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북한에 대해 구상한 금융 제재의 윤곽이 드러났습니다. 국무부의 로버트 아인혼 대북한 /이란 제재 조정관은 2일 서울에서 북한을 겨냥한 새 제재의 내용을 밝혔습니다. 이번의 대북 제재는 지도부에 정밀한 타격을 주는 효과를 지녔다고 보입니다. 이는 법률보다 하위 단계여서 철회가 가능한 행정명령으로 시행됩니다. 따라서 미국은 유연성을 보이며 북한에 대화의 길을 열어 놓았다는 평가도 받습니다. 이에 관한 내용을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앵커: 미국 국무부의 아인혼 대북한/이란 제재 조정관이 서울을 방문해서 밝힌 추가적인 대북 금융 제재의 틀은 어떤 구조를 갖고 있나요?
기자: 미국의 새 대북 금융 제재는 행정명령의 형태로 추진되며 한마디로 '대북 규제의 집대성' 으로 말할 수가 있습니다. 미국 정부가 그간 여러 모법과 시행령으로 흩어져 있던 대북 제재에 관한 규정을 한곳에 모아서 정리한다는 데에 의미가 있습니다. 대량살상무기(WMD)와 대테러 규정은 정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새 행정명령은 WMD와 대테러 활동에 초점을 맞췄던 기존의 제재 체제를 보완하면서 재래식 무기 거래/사치품 수입/위폐 통용/마약 거래/가짜 담배 거래/돈 세탁 등의 '불법 행위'를 조준하고 있습니다. 위에 나온 위폐는 북한에서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짜100달러 짜리 화폐인 '슈퍼노트'를 말합니다. 이 행정명령은 WMD 확산과 대테러 활동과 관련한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 1718호/1874호와 미국 행정부의 행정명령 13382호에 이어 더욱 구체적인 내용을 지녀 북한의 돈줄을 한층 더 조이는 역할을 한다고 전망됩니다.
앵커: 미국이 행정명령의 형태로 추진 중인 대북 금융 제재는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까?
기자: 미국의 대북 제재는 필립 크롤리 국무부 공보 차관보가 밝힌 대로 '맞춤형'이라는 특징을 지녔으며 세 가지 주안점이 있습니다. 우선 1) 2단계 제재 2)제재 대상의 특화 3)북한 지도부에 대한 정조준입니다. 미국 정부는 재래식 무기/사치품/마약/위폐/가짜 담배 등의 거래에 연관된 북한의 기업/기관/개인을 지정합니다. 이어 미국 법인/개인과 거래 제한, 미국 내의 자산 동결, 여행 금지 등의 조치를 취합니다. 또한 추가 대상이 겨냥한 대상은 WMD 이외에 재래식 무기와 사치품 등의 거래입니다. 새 행정명령은 재래식 무기와 사치품 거래를 제한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불법 행위에서 나오는 자금이 북한 정권의 생명을 연장해 왔다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새 행정명령으로 북한 지도부를 정조준했습니다.
앵커: 미국은 최근 핵 개발에 나선 이란에 제재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런데 대이란 조치는 대북 조치와는 좀 다르다고 합니다. 두 제재 조치가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기자: 미국 정부는 이란에 대한 제재를 이란제재법이라는 법률로 했습니다. 미국 의회는 기존의 이란제재법을 좀 더 강화해 고강도의 법률을 의결했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7월 초에 이 법에 서명했습니다. 이란의 요주의 대상에 오른 기관과 거래하는 외국 은행을 미국의 금융 체제에서 제외하는 내용이 골자입니다. 반면 북한에 대한 제재는 법률보다 아래 단계인 행정명령을 통해 합니다. 미국이 대북 제재를 법률을 통하면 품이 더 들고 제재가 제도화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미국 정부가 법률보다는 행정명령을 통해서 대북 제재에 나서는 이유는 북한의 경제적 여건과 교역량 등을 감안했기 때문입니다. 이란은 석유 수출을 비롯해 국제 교역량이 많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폐쇄 경제이기 때문에 교역량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또 미국은 북한이 이미 고강도의 국제 제재를 받고 있어서 이런 제재에 내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추가적인 제재를 오히려 내부를 더욱 결속하는 용도로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감안했습니다.
앵커: 일각에서는 미국이 비핵화와 관련해 북한에 대화의 길을 열어 놓으려고 법률보다는 하위 단계인 행정명령을 선택했다는 평가를 합니다. 그런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는지요?
기자: 미국이 대북 제재를 법제화하지 않고서 행정명령으로 한 이유는 대북 접근에서 탄력성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행정명령을 바탕으로 하는 대북 제재는 대이란 제재처럼 강도가 높지 않고 철회가 가능해 그런 추론을 낳을 여지는 충분히 있습니다. 미국은 앞으로 북한의 태도를 보아 가며 대북 제재를 조정할 의사가 있다고 보입니다. 새 금융 제재가 표면적으로는 북한의 천안함 사태에 대한 응징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이보다는 제재를 통해서 비핵화와 관련한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유도하는 데 더 큰 목적을 두었다고도 분석됩니다.
앵커: 미국의 대북 제재가 행정명령에 근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협조를 기대할 수가 없어서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이런 이야기의 배경을 설명해 주시지요.
기자: 행정명령과 법률은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법률에 근거해서 금융기관이나 기업에 대해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의 은행이나 기관과 거래를 중단하도록 강제할 수 있습니다. 반면 행정명령으로는 이를 뒷받침할 법적 수단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미국이 2005년 마카오 소재의 은행인 방코델타아시아(BDA)에 제재를 할 수가 있었던 이유는 애국법 301조에 근거해 거래를 차단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함께 중국의 협조도 미지수입니다. 대북 전문가들은 미국의 제재가 성공을 하려면 북한의 경제 의존도가 높은 중국의 협조가 필수라는 견해를 나타냅니다. 그러나 중국이 최근 보인 행태를 감안하면 이에 협조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 보입니다.
앵커: 그렇다면 미국이 새 대북 금융 제재를 통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가 없다고 관측됩니까?
기자: 그렇지는 않습니다. 미국의 행정명령이라도 적지 않은 제재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대북 전문가들은 예상합니다. 미국 재무부가 해당 국가와 해당 은행에 협조를 요청할 경우 해당 기관이 이를 거부하기는 현실적으로 상당히 어렵습니다. BDA 사태 때도 미국의 경고가 위력을 발휘한 바가 있습니다. 미국 은행도 미국 정부가 특정 국가의 은행이나 기업과 거래하지 말라고 행정명령으로 공시한다면 이를 따르지 않는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미국이 행정명령을 통해서 추진하는 대북 제재가 현재로서는 나름의 성과를 거둘 수가 있다고 예상됩니다.
앵커: 미국이 추진하는 대북 제재의 중심에 선 아인혼 조정관은 어떤 인물입니까?
기자: 아인혼 조정관은 대북 전문가입니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 조-미 미사일 협상의 미국 측 수석대표로 활동하며 북한의 대량파괴무기(WMD) 문제에 깊숙이 관여했습니다. 또 국무부 군축 담당 차관보로 재직하던 2000년 10월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과 함께 북한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아인혼 조정관은 대니얼 글레이저 재무부 부차관보와 함께 불법 자금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글레이저 부차관보는 BDA 제재를 주도했습니다.
앵커: 지금까지 아인혼 조정관이 밝힌 대북 금융 제재를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