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연말이 다가오면서 사람들이 새해 준비로 분주해지고 있습니다.
이 때 빠뜨릴 수 없는 게 달력 장만이죠. 탈북자들의 말에 의하면 북한에서 좋은 달력은 뇌물로도 통용될 정도로 귀하게 대접 받는다고 하는데요.
남북한의 달력 문화. 서울에서 노재완 기자가 보도합니다.
크고 작은 인쇄소 수십여 곳이 몰려있는 서울 충무로의 인쇄골목.
이맘때면 새해 달력 제작으로 눈 코 뜰새 없이 바쁩니다.
이곳에서 생산된 대부분의 달력은 기업체라든지 은행에서 주문한 것입니다. 홍보용으로 고객들에게 나눠 줄 달력들입니다. 가정 마다 매년 평균 서너 개씩은 무상으로 들어옵니다. 흔한 만큼 누구나 부담 없이 달력을 주고받습니다.
최근 들어 대형 벽걸이 달력보다는 작고 실용적인 탁상용 달력이 인기가 높습니다.
달력 전문업체 한 관계자의 말입니다.
업체 관계자: 컴퓨터 한 대마다 탁상용 캘린더가 하나씩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그 양이 많이 팽창이 됐어요. 많아졌어요. 요즘엔 또 손전화에 내장돼 있는 전자 달력을 많이 보기 때문에 종이 달력에 대한 수요가 예전만 못합니다.
반면, 연말이 다가오면 북한에서는 ‘달력전쟁’이 시작됩니다. 북한에서 달력이 귀한 이유는 인쇄공장에서 한정 생산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반 가정집의 경우 한 장짜리 달력을 많이 사용합니다. 한 장짜리 달력은 한국에서도 60년대까지는 서민들의 달력으로 사랑을 받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한국도 경제적으로 어려워 종이를 아끼기 위한 조치로 한 장짜리 달력을 대중화시켰습니다. 한 장 안에 12개월이 다 들어 있어 볼품은 없었지만, 나름 멋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으면 방이 훤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북한에서 한 장짜리 달력은 아직까지 종이의 질이 현격히 떨어져 물기가 조금만 있어도 바로 찢어진다는 게 탈북자들의 설명입니다.
이런 이유로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집에서는 돈을 주고라도 시장에서 구입해 씁니다. 6장에 앞뒤로 1월부터 12월까지 담은 달력이 인기가 많습니다.
북한에서 달력은 단순히 날짜를 확인하는 것 외에도 쓸모가 많습니다.
우선 집안에 변변한 장식거리가 없을 때는 달력만큼 좋은 내부 장식도 없습니다.
낯선 집에 가더라도 달력만 보면 그 집의 생활수준을 알 수 있다고 탈북자들은 전합니다. 달력이 부의 상징이 되고 있는 셈입니다.
탈북자 출신 방송인 이나경 씨의 말입니다.
이나경: 방안이 썰렁하니까 방안의 분위기의 역할을 하죠. 외풍 그림 하나 걸면 벽이 살잖아요. 그래서 인테리어쪽(내부장식)에 민감한 사람은 달력을 사려고 하죠.
이 때문에 달력이 특별한 사람에게 주는 귀한 선물로 통합니다. 값비싼 달력은 청탁할 때 유용하게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북한의 시장에서는 값나가는 달력을 사고파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의 달력은 명승지, 도시, 유적 등을 담은 풍경이 눈에 많이 띕니다.
얼마 전 평양을 다녀온 한 대북 사업가는 “매년 북측에서 달력 선물을 받는데, 올해는 어린이들의 민속놀이를 담은 달력을 선물로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텔레비죤연속극과 예술영화들의 인상 깊은 화면을 담은 달력과 인민 배우의 얼굴이 들어간 달력이 인기가 높습니다.
이 때문에 연말이면 유명 가수나 배우의 사진이 실린 달력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화폐개혁을 하는 등 경제 사정이 더욱 나빠진 북한은 올해도 역시 달력 품귀현상이 여전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