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가 북한에서 소생하고 있습니다. 시장경제는 북한이 작년 말부터 추진했던 계획경제의 강화로 나름의 기능을 접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장 폐쇄는 계획경제를 강화한 정책의 일환으로 나왔던 화폐 개혁, 외화 사용의 금지와 함께 실패작으로 드러났습니다. 북한 당국이 시장경제라는 엄연한 현실을 무시하며 인민 복지를 해결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앵커:
북한 당국이 야심차게 단행했던 화폐 개혁이 사실상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가운데 시장경제가 다시 살아나는 움직임을 보인다고 합니다. 현재 상황부터 설명해 주시지요?
기자:
시장이 다시 기능을 발휘한다는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 언론의 보도를 보면 북한 당국은 최근 모든 시장에서 공산품을 포함한 각종 물품의 판매를 다시 허용했습니다. 또 폐쇄된 대도시의 종합 시장도 일부 거래를 시작했다고 알려졌습니다. 평양의 통일거리 시장도 지난달 말부터는 일부 문을 열었습니다. 시장과 함께 문을 닫았던 외화 상점도 다시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이와 함께 북한 당국은 4일 각지의 시장 입구에다 품목별 ‘국정 가격’ 다시 말해 ‘한도 가격’을 고시함으로써 상거래를 다시 허용하는 한편 강력한 물가 통제에도 나섰습니다. 한마디로 시장은 이전 만큼은 아니지만 이전 분위기를 어느 정도는 되찾았다고 보입니다.
앵커:
북한이 시장을 폐쇄할 때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까?
기자:
열흘에 한 번씩 열리는 농민시장에서만 농산물을 거래토록 할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종합 시장은 폐쇄한다는 복안이었습니다. 북한 당국은 이렇게 함으로써 문란한 상거래를 원천적으로 막는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겉으로만 드러나는 이유보다도 시장은 북한이 체제를 유지하는 데 바람직하지 않은 요소를 많이 안고 있었습니다. 특히 시장에서 돈을 벌어서 힘을 기른 신흥 자본가 세력은 체제에 항거하는 세력이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습니다. 북한 당국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화폐 개혁과 함께 모든 시장을 폐쇄하는 조치를 내렸습니다.
앵커:
그렇다면 북한 당국은 왜 시장을 다시 허용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까?
기자:
시장 폐쇄의 부작용이 너무나도 크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시장이 그동안 나름의 기능을 발휘해 왔는데 이를 못하게 되자 즉각 부작용이 나타났습니다. 시장 기능이 억제되면서 물자가 나오지 않아 물자 품귀가 바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에다가 북한 당국이 100 대 1의 화폐 개혁을 하면서도 인민의 불만을 무마하려고 임금은 그대로 둬 결과적으로 새 돈이 엄청나게 풀린 셈이 됐습니다. 이 같은 통화 팽창에다가 시장의 폐쇄는 설상가상(雪上加霜)의 결과를 낳았습니다. 시장이 기능을 잃고서 식량을 공급하지 못하자 마침내 함경도의 단천과 청진 등지에서는 굶어 죽은 사람까지도 생겨났습니다. 여기저기서 대혼란이 일어났습니다. 급기야 김영일 내각총리가 5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인민반장들에게 화폐 개혁에 관해 사과를 했다고 합니다.
앵커:
그동안 시장은 북한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길래 이렇게 굳건히 자리를 잡았나요?
기자:
시장은 2003년 3월 ‘시장 장려 조치’가 나온 뒤에 주민의 경제생활에 굳건하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배급제가 무너져서 생긴 공백을 메웠기 때문입니다. 다수 대북 경제 전문가는 이 같은 시장화가 이제는 되돌릴 수가 없는 정도가 됐다고 진단합니다. 북한 당국도 국가 힘만으로 부족한 물품의 공급을 할 수가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각지에 종합 시장을 세웠습니다. 북한 당국이 걱정하는 자본가의 생성, 돈맛을 본 관리의 부패, 민감한 정보의 유통 등과 같은 폐해가 그 이후에 나와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북한 당국이 시장을 폐쇄하려면 주민이 먹고 살 수는 있을 만큼의 배급을 해야 하는데 그럴 능력이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북한 당국은 시장이 눈엣가시인데도 이를 막을 수도 허용할 수도 없는 난처한 처지에 있습니다.
앵커:
북한 당국은 이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왜 시장 폐쇄라는 무리수를 두었습니까?
기자:
아마도 안정적인 후계 구도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라고 보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현재 건강과 나이를 고려할 때 한시가 바쁩니다. 작년 1월 후계자로 내정됐다고 알려진 세째 아들에게 안정적인 상황을 물려줘야 합니다. 그런데 그동안 시장을 통해 돈을 모아 통제권에서 벗어나려는 세력은 안정적인 상황에 저해가 됩니다. 그래서 김 위원장은 세째 아들에게 권력을 승계하는 일 자체가 시장 세력을 놔두고서는 어렵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분석됩니다. 그렇지만 시장 폐쇄는 작금의 사태를 볼 때 후계 구도의 안착에 부정적인 영향만 남기고 말았습니다.
앵커:
북한 당국이 시장을 다시 허용하는 조치를 취하면 지금의 경제난을 어느 정도는 진정시킬 수가 있나요?
기자:
단기적인 관점에서는 그렇다고 보입니다. 시장의 재허용은 화폐 개혁과 시장 폐쇄 이후에 급속하게 악화한 식량난을 완화하려고 시장의 상거래를 허용하고 동시에 물가 폭등을 막으려는 대책으로 분석됩니다. 그렇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시장의 원리와는 맞지 않는 한도 가격의 설정이나 기타의 제약 요인을 감안한다면 시장이 원활하게 작동하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북한 당국이 내린 시장의 재허용은 일단 발 앞의 급한 불을 끈 상태로 보면 됩니다.
앵커:
이런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북한 당국의 조치로는 무엇을 예상할 수 있습니까?
기자:
시장 개방과 외화 사용을 이전 수준으로 돌리는 조치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북한 당국이 극심한 물자 부족의 상태에서 화폐 개혁과 시장 폐쇄를 단행해 이런 사태를 초래한 만큼 이것은 상황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방안입니다. 그래야 주민의 불만과 불안을 어느 정도는 해소할 수가 있습니다. 이와 함께 김 위원장이 인민에게 물자를 공급하기 위해서 중국에 손을 벌일 가능성도 나옵니다. 북한 경제가 앞으로는 시장 개혁으로 방향을 잡는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북한 당국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보다도 물자의 공급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합니다.
앵커:
그런데 현재 북한은 중국 외에 물자를 얻을 곳이 한국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이 이 난국을 돌파하기 위해 남북 정상회담에 적극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습니까?
기자:
북한은 자체적으로 물자를 공급할 능력이 없어서 중국 외에는 한국에다 손을 내밀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쌀이 남아돌아서 처리를 놓고 고심합니다. 북한은 핵, 국군 포로, 납북자 문제에서 양보하면 대규모의 식량 외에 물품도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식량난 해소도 가능합니다. 이 점을 잘 아는 북한은 남북 정상회담에 적극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앵커:
네, 지금까지 다시 살아나는 북한의 시장에 관해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