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열차 소설책 대여업 등장

0:00 / 0:00

앵커: 여행을 하다 정전이나 고장으로 가차가 서면 승객들은 짜증날 것 같은데요, 하지만, 북한에선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열차 칸에서 책을 빌려주고 돈을 버는 이른바 '출판물 보급원'들이라고 하는데요, 자세한 소식 정영기자가 전합니다.

얼마 전 평양지방으로 여행을 떠났던 함경북도의 김모 씨는 "무산행 열차가 며칠 동안 연착됐지만, 차 안에서 소설책을 보면서 심심치 않게 돌아왔다"며 열차 내에 등장한 '이동도서실'을 자유아시아방송에 소개했습니다.

김 씨는 "요즘 수확 철을 맞아 농촌에 전기를 집중하느라 열차 시간이 엉망이긴 하지만, 차 안에서 빵이나 술을 팔거나, 책을 빌려주는 사람들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고 말했습니다.

김 씨에 따르면 평양역에서부터 소설책 배낭을 가지고 오른 한 여인은 열차가 떠나자마자 "책 보고 싶은 사람은 다 모이시오!"라고 광고를 했다는 것입니다.

희망자들이 나타나자, 여인은 책 한권 당 1만 원가량 돈을 먼저 받은 다음 빌려주었고, 손님들이 책을 다 본 다음에는 찢어진 곳이 없는지 확인하고 소설책 한 권당 빌려준 대가로 1,000~2,000원 씩 공제하고 나머지 돈을 돌려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손님들이 책을 분실하거나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일종의 보증금 형식으로 먼저 큰돈을 받아 놓는 것이라고 김 씨는 설명했습니다.

북한에서는 원래 소설책을 도서관에서 공짜로 빌릴 수 있지만, 경제가 어려워지자, 개인들이 이동봉사를 하고 돈을 받게 되었다고 김 씨는 설명했습니다.

그는 "요즘 열차가 자주 연착되자 소설책을 가지고 열차에 오르는 사람들이 이외로 많아졌다"면서 "이렇게 한탕 뛰면 몇 만원은 버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열차 내에서 책대여 장사를 하자면 열차 보안원이나 열차원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김 씨는 "열차에 책을 갖고 오르는 사람들은 차에 오르자마자 의례히 창문턱에 자리를 잡거나 열차원 칸에 책을 맡기고 대여를 해준다"면서 "이들은 대부분 지식인층인데, 기업소에서 8.3 생산에 내몰리자, 책을 가지고 돈벌이에 나선 것"이라고 소개했습니다.

평안북도 지방의 한 공장에 다니는 주민 황 모 씨는 "이런 책장사는 심지어 급행 1열차에도 있다"면서 "이들이 갖고 오르는 소설책들은 일반 도서관이나 책방에도 없는 귀한 책들"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 또한 도서관이나 출판물 보급소와 연계된 사람이 아니고서는 책대여 장사도 할 수 없다는 지적입니다.

황 씨는 "북한 사람들은 특히 역사소설이나, 탐정 소설을 좋아하는데, 열차 칸처럼 힘든 환경에서도 책을 열심히 읽는 걸 보면 독서열 하나만은 대단하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