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개 켜는 북한 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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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 '체육강국 건설'을 국가적 목표로 내세운 북한이 최근 비인기 종목인 야구를 육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주목됩니다.

서울에서 노재완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시리즈 4차전 중계 현장음] “3볼 1스트라이크에서 5구를 쳤습니다. 좌익수 뒤로 갑니다. 담장을 직접 때립니다.”

해마다 10월이면 미국을 비롯해 한국과 일본은 야구 열기로 뜨겁습니다.

한국에서는 ‘한국시리즈’라고 불리는 프로야구 결승전이 펼쳐집니다. 올해는 서울과 대구를 연고로 하는 야구팀이 우승을 놓고 겨루고 있습니다.

올해는 한국 프로야구 출신으로 미국 프로야구에 진출한 류현진 선수가 입단 첫해부터 발군의 실력을 발휘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의 야구 열기는 더욱 높아졌습니다.

이런 가운데 얼마 전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이 ‘공화국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기관차체육단 야구팀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기관차체육단은 올해 공화국선수권대회뿐만 아니라, 10여 전부터 여러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을 정도로 야구에서만큼은 독보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북한이 최근 들어 비인기 종목인 야구를 홍보하는 것에 대해 ‘체육강국’ 건설이라는 목표에 맞춰 인기 종목을 다양화하려는 시도로 풀이됩니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 북한이 요즘 골프와 승마도 하고 있습니다. 김정은 시대를 맞아 스포츠의 다양화를 강조하고 있는데요. 그런 차원에서 야구도 소개한 거로 생각합니다.

사실 북한에서 야구는 미국에서 시작한 운동이라며 골프와 함께 육성이 금기시된 종목 중 하나입니다. 그러다가 북한은 1990년 8월 국제야구연맹에 가입하면서부터 갑자기 야구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6월 일본 니가타에서 열린 제1회 환태평양 아시아 5개국 야구대회에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은 이 대회에서 한국의 한양대학에 1대 16으로 크게 졌습니다.

이때가 남북 야구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북한 대표팀은 당시 녹색 경기복에 ‘조선’이라는 붉은 국호를 달고 나왔습니다.

북한은 그러나 1993년 아시아선수권 대회를 끝으로 국제대회에서 사라졌습니다.

대한야구협회 관계자: 국제대회에 안 나온 지가 아주 오래됐어요.. 90년대에 한 번 나오고 없어요. 지금 아시아야구연맹 회원국으로는 돼 있긴 한데, 연락도 안 되고 그렇게 돼 있습니다.

탈북자들의 말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은 대부분 야구경기를 본 적이 없고, 또 어떻게 하는 운동인지도 모릅니다.

북한 조선중앙방송 기자를 지낸 탈북자 장해성 씨는 1985년경 제작한 북한영화 '광주는 부른다'에서 조선 학생들과 일본 학생들이 야구를 하다가 집단싸움을 하는 모습이 있어 그때 처음 야구를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장해성 : 북한에서 광주사건에 대한 무슨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 영화에서 처음으로 야구는 저렇게 하는구나 알았어요.

‘체육강국 건설’을 국가적 목표로 내세운 북한. 비인기 종목인 야구에 다시 관심을 보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1990년대 초 그랬던 것처럼 국제대회에 다시 등장할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