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계 세습 알리는 사례들 Q/A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세째 아들에게 권력을 세습하려는 사례가 속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이 나름의 이유로 아주 은밀하게 이 작업을 진행하는 가운데에서도 권력 세습을 보여주는 사례는 밖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대북 소식통은 이러한 사례가 김 위원장 사후를 대비한 징후로 보인다고 말합니다. 이에 관한 내용을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앵커: 우선 권력 세습과 관련해 가장 최근에 나온 사례부터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기자: 김정일 위원장의 비자금이 세째 아들에게 옮겨지는 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보도가 나와 관심을 끕니다. 한국 언론이 28일 대북 단파 라디오 방송 '열린북한방송'의 보도를 인용해 전한 바를 보면 미화 40억 달러로 추정되는 비자금이 리철 전 스위스 대사의 주도로 김정은 씨에게 넘겨지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리 전 대사는 올해3월 귀국한 뒤 김 위원장 지시를 받아 세째 아들에게 해외 은행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기법을 전수하며 비자금의 이관 작업을 은밀히 진행한다고 알려졌습니다. 리 전 대사는 스위스 대사를 지내며 스위스, 룩셈부르크 등지에 있는 김 위원장의 비자금을 관리해 왔다고 전해졌습니다.

앵커: 북한 당국은 9월 상순께 후계 세습을 확정하기 위해 당 대표자회를 연다고 알려졌습니다. 여기에 참가할 인사가 선출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이것은 무슨 내용입니까?

기자: 한국 언론은 27일 대북 단파 라디오 방송 '자유북한방송'의 보도를 인용해 당 대표자회에 참가할 인사를 선발하는 작업이 당 기관에서 극비리에 진행된다고 전했습니다. 함경북도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대표자를 선출하는 원칙은 중앙당에서 하달됐습니다. 중앙당은 참가자를 세포 비서를 비롯한 핵심 당원을 위주로 뽑고 당 간부는 적은 인원만이 참가토록 했습니다. 중앙당의 지시에 따라 당 기관에서는 수 일 전부터 참가자를 선발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앵커: 북한 당국이 세째 아들의 생가를 평양시 강동군에다 조성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것도 후계 세습을 위한 확실한 우상화 사례로 꼽힙니다. 무슨 내용인지 소개해 주시지요.

기자: 일본 대북 인권단체인 '구출하자 북한 민중 긴급 행동 네트워트(RENK)'의 이영화 대표는 15일 북한 정권이 평양시 강동군에 김 위원장 세째 아들의 생가를 조성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 대표는 내부 소식통 말을 인용해 "작년 3월부터 평양 중심부와 강동군을 잇는 철도 공사가 진행됐다가 작년 여름께 중단됐는데 올해 7월부터 재개됐다"며 이같이 전했습니다. 강동군은 북한이 단군릉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장소이고 또 김일성 주석의 부친 동상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북한 당국은 앞으로 김정일 위원장의 뒤를 이어서 후계자로 등극할 세째 아들을 우상화하기 위해 강동군에 생가를 조성할 만도 합니다.

앵커: 이밖에도 후계 세습을 알리는 구체적인 사례로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기자: 7월 21일자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작년 10월 이후부터는 각 직장과 지역 단위의 각종 활동을 통해 김정은 씨가 후계자라고 널리 전파하고 있습니다. 김정은 씨는 작년 말 이후 후계 세습의 일환으로서 핵심 권력 조직인 정찰총국,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부 등을 장악했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런가하면 세째 아들이 집권을 준비하거나 집권한 이후를 대비해서 군과 대학 등의 기관에서는 '샛별동지회'라는 사조직이 운영된다고 알려졌습니다. 북한에서는 세째 아들을 '샛별 장군'이라고 부릅니다. 또 북한 당국은 김일성 주석, 김정일 위원장과 함께 김정은 씨를 '백두산의 3대 영웅'으로 우상화하고 있습니다.

앵커: 북한 당국은 최근 들어 김일성 주석-김정일 위원장을 동격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김 위원장의 동상까지 만들었습니다. 후계 세습과 이런 현상이 어떤 관계를 갖고 있습니까?

기자: 이와 같은 작업은 세째 아들 김정은 씨의 주도로 진행된다고 분석됩니다. 세째 아들은 후계 세습과 관련해 아버지 김 위원장을 조부 김일성 주석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아 충성심을 과시함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굳히려는 데 그 목적을 뒀다고 보입니다. 김일성 주석의 우상화를 통해 권력을 이어 받은 김정일 위원장을 본받아 다시 아버지를 우상화해 권력을 인수하겠다는 의도로 관측됩니다. 인민군 기관지 '조선인민군' 4월 14일자는 "온 세계가 부러워하는 김일성 –김정일 강성대국을 일떠세울 백두산 혁명강군의 트팀없는 신념"이라고 표현을 써서 '강성대국' 앞에 두 사람의 이름을 나란히 세워 인용했습니다. '조선인민군' 5월 11일자는 김정각 인민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의 말을 빌려서 "처음으로 형상된 최고 사령관 동지의 '군복상 동상'을 인민무력부 혁명사적관에 모신 일은 최대 특전이고 행운"이라고 전했습니다.

앵커: 김 위원장이 이렇게 은밀하게 작업을 진행해서 세째 아들을 후계자로 앉혀도 그가 국정 경험이 거의 없고 나이도 어린 상황에서 과연 북한을 통치할 수가 있을까요?

기자: 김정은 씨가 조부 김일성 주석과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의 후광을 받아서 고모부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의 도움으로 권좌에 일단 오르기는 한다고 보입니다. 그러나 여러 정황상 그런 체제가 김정일 위원장의 사후에는 오래가지 않는다고 전망됩니다. 권력의 속성상 김 위원장의 세째 아들과 장 부위원장 간의 평화가 오래가지 않습니다. 장성택 씨가 조카를 제치고 전면에 나서거나 김정은 씨가 실제 권력을 장 부위원장에게 요구할 경우가 발생한다고 관측됩니다. 또 김정일 위원장 시절과 같은 절대 권력이 없을 경우 군부를 비롯한 기타 세력이 발호(跋扈)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국정 경험의 부재와 어린 나이가 그의 최대 약점입니다. 대내외적인 환경도 좋지 않습니다. 상당수 인민이 이같은 권력 세습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을 뿐아니라 권력을 세습하기에는 경제적인 환경이 너무나 좋지 않습니다. 특히 북한의 경제는 파산 직전의 상태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같은 사회주의권인 중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도 시대 흐름을 벗어난 이같은 왕조적인 권력 세습의 행태를 곱게 바라보지 않습니다.

앵커: 김 위원장이 이런 상황을 대비해 세째 아들을 위해 취하는 조치가 있지 않겠습니까?

기자: 김 위원장은 9월의 노동당 대표자회를 통해 국방위원회 중심의 선군(先軍) 정치 체제를 노동당 중심의 당 우위 정치 체제로 바꾸려합니다. 최근 노동신문에 '당 중앙위원회를 목숨으로 사수하자'라는 구호가 나온 이유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7월 13일 "김 위원장은 지나치게 군의 위상이 높아지면 이는 세째 아들로 권력을 승계하는 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김 위원장이 이처럼 당에 무게를 두려는 이유는 사후를 대비한 후계 세습을 감안했기 때문입니다.

앵커: 지금까지 북한의 권력 세습을 계속 알리는 여러 사례를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