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여성 6명, 남한행 위해 제3국 이동

중국에서 인신매매를 당해 팔려 다니던 탈북 여성 6명이 12일 현재(미국시간) 남한으로 가기 위해 동남아 제3국을 경유하고 있습니다. 이 여성들은 30대부터 40대 중반까지로, 미국의 인권 단체 ‘318 파트너스’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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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서 기자가 보도합니다.

중국에서 인신매매를 당해 자신이 원하지 않은 생활을 하며 고통받았던 탈북 여성 6명은 현재 남한으로 가기 위해 중간 거점이 되는 국가로 이동 중입니다. 자유아시아방송 (RFA)과 통화가 이뤄진 것은 이들이 중국 국경을 넘어 안전가옥에서 다음 행선지로 가기 직전입니다.

이 탈북 여성들은 돈을 벌려고 중국으로 갔다가 중국에서 인신매매를 당했거나, 북한에서 부터 속아서 중국의 한족에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 팔린 경우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사람과 짧게는 수년, 길게는 10년 동안 외부 세계와 단절된 산골이나 농촌마을에서 고통과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야 했다는 사실입니다.

6명의 탈북 여성 중 함경북도 은덕 출신의 최 씨 성을 가진 여성은 탈북해 중국에서3차례의 강제 북송을 당했습니다. 최초의 탈북은 2001년입니다.

최 씨: 살기가 너무 힘들어서 친구와 물고기 장사를 하자고 했습니다. 배에서 물고기를 받아 판다는 사람에게 빌린 돈을 전부 줬는데 물고기는 커녕 빌린 돈도 돌려받지 못해서 탈북했습니다.

중국에선 노동을 해도 탈북자라는 이유로 돈 한 푼 만져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조선족 집에서 보모일, 식당과 다방에서 접대원 등을 전전하면서 살다가 최 씨는 돈에 팔려가는 신세가 됩니다.

최 씨: 처음엔 중국 사람에게 팔려가서 한 20일 있었습니다. 그 기간에 같이 살던 중국 사람의 남동생이 꼬장했습니다. 나는 사람이라기보다 물건이었습니다. 얼마나 창피하고 괴롭던지.

그래도 중국 공안에 붙잡혀 강제북송을 당하는 일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만큼 최 씨에게 북송 당해 온성집소에서 받았던 고문은 무서웠습니다.

최 씨: 뇌진탕으로 3일동안 까무러져있었습니다. 머리가 너무 아팠습니다. 그래서 밥도 먹을 수 없었습니다. 한 20일 제대로 먹지 못 했는데 나중엔 너무 배가 고파 음식을 먹었는데 전부 토해버렸습니다.

6명 중 또 다른 탈북 여성은 사랑한다고 믿은 남자의 배신으로 중국 공안조차 찾지 않는 깊은 산골에서 20대 청춘을 고스란히 보내야 했습니다.

이 씨: 남자 친구는 중국이 경제도 좋고 살기 좋다며 같이 가서 살아보자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산골에 사는 한족에게 절 팔아넘겼던 겁니다.

1998년 중국 돈 8천 원에 자기보다 12살이 많은 한족에게 팔려가 산 세월은 결코 자신이 원했던 생활이 아닙니다.

이 씨: 내가 도망 나오려고 수차례 시도했으나 교통도 불편하고 말도 통하지 않아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저보다 12년 나이가 많습니다. 10년 동안 고통스럽게 산 이야기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계속 울면서 살았습니다.

이 씨는 자신이 살던 곳에서 30분 정도 내려간 곳에 있는 마을에 또 다른 탈북 여성의 도움으로 이번 남한행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20살에 팔려가 이제 30살이 된 이 씨는 유일하게 중국에서 마음을 터놓고 지내던 동네 언니에게 남한으로 가면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2년을 준비한 끝에 중국을 벗어났습니다.

이 탈북 여성 6명은 중국을 떠나 최소한 2개 이상의 동남의 국가를 경유해야 합니다. 낮에는 자고 밤에는 이동해야 하고 때로는 위험한 산길과 바다처럼 넓은 호수도 건너야 합니다. 기자가 재차 전화 통화를 시도했을 때도 이들 일행은 자정이 가까운 시각이었지만 기차로 이동 중이었습니다. 이들을 인솔하는 안내인 김 씨의 말입니다.

김 씨: 내가 데려오는 사람의 80%는 여자입니다. 그분들 사연을 들을 때마다 우리 북한은 언제 이런 일에서 벗어나랴 이런 생각밖에 없습니다.

긴 통화가 어려울 정도로 울먹였던 이들 탈북 여성이 공통으로 하는 말은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게 아니라 남한에서 신분증을 받아 당당하게 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