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북한에서는 김정일 일가의 권력 세습이 조용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김일성 주석에게서 권력을 물려받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세째 아들인 김정은 씨에게 권력을 내부적으로 은밀히 승계하고 있다는 정황이 여러 경로를 통해서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앵커:
우선 북한의 권력 세습과 관련한 그 동안의 상황을 정리해 주시겠습니까?
허형석:
이와 관련해 두 가지 주장이 있었습니다. 우선 김 위원장이 한국과 미국에 유화정책을 펼치는 시기와 거의 때를 같이하여 대내외적인 여건의 변화로 3남을 후계자로 만드는 논의를 중단했다는 주장입니다. 이 주장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지난 9월 10일 일본의 교도(共同)통신과 한 회견에서 후계자 내정설을 부인하면서 한때 힘을 받기도 했습니다. 다른 주장은 김 위원장이 건강상 문제가 있기 때문에 권력 승계를 중단할 수는 없으며 이를 은밀하게 진행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두번 째 주장이 북한에서 요즘 벌어지고 있는 정황을 보면 맞는 이야기로 차츰 드러나고 있습니다.
앵커:
권력 승계가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는 정황은 현재 북한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나요?
허형석:
김 위원장의 후계자로 올해 1월 내정됐다고 알려진 3남 김정은 씨를 찬양하는 가요 ‘발걸음’이 북한 사회에서 확실하게 공인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북한 관영 매체는 올해 2월부터 김 위원장이 각종 공연에서 ‘발걸음’ 노래를 들었다는 소식과 더불어 이 노래가 여러 행사에서 불려지고 주민한테도 보급됐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보도해 왔습니다. ‘발걸음’이란 찬양 가요 이외에 이것을 소재로 삼은 소묘 작품을 김 위원장이 감상했다고 북한 매체는 전하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 이외의 인물을 놓고서 북한에서 찬양 가요나 작품이 나오는 상황은 김 위원장이 후계자를 내정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앵커:
그렇다면 이런 정황을 뒷받침할 만한 사례로는 그동안 어떤 것이 있었습니까?
허형석:
올해 2월 인민군 제264연합부대 예술선전대가 했던 공연을 먼저 들 수 있습니다. 김 위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원들이 ‘발걸음’을 불렀다고 조선중앙통신은 2월 23일 보도한 바 있습니다. 김 위원장은 후계자를 내정한 지 40여일만에 처음 ‘발걸음’을 감상했습니다. 이후 이 노래는 군부대의 각종 행사에서 자주 불렸다고 북한의 관영 매체는 전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10월 9일 황해북도 예술극장의 개관 공연에서도 이 노래를 들었습니다. 조선중앙텔레비전은 이 소식을 전하며 노래 제목을 보여주었습니다. 여러 상황을 종합하면 김정은 씨를 찬양하는 ‘발걸음’은 각종 공연과 행사에서 공연되는 주요 곡목으로 이미 자리를 잡았습니다.
앵커:
‘발걸음’이 불리는 행사에는 김 위원장의 측근이자 권력 실세가 함께 참석하고 있다는데 이것은 권력 세습설에 무게를 더해주고 있는 사례로 봐야겠지요?
허형석:
그런 사례로는 조금 앞서 말씀을 드린, 사리원시의 황해북도 예술극장에서 있었던 공연 관람을 들 수가 있습니다. 당시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경희 노동당 부장, 남편인 장성택 국방위원 겸 노동당 행정부장, 김기남 노동당 비서 등이 자리를 함께했습니다. 한국의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김 위원장이 이 노래가 나오는 공연을 후계 구축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관람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후계 문제를 내부적으로는 이미 공식화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이 같은 공연 관람은 김 위원장의 적극적인 뒷받침 아래 후계자를 세우는 작업이 착착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습니다.
앵커:
김 위원장의 후계자로 내정됐다는 김정은 씨를 찬양하는 노래 ‘발걸음’이 북한에서 빨리 확산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까?
허형석:
김 위원장을 비롯해 모든 북한 사람이 이 가요를 부르고 듣는다는 사실은 세째 아들로 이어지는 후계 구도가 더욱 공고해 지고 있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는 일각에서 나왔던 후계자 논의의 중단이나 김 위원장과 아들 간의 불화설을 씻어버리는 확실한 방증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권력 세습은 내부적으로는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고, 이는 김정은 씨가 공식적인 후계자로 내정되는 단계로 들어가는 때도 멀지 않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앵커:
세째 아들을 찬양하는 노래 이외에 권력 승계를 보여주는 사례로는 무엇이 있습니까?
허형석:
두 가지 정도 확실한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먼저 대만 사진작가 황한밍 씨가 9월 18일 원산 근교에서 찍어 인터넷 포털에 올린, 김정은 씨와 관련한 포스터 사진입니다. 이것을 보면 김정은 씨는 ‘김 대장’ ‘청년 대장’으로도 불리며 그의 이름이 김일성과 김정일처럼 굵은 글씨 체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 사진을 보면 후계자와 관련한 보도는 사실로 드러납니다. 이와 함께 북한의 대외비 자료 <존경하는 김정은 대장 동지의 위대성 교양 자료>를 보면 김정은 씨는 현재 고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위원장과 같은 지위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 자료에서 세째 아들은 ‘어버이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을 꼭 빼닮은 선군영장’ ‘천재적 영지와 지략을 가지신 군사의 영재’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앵커:
상황이 이 정도라면 세째 아들은 언제쯤 공식적인 후계자로 등장할 수 있을까요?
허형석:
내년 10월쯤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국의 대북 라디오 방송인 <열린북한방송>은 10월 29일 북한 고위 소식통의 말을 빌려 “김정은 씨가 2010년 10월 당 대회나 당 대표자 회의를 통해 후계자로 공식적으로 등극하며 그 이후 개혁과 개방을 과감히 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북한이 최근 남북 정상회담에 적극적으로 나오는 이유는 삼남이 주도하는 개혁과 개방의 성공을 위해서 좋은 대외 여건을 조성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이 방송은 전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건강 문제로 이 문제를 미룰 수만도 없는 상황입니다.
앵커:
그런데 김 위원장의 의도대로 권력 세습이 원활히 진행될 수가 있겠습니까?
허형석:
부정적인 견해가 나오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김정은 씨가 나이가 어리고 대중적인 기반이 없기 때문에 권력 세습에 성공하기 어렵다는 견해를 내놓습니다. 김 위원장이 아버지 김 주석에게서 권력을 이양하던 순조로운 상황과 그가 권력을 승계하려는 현재 상황이 다르다는 이유도 제시합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북한의 권력 승계가 김 위원장 이후에 바로 세습으로 가기보다는 장성택 국방위원의 과도기적인 승계가 유력하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습니다.
앵커:
네, 지금까지 북한에서 진행되는 권력 세습에 관해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