락돼있어 반쪽짜리 합의에 불과합니다. 또 10.4선언도 북한의 기간산업 건설을 위한 남한의 대규모 경제지원과 함께 북방한계선(N.L.L)의 무효를 전제로 하는 사업 내용들이 들어있어 한반도 평화 위협요인으로 지적돼 왔습니다.
이와 함께 합의서 채택 당시 10.4선언의 서명자였던 남한 노무현 대통령의 북방한계선 무시 발언으로 남한내부에서 국론분열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북한이 이제 와서 10.4선언 이행을 다시 들고 나온 것은 남한 내부의 분열을 겨냥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남북한은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에 서명, 발효시켰습니다. 남북평화공존의 장전(章典)이라고 불리는 남북기본합의서를 북한이 제대로 이행했다면 지금쯤 남북관계는 통일의 문턱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훌륭한 합의서마저 휴지조각으로 만든 북한이 책임을 느끼기는커녕, 문제투성이의 6.15선언과 10.4선언을 거론하는 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