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남한에 물자 지원을 요청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북한은 수해 복구와 남북 관계의 개선을 위시해 여러 가지 이유로 지원을 제의했다고 일단 풀이됩니다. 그렇지만 한국 정부는 북한의 지원 요청을 모두 그대로 들어줄 수 없는 입장입니다. 북한이 남한에 쌀, 중장비, 시멘트 등을 요청한 배경과 향후 전망을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앵커: 북한이 남한에 지원을 요청한 내역은 무엇입니까?
기자: 북한 적십자회는 4일 대한적십자사가 쌀과 수해 복구에 필요한 시멘트, 자동차, 굴착기 등을 제공하면 좋겠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이는 한국 정부가 26일과 31일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두 차례나 100억 원/미화 약 850만 달러 규모의 지원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데 대해서 내놓은 역제의입니다. 한국 정부는 두 차례의 제의에서 라면을 비롯한 비상 식량, 생활용품, 의약품만을 제공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렇지만 북한이 요청한 품목은 군사 장비의 전용, 유엔 제재의 위반 등과 같은 문제에 봉착할 수도 있어 지원이 쉽지 않습니다.
앵커: 한국 정부가 구상하는 방안이 나와 있나요?
기자: 청와대는 쌀을 지원해 달라는 북한의 요청과 관련해 이미 제안한 약 850만 달러의 규모 안에서 긍정적으로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청와대의 고위 관계자는 "북한에서 요청이 왔기 때문에 이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며 "850만 달러 이내에서 식량과 의약품을 공급하기로 해 그런 맥락에서 이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대한적십자사가 당초 밝힌 지원 내역에는 군량미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는 쌀이 포함돼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발언은 지원 규모의 안에서는 쌀도 포함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이 됩니다.
앵커: 북한은 한국의 의도와 달리 쌀, 중장비, 자동차, 굴착기 등을 요구했습니다. 한국 정부가 이런 물품을 선뜻 제공할 수 없는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기자: 우선 중장비나 시멘트는 포괄적 전략 물자로 오해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북한에 들어가는 물품의 분배에 투명성이 없기 때문에 이런 물자가 군용품으로 전용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만큼 지원은 쉽지 않습니다. 또 북한이 수해를 복구한 뒤 고가 장비를 돌려보내지 않고 그대로 전용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와 함께 북한이 천안함을 격침한 데 대한 보복으로 대북 교역을 금지한 한국 정부의 5.24 조치가 지속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에 순수 인도적 물자 외의 물품을 제공하는 일이 이명박 정부의 정서와는 맞지 않는 측면도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발효 중인 5.24 조치가 가장 큰 이유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앵커: 북한이 대한적십자사의 지원 제의에 묵묵부답하다가 갑자기 역제의를 통해 쌀과 중장비 등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한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입니까?
기자: 우선 수해 복구를 들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북한은 신의주 일대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큰물 피해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처럼 물자가 매우 부족한 나라에서 인접한 남한의 지원은 아주 절실합니다. 두 번째로는 국제 사회의 대북 압박에서 벗어나 후계 체제의 구축을 비롯한 체제 안정을 위한 대남 제스처입니다. 이제는 방향을 바꿔서 6자회담의 개최를 바라는 북한은 조기에 이를 열고 또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대남 관계의 개선이 필수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해에 맞춰 남한에 물자 지원을 요청하고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남북 관계를 외형적으로 좋게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한이 큰물 피해를 당한 북한의 요청을 거부하기는 어렵습니다. 북한이 물자 지원을 요청한 이유는 이런 여러 배경에서 나왔다고 보입니다.
앵커: 한국 정부는 북한에 쌀을 지원하는 데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고 합니다. 한국 정부가 이처럼 나오는 배경은 어디에 있다고 분석됩니까?
기자: 한국 정부도 당분간 남북 관계의 안정을 바라는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개최합니다. 이 행사는 단군 이래 한국이 개최하는 가장 큰 국제 행사입니다. 따라서 남북 관계를 마냥 충돌과 대결의 양상으로 몰고만 갈 수도 없습니다.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그 동안 한국에서 야당과 진보적 시민단체는 북한에 쌀을 제공하라고 촉구해 왔습니다. 야당의 촉구는 남아도는 쌀의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한 고육책이었습니다. 한국 정부는 엄청난 수해를 입은 북한에 인도적 지원의 명목으로 쌀을 지원함으로써 이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가 있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남북 관계에서 북한에 대한 쌀 지원이 긍정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앵커: 한국 정부가 북한에 대한 쌀과 기타 품목의 지원과 관련해 갖고 있는 생각은 무엇입니까?
기자: 한국 정부는 '민간 차원의 지원'과 '긴급 구호 및 인도주의 성격'이라는 두 가지의 원칙을 지키겠다는 입장입니다. 지원의 주체는 한국 정부가 아닌 대한적십자사이며 북한이 요구하는 품목인 쌀, 굴착기, 자동차 등을 지원 품목에 포함할지 여부를 인도주의 원칙에서 검토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가운데 쌀은 이미 지원 품목으로 떠올랐습니다. 한국 정부는 북한에 대한 쌀 지원을 비핵화와 천안함 사태에 대한 가시적인 조치와 연계를 하고 싶어합니다. 따라서 북한이 수해를 당하지 않았다면 쌀을 제공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앵커: 한국 정부가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수해를 당한 북한에 쌀을 지원한다면 이는 남북 관계의 개선에 기여한다고 전망할 수 있습니까?
기자: 일단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전문가들 견해가 나왔습니다. 이들은 북한이 역제의를 해온 만큼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적십자 회담의 개최-정부 차원의 쌀 지원 재개-남북 당국 간의 대화로 관계가 발전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나타냈습니다. 북한의 지원 요청이 화해의 제스처로 해석되기 때문입니다. 반면 한국 정부가 북한의 지원 요청을 수용하더라도 비핵화가 진행되지 않고 천안함 사태와 관련한 태도에서 변화가 없을 경우 남북 관계의 개선은 바라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 정부가 하는 대규모의 쌀 지원은 기대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의 발언은 이러한 정황을 뒷받침합니다. 김 대변인은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이 적십자사를 통해 인도적인 지원을 계속한다는 의미"라면서 "정부 방침이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이 남한에 대한 태도에 변화가 없는 한 북한에 대한 쌀 지원은 이전의 사례처럼 일회용으로 그칠 공산도 큽니다.
앵커: 지금까지 북한이 남한에 대해서 쌀과 자동차, 굴착기 등을 수해 지원을 위한 품목으로 요청한 배경과 한국 정부의 대응 입장을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