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북한의 양자회담 개최는 시간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앞으로 있을 양자회담은 북한의 비핵화를 둘러싼 상황이 새로운 대화의 국면으로 들어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 회담은 미국과 북한 두 당사자가 워낙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예측하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북미회담의 전망에 관해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봅니다.
앵커:
북미 양자회담의 개최가 시간 문제로 떠올랐다는 이야기부터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허형석: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8일 중국의 후진타오 국가주석 특사로 북한을 방문한 다이빙궈 외교 담당 국무위원에게 “북한이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자 또는 양자회담에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15일 북한을 6자회담에 복귀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북미 양자대화를 추진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북미 양자대화가 열리게 되면 ‘상응하는 대가’와 ‘인센티브(혜택)’를 북측에 분명하고도 명확하게 전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종합하면 북미 양측은 회담을 개최할 의지를 충분히 나타냈고 이젠 시간만 조율하는 문제를 남겨놓고 있습니다.
앵커:
김 위원장이 북한의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다자 또는 양자회담에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는데 여기서 말한 ‘다자회담’은 교착 상태에 빠진 6자회담을 의미합니까?
허형석:
그렇게만 볼 수는 없습니다. 김 위원장이 언급한 ‘다자회담’은 단순히 6자회담으로 볼 수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6자회담은 영원히 끝났다”라고 말했던 점에 비추어 ‘다자회담’은 여러 의미를 내포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북한이 다른 형태의 회담을 염두에 두고 한 이야기일 가능성도 높습니다. 이론상 3자회담, 4자회담, 5자회담, 6자회담 더 나아가서 7-8자 회담이 모두 다자회담입니다. 따라서 북한이 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할 수도 있는 일본, 한국, 기타 국가를 배제하려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한편 남한의 ‘열린북한방송’은 21일 김 위원장이 언급한 ‘다자회담’이 북한, 미국, 중국의 3자회담이라고 전했습니다.
앵커:
김 위원장의 이번 발언은 과거 행태의 연장선 상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도 많은데 이를 어떻게 봐야 합니까?
허형석:
김 위원장은 1990년대 이후 핵 개발을 계속해 오면서 국제사회와 갈등과 대화 국면을 반복해 왔습니다. 이번 상황도 북한이 1994년 1차 핵 위기를 끝내고 미국과 제네바 합의에 이르는 과정, 2002년 2차 핵 위기 이후 6자회담을 시작하는 과정, 2006년 1차 핵 실험 이후 6자회담을 재개하는 과정과 너무 유사하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2009년에도 김 위원장은 2차 핵 실험으로 갈등을 또 조성한 뒤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강도 높은 제재와 미국의 강력한 압박에 대처해 다른 카드를 꺼내들었다고 일각에서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앵커: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회담이 북미 양자회담에서 6자회담으로 변했고 앞으로는 북미 양자회담 겸 다자회담(6자회담)의 형태로 변형을 거듭할 모양인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허형석: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채찍은 놓고 당근만 주면서 북한과 회담을 하다가 결정적인 단계인 핵 폐기에 이르면 북한이 이전의 합의를 뒤집고 다시 핵 협박을 하며 원점으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앞으로 6자회담에 불참하겠다는 의사 표명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미국과 국제사회가 북한을 협상 탁자로 다시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이런 몇 가지 형태의 회담이 나왔고 또 나오고 있습니다. 북한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회담이 이런 변형을 거듭하는 동안 시간을 벌면서 핵 무기를 꾸준히 개발해 왔습니다.
앵커:
그렇다면 미국과 한국이 북한의 시간 벌기에 지난 15년 간을 당해왔다고도 볼 수 있는데 이런 점을 잘 아는 미국과 한국이 앞으로 어떤 전략으로 나올 것으로 보십니까?
허형석:
미국과 한국은 대북 협상이 실패한 원인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핵 폐기라는 최종 목적지에 가기 전에 단계별 합의라는 중간 기착지를 둔 점을 실패 요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미국과 한국은 북한의 완전한 핵 폐기 전까지는 제재를 계속하고 단계별 합의라는 북한의 꾀에 더는 말려들지 않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북한은 ‘살라미 전술’을 써서 비핵화 단계를 폐쇄-불능화-폐기 등으로 잘게 썰어놓은 뒤 폐기 전까지는 대화를 하며 시간을 벌고 제재를 모면해 왔습니다. 살라미는 얇게 썰어 먹는 이탈리아 소시지를 말합니다. 사실상 북한은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가 나온 이후 ‘핵 포기’라는 말만 가지고 당근을 챙기는 한편 시간을 벌고 또 제재를 피해 왔습니다. 그래서 한국과 미국은 이를 막아보려고 북한의 핵 폐기와 국제사회의 경제 지원을 맞바꾸는 방식의 일괄타결을 의미하는 ‘포괄적 패키지’를 이미 내놓았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이명박 한국 대통령도 21일 뉴욕에서 역시 일괄타결을 뜻하는 ‘그랜드 바긴’을 제안했습니다.
앵커:
북미 양자회담이 열린다고 가정하고 이에 이어서 북한이 나름대로 의도하는 ‘다자회담’이 열릴 가능성은 얼마나 된다고 예상할 수 있습니까?
허형석:
현재 6자회담을 대체할 ‘다자회담’이 열린 가능성은 좀 희박하다고 보입니다. 북한을 제외한 6자회담 당사국이 이 회담의 틀을 유지하자는 견해를 갖고 있고 김 위원장이 언급했던 다자회담의 의미가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또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 경제적 지원을 하는 나라가 다자회담 개최로 오히려 줄어들 경우 이에 따르는 재정 부담도 다자회담의 개최를 막는 요소가 충분히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여러 상황을 감안하면 미국과 북한은 6자회담의 틀을 유지하면서 그 운영에서는 유연성을 살리는 ‘변형된 6자회담’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보입니다.
앵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상황에서 열리는 북미 양자회담을 어떻게 전망할 수 있을까요?
허형석:
미국은 북미 양자회담의 목적을 ‘6자회담 복귀’와 ‘비핵화 의지의 확인’을 북한 측에 설득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북한도 장기적으로는 핵 보유국 지위의 획득과 같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더라도 일단 미국의 설득을 확인하는 선에서 회담을 마칠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다할 돌파구가 마련되기는 어렵다고 전망됩니다. 더구나 양자회담이 잘 진행돼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한다고 해도 핵무기를 포기할지는 의문입니다. 북한은 단계별 목표를 정하고 체제 보장과 경제 지원을 요구하는 ‘행동 대 행동’ 식의 행태로 다시 나올 것으로 전망됩니다.
앵커:
지금까지 북미 양자회담의 전망에 관해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