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화폐 개혁이 그 후유증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이 화폐 개혁을 하고 나서 물가와 환율은 하루가 멀다하고 치솟을 뿐만 아니라 물품의 거래마저도 끊어진 상태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물자의 공급이 따르지 않는 화폐 개혁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허형석 기자와 같이 알아보겠습니다.
앵커:
북한에서는 요즘 화폐 개혁의 후유증으로 물가와 환율의 폭등, 임금 지급의 중단과 같은 심상치 않은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먼저 그 상황부터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기자:
북한에서는 화폐 개혁의 후폭풍으로 물가와 환율의 폭등, 물품 거래의 중단, 임금 지급의 중단, 시장 기능의 마비, 아사자의 속출 등과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심각한 상황은 중국 단둥의 대북 소식통과 한국의 대북 인권단체를 통해 나오고 있습니다. 우선 쌀값을 살펴 보면 이 상황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작년12월 초 킬로그램 당 20-30원 하던 쌀값은 3백 원을 넘어섰습니다. 이는 신의주 지역의 경우입니다. 함경도를 비롯하여 물자 반입이 쉽지 않은 곳은 4천원 대까지 올랐다고 합니다. 북한의 공식 환율은 달러 당 98원입니다. 그런데 평양은 500원, 신의주는 800원까지 올랐습니다. 이밖에도 함경남도의 단천과 함경북도의 청진에서는 시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굶어서 죽는 사람이 많이 나왔다고 알려졌습니다. 이처럼 전례 없이 어수선한 사태는 화폐 개혁의 후유증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징조라고 보입니다.
앵커:
이밖에도 주민들이 당국에 거세게 저항하거나 보안원과 충돌했다고도 알려졌지요?
기자:
몇몇 사례가 있습니다. 함경남도 단천에서는 조선전쟁 참전자를 비롯한 일부 주민이 시당 건물 앞에 모여 “돈 교환 이후 다 굶어죽게 생겼다”며 항의했다고 합니다. 중앙당은 저장한 벼 중 1천 톤을 당장 배급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남한의 탈북 단체들에 따르면 평안남도 평성시에서는 시장 단속에 나섰던 보안원이 주민한테 둔기로 머리를 맞고 중태에 빠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런 사례는 화폐 개혁 때문에 일어난, 불안정한 사회 현상으로 보입니다.
앵커:
위에 나온 여러 심각한 상황 가운데 물가 폭등이 가장 문제라고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물가 폭등은 어떤 배경에서 발생하고 있습니까?
기자:
화폐 개혁의 근본 목적은 ‘계획경제 정상화’였습니다. 관건은 식량과 생활필수품과 같은 물자의 꾸준한 공급입니다. 암시장을 통해서라도 물자가 꾸준히 나와줘야 하는데 북한 당국이 시장 기능을 억제하는 바람에 유통 상품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북한의 식량 사정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식량은 유통 상품의 주요한 품목입니다. 재작년과 작년에도 한국 지원이 끊겨서 북한은 100만 톤 이상의 식량이 부족합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물품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상황이 지속하면서 인플레이션, 즉 통화 팽창이 바로 나타났고 이는 곧 물가의 폭등으로 이어졌습니다. 풀린 돈에 비해 살 수 있는 물품이 부족하니 당연히 물가 폭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북한 당국은 100 대 1의 화폐 개혁을 하면서도 주민 불만을 무마하려고 임금을 그대로 둬 새 돈이 많이 풀린 셈입니다. 통화 팽창과 물자 부족이 물가 폭등의 원인입니다.
앵커:
이런 사태는 북한이 화폐 개혁을 한 뒤 어느 정도는 예상됐던 일이 아닙니까?
기자:
미국 기업연구소(AEI)의 니컬러스 에버스타트 선임연구원은 경제 신문 월 스트리트 저널 (WSJ) 1월 12일자에 낸 기고문에서 이런 사태를 예견했습니다. 에버스타트 연구원은 북한이 물자 공급을 수반하지도 않은 채 최근 단행한 화폐 개혁과 시장 억제로 초인플레이션의 초입에 다다랐고 이 때문에 선군정치의 강화와 같은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고 전망한 바 있습니다. 또 1990년대 식량 부족을 보완한 역할을 했던 시장이 화폐 개혁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으며 기능을 상실하는 바람에 기근 사태가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고도 내다봤습니다. 북한이 이제는 정치적, 경제적 불확실성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앵커:
자, 그러면 북한의 화폐 개혁은 실패로 끝났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기자:
이를 뒷받침하는 몇몇 사례가 보입니다. 북한 당국은 인플레 억제, 계획경제의 강화, 후계 구도의 안착 등 여러 이유로 화폐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그렇지만 물가 인상과 식량 부족의 문제를 풀지 못해서 다시 시장경제를 허용해야할 처지에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후유증을 충분히 예상했지만 증세가 나타난 시기가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고 말했습니다. 대북 소식통의 보고를 보면 폐쇄됐던 시장이 일부 허용된다는 이야기까지도 나오고 있습니다. 장마당 통제가 계속됐던 양강도와 함경도에서 1일 이것이 풀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국의 연합뉴스와 동아일보는 4일 북한에서 장마당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와 함께 화폐 개혁을 주도한 박남기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이 실패의 책임을 지고 경질됐다는 풍문도 나오고 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경제 분야의 현지 지도에 나설 때마다 동행했던 박 부장은 현재는 언론에 등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실패라고 단정하기는 이르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앵커:
박남기 부장은 결국 실패한 화폐 개혁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희생양입니까?
기자:
박 부장이 9일 함경북도 김책제철연합기업소 종업원의 궐기 모임에 참석한 이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이를 뒷받침합니다. 박 부장은 김 위원장이 경제 분야의 현지 지도를 할 때 거의 동행했던 점에 비추어 이는 주목할 대목입니다. 박 부장의 해임이 사실이라면 이는 문책성으로 한 인사라는 점이 확실합니다. 실무적으로 화폐 개혁을 담당한 인물은 박 부장이지만 배후에서 이를 꾸민 사람은 북한 권부의 최고 실세인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이라고 다수 대북 전문가는 봅니다. 화폐 개혁의 후유증이 워낙 심각해 북한에서는 희생양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앵커:
북한이 화폐 개혁을 하며 원래 의도했던 바는 무엇이었나요?
기자:
세 가지 정도를 의도했다고 보입니다. 우선 북한은 경제적인 목적을 위해서 화폐 개혁을 했습니다. 인민을 통제하기가 쉬운 국가 통제의 경제 체제로 돌아가서 계획경제를 강화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당시 상황은 시장주의적 요소가 확산해서 당국이 통제하기가 어려운 상황으로 가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김정일 체제의 강화와 권력 세습의 본격화라는 정치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강력한 통치 체제의 수립이 필요한데 화폐 개혁을 통해 이를 이룩하려 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과 화폐 개혁에 참여했다고 알려진 3남 김정은 씨는 이 같은 조치로 인민의 숨겨진 부를 상당히 빼앗아 이들의 힘을 약화시키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세번 째로는 풀린 돈을 거둬들여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는 경제적 의도도 있었다고 보입니다.
앵커:
네, 지금까지 화폐 개혁의 후유증에 관해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