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2001년부터 3대 세습 준비”

북한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남인 정운을 후계자로 내세운 이유 중 하나는 정운이 형들과 달리 외부세계에 알려지지 않아 ‘사상적 순수성’을 선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미국의 국가정보국장실(ODNI)이 분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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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국장실은 북한이 이미 2001년 말부터 권력을 김정일 위원장의 전처인 고영희의 아들에게 승계하기 위해 선전 선동 작업을 벌여왔다고 밝혔습니다.

박정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국 국가정보국장실 산하의 '오픈소스센터'는 최근 작성한 북한의 권력 승계에 관한 보고서에서 "관영매체를 통한 선전 선동 작업을 살펴볼 때 북한이 3대 세습을 위한 장기 계획을 추진해왔고 2004년 고영희의 사망을 계기로 휴지기에 들어갔던 3대 세습이 지난해 가을 이후 본격화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공개된 정보를 토대로 각종 현안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해 정부 기관에 제공하는 오픈소스센터는 "비록 지난해 김정일 위원장이 뇌졸중을 앓은 점이 실제 후계자를 지명하는 일정을 앞당겼을 수 있지만, 김 위원장이 2001년 이후 계속 권력승계를 계획하고 준비해왔다"며 이같이 밝혔습니다.

지난 5월6일 작성된19쪽짜리의 이 보고서는 "처음부터 북한의 권력 승계는 김 위원장의 전처인 고영희의 아들들이 그 대상이었다"며 "최근 강화된 (관영매체를 통한 선전 선동) 작업은 김일성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2012년을 목표로 가장 나이가 어린 김정운을 후계자로 지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보고서는 현재 북한의 후계 구축 작업은 1980년 김 위원장 자신이 후계자로 떠오를 당시와 비슷하다며 "최근의 여러 신호는 매우 미세해서 내부 청취자만을 대상으로 한 것임을 암시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보고서는 2001년 5월 김 위원장의 장남인 김정남이 일본 도쿄에서 체포된 이후 같은 해 7월부터 '부자 세습을 북한의 전통'이라고 단정한 뒤 '김일성의 전통을 계승해야 한다'는 선전물이 북한의 관영매체에 등장했다며 이를 고영희의 아들에게 권력을 세습하기 위한 첫 선전작업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보고서는 이후 이듬해인 2002년 1월 고영희를 우상화하려는 문구가 등장하고 같은 해 10월에는 '손자'라는 표현도 나타나기 시작해 김 위원장의 후계자가 고영희의 아들 중 한 명이란 사실이 점차 명확해졌다고 지적했습니다.

보고서는 그러나 북한의 3대 세습을 위한 선전 작업은 2004년 8월 고영희의 사망을 계기로 휴지기에 들어갔으며 이는 지난해 말까지 계속됐다고 지적했습니다. 보고서는 뇌졸중을 앓았던 것으로 알려진 김 위원장의 복귀와 함께 4년간의 휴지기를 거친 북한의 3대 세습 작업은 지난해 11월 이후 3남 정운을 후계자로 세우기 위해 다시 본격화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보고서는 김 위원장이 지난해 11월 현지지도를 통해 복귀한 뒤 그를 미화하고 찬양하는 선전물에 '25세 후계자', '혁명의 3대, 4대', '천리마 정신을 계승한 손자들'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점 등을 "3남 정운이 후계자라는 신호"라고 밝혔습니다.

보고서는 특히 "김정운이 형들과 달리 외국 언론에 보도되거나 등장한 적이 없다"며 "이처럼 외부세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점이 오히려 후계자로 선택된 요인 중 하나"라고 분석했습니다. 장자 세습이라는 유교 전통에서 벗어나 3남인 정운을 후계자로 선택하면서 그 이유로 '사상적 순수성(ideological purity)'을 내세울 수 있다"고 보고서는 덧붙였습니다.

한편 보고서는 북한이 3대 세습을 이루기 위해 외교 관계를 확대하고 개혁을 통해 국내 정치를 안정시키는 대신 핵 억지력을 강화하고 통제를 강화하는 등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보고서는 김 위원장이 이를 통해 최소한 단기적으로나마 외부적으로 긴장 국면을 조성해 북한 내부에서 정권과 자신이 선택한 후계자를 지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