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의 급부상 Q/A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급부상이 관심을 끕니다. 장 부위원장은 7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회의를 통해 국방위 위원에서 1년여 만에 부위원장으로 승진해서 사실상 북한의 제2인자로서 자리 매김을 했습니다. 이 같은 급부상은 김 위원장의 셋째 아들을 후계자로 확립하는 작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관측됩니다. 이에 관한 내용을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앵커: 장성택 국방위 위원이 최고인민회의 회의에서 부위원장으로 승진해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장 부위원장의 승진이 어떤 내용이었는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기자: 장성택 국방위 위원이 최고인민회의 제12기 3차 회의에서 부위원장으로 승진해 내외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이번 승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제안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김 위원장은 4월 9일 열린 2차 회의에 나오지 않았다 6월 7일 열린 3차 회의에는 직접 참석했습니다. 장 부위원장은 작년 4월 열린 제12기 1차 회의에서 처음 국방위원에 임명됐다1년 2개월만에 부위원장으로 고속 승진을 했습니다. 이번 회의에서는 최영림 새 내각 총리와 강능수 노동당 부장을 비롯한 4명의 새 부총리가 나왔습니다. 이 인사도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매제로서 이미 실세로 자리를 잡은 장 부위원장의 승진이 이번 인사의 핵심이었습니다.

앵커: 그렇다면 장 부위원장의 승진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까?

기자: 사실상 제2인자로 자리를 굳혔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보입니다. 국방위 부위원장 자리는 김 위원장의 다음 가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김 위원장은 앞을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고 그래서 가능한 한 빨리 통치 경험이 없는 세째 아들 김정은 씨를 후계자로 만들어야 하는 한편 경제난을 비롯한 각종 난제를 안고 있는 상황입니다. 김 위원장은 이런 일을 처리할 인물로는 친척인 장 부위원장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관측됩니다. 특히 후계 구도의 구축은 한시가 급한 문제입니다. 따라서 김 위원장은 노동당 행정부장과 같은 핵심 자리를 비롯해 여러 요직을 겸한 장 부위원장에게 후계 구도의 가속화와 관련해 더욱더 힘을 실어주기 위해 이번에 부위원장 자리를 다시 맡겼다고 보입니다. 이번 승진 인사를 놓고 볼 때 장 부위원장은 김정일 체제에 이어 김정은 체제의 '창업 공신'으로 떠오를 공산이 커지고 있습니다.

앵커: 김 위원장이 여러 모로 어려운 상황에서 장 부위원장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 텐데요?

기자: 장 부위원장은 김 위원장이 2008년 여름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 권력 공백을 잘 메우며 사실상의 대리 통치를 훌륭히 해냈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그때나 지금이나 만성적인 식량난과 경제난으로 일반 주민이나 군부까지 동요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장 부위원장은 이처럼 어려운 시기를 맞아 당과 군부의 두터운 인맥을 바탕으로 북한의 안정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같은 대행역으로 장 부위원장은 김 위원장의 신임을 받았다고 분석됩니다. 그래서 김 위원장의 현지 지도에 동행하는 횟수가 많아졌다고 보입니다. 이와 함께 장 부위원장은 후계자로 장남인 김정남 씨 대신 권력욕이 강한 세째 아들 김정은 씨를 천거했다고 전해졌습니다. 장 부위원장은 이때부터 후견인으로 나서면서 후계 세습에 장애가 되는 인사를 제거하는 작업에도 나섰습니다. 국방위의 리제강, 리용철 위원의 느닷없는 죽음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입니다. 이밖에도 김 위원장은 장 부위원장이 권력 세습의 과정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봤습니다 .

앵커: 이처럼 김 위원장의 총애를 받는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은 어떤 인물입니까?

기자: 장 부위원장은 1972년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경희 씨와 결혼한 뒤 매형의 신임을 받아 김정일 후계 및 통치 체제의 구축에 나섰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의 후계 구도가 공식화한 이후엔 3대혁명 소조부장으로서 친위 세력을 이끌었고 1995년부터는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막강한 권력과 지위를 누리며 김 위원장을 위해서 북한 체제를 이끌어 오는 데 앞장을 섰습니다. 2004년 '분파 행위'를 이유로 업무 정지라는 처벌을 받았다가 2005년 복권돼 비중이 떨어지는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으로 재직하다 2007년 검찰, 인민보안부, 국가안전보위부와 같은 핵심 부서를 총괄하는 노동당 행정부장을 맡았습니다. 장 부위원장은 2009년 사망한 큰형인 장성우 차수와 2006년 사망한 둘째 형 장성길 중장 때문에 군내에도 인맥이 두텁습니다.

앵커: 김 위원장의 세째 아들을 후계자로 만드는 작업은 앞으로 속도를 낸다고 예상됩니까?

기자: 그렇다고 예상됩니다. 북한의 관영 매체는 부위원장 선임이 김정일 동지의 제안에 따라서 이뤄졌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국방위가 후계 구도를 확립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다는 예상은 이미 나왔습니다. 그런데 장성택 위원이 부위원장으로 임명됨으로써 이러한 전망에 무게를 더 실어주고 있습니다. 선전/선동 사업을 맡은 강능수 문화상을 부총리에 임명한 점도 후계 구도의 가속화를 알리는 대목입니다. 김 위원장이 세째 아들의 후견인을 맡아 온 장 부위원장을 발탁한 이유는 권력을 세습하는 체제를 더욱 확고히 하겠다는 데 있다고 풀이됩니다. 따라서 날개를 단 장성택 부위원장은 세째 아들을 후계자로 만드는 작업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장 부위원장은 김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할 때 이미 북조선의 실력자로 드러났다고 합니다. 이것이 무슨 내용인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기자: 5월 7일 중국 관영 CCTV가 공개한 화면에 장 부위원장은 실력자로 나옵니다. 후진타오 /호금도 주석이 김 위원장을 위해서 베푼 환영 연회에서 장 부위원장은 자기 직급보다도 높은 상석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장 부위원장은 김정일 위원장-김영춘 인민무력부장에 이어 3등석에 앉았습니다. 통상 정상회담의 주최국에서 결정한 자리 배치를 방문국에서 수용하는데 중국은 당시 장 부위원장을 3인자로 보았고 북한도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보입니다. 그런데 북한의 당 부장은 당 비서보다는 서열이 낮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관영 매체는 김 위원장의 수행원을 호명할 때 최태복, 김기남 비서보다 장성택 부장을 나중에 불렀습니다.

앵커: 해외 언론은 장 부위원장의 승진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요?

기자: 홍콩과 일본의 언론은 8일 장 부위원장이 제2인자로 올라섰다고 평가했습니다. 홍콩의 명보 (明報)는 장 부위원장이 북한의 제2인자가 되고 후계 구도를 위한 섭정왕(攝政王) 지위를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문회보(文匯報)도 장 부위원장의 승진은 김 위원장이 권력을 승계하려는 후계 구도와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일본의 요미우리(讀賣)신문은 세째 아들의 후견인인 장 씨가 '넘버 2' 지위를 확보했다고 전했습니다. 산케이(産經)신문은 장 부위원장 승격을 후계 체제와 결부하지는 않고 북한이 대북 포위망에 결속해 대처하려는 의도로 풀이했습니다.

앵커: 지금까지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의 급부상에 관해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