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진서 기자가 보도합니다.
(저는 원래 꿈이 물리학자가 되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탈북을 했고 그런데 오랫동안 중국에서 구슬려지다 보니 어떤 때는 그런 꿈도 몽롱해지고… )
자신의 꿈을 이루려고 부모 형제와 눈물의 이별을 해야 했던 북한 청년이 2004년 3월 남한에서 대학에 편입한 뒤 기자와 전화 인터뷰한 내용을 잠시 들어봤습니다. 이제 이 탈북 청년은 남한에서 대학생활을 마치고 자신의 꿈에 한 발짝 더 다가서게 됐습니다. 이 청년에게 직접 자기소개 들어봅니다.
박기명: 북한에서 일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평양의 명문대학을 다니다 탈북했습니다. 한국에선 서울의 명문 사립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올해는 미국의 명문 주립대에서 입학 허가를 받았습니다. 지금 출국 날을 기다리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도, 남한에서 공부한 대학도 밝히지 못하는 이 탈북자는 자신의 신분이 드러날까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혹시 북에 있는 가족이 어려운 상황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입니다. 그래서 방송에 소개되는 이름도 박기명이라는 가명을 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앞으로 미국에 가서 열심히 해야죠. 빠른 시일 내에 박사 학위를 받고 다른 대학에서 박사후 연구원 자리도 알아봐서 이 과정을 거쳐 나중에 교수가 되고 싶습니다. 전공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학자가 되고 싶습니다. 노벨상을 받을 정도로 큰 학자가 되고 싶습니다. 큰 학자가 돼서 과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정말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쓰임 받는 학자가 되려는 겁니다.<br/>
박 씨는 남한에서 대학을 졸업한 탈북자로서 미국의 이공계 박사 과정에 진학하는 첫 번째 주인공이 됐습니다. 신변 문제로 남한에서 크게 보도되진 않았지만 박 씨의 소식을 접한 탈북자들은 모두 축하하는 분위기입니다. 이제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가 1만 명에 이르는 시대에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는 탈북자가 곧 나오게 됐다는 또 하나의 희망을 봤기 때문입니다.
박 씨가 전액 장학금을 받고 미국 대학의 물리학 박사과정에 들어 갈 수 있었던 건 단순히 운이 좋았거나 또는 탈북자로 혜택을 봤기 때문이 아닙니다. 박 씨는 어릴 때부터 수학을 좋아했고 북한에서 각종 수학과 물리 경시대회에 입상하는 등 자연과학 분야에서 재능을 인정받았습니다. 남한 대학에서 공부할 때도 수학과 물리는 한글 용어가 좀 달라서 애를 먹기도 했지만 영어 원서로 공부할 땐 이해가 빨랐습니다. 북한에서부터 국제물리올림피아드를 준비하느라 러시아어와 일본어를 배우고 러시아에서 나온 영문판 문제집을 공부했기 때문에 영어 원서를 보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박 씨는 중국어에도 능통합니다. 회화를 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하기 위해 4개 국어를 할 정도니 박 씨가 얼마나 공부를 하고 있으며, 공부에 대한 집념이 강한지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오는 7월 미국행을 앞두고 영어를 정복하기 위해 밤낮없이 애쓰고 있습니다.
박기명: 아침에는 7시부터 영어 수업을 듣습니다. 무료로 수업받는데 그 수업을 받고10 시쯤에 회화 수업 1시간짜리 듣고 그 후에는 학원 자습실에서 전공 공부를 하고 영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선 영어로 수업을 듣고 강의를 하자면 영어로 가르쳐야하니까 영어 능력이 중요하거든요. 영어 공부를 많이 합니다. 또 생활비를 벌기 위해 서울 시내에 있는 사립대학에 나가서 일반 물리학 강의를 하고 대학생 과외 지도를 하며 물리 올림피아 나가는 중학생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출국해서 미국에 도착하면 정착비가 많이 들 거니까 돈을 좀 모아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남한에서 대학 측의 특별한 배려로 3학년에 편입해 한 학기도 쉬지 않고 공부한 덕에 학사와 석사 과정을 4년 만에 마쳤지만 박 씨는 박사 과정은 미국에 가서 하기로 결심을 굳혔습니다. 그 이유는 너무도 현실적인 문제 때문입니다.
박기명: 미국은 한국보다 장학금도 더 많이 줍니다. 한국의 대학원생은 연구비나 장학금으로 등록금 메우기도 힘듭니다. 생활이 되지 않으니까 과외도 합니다. 하지만 미국에 가면 장학금 제도가 잘 돼 있어서 과외도 할 필요 없고 미국에 사니까 영어 공부를 따로 할 필요가 없습니다. 미국 사람들과 사니까 영어도 늘고 여러 가지 이점이 많죠.
박 씨는 2007년 대학원을 졸업할 무렵 남한 여성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8월 이면 아들이 첫 번째 생일을 맞습니다. 남한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자면 대학 강의를 돕는 조교로 일하면서 학교에서 나오는 생활비로 세 식구가 먹고 살아야하는데 그러자면 연구에 몰두하기 어렵고 학위를 받는 데 시간이 더 들겠다는 생각을 한 겁니다.
박 씨가 받은 미국 비자는 7년. 보통 사람들은 박사 과정을 5년에 마친다고 하지만 박 씨는 3-4년 안에 과정을 끝낸다는 분명한 목표를 세워놓고 있습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제 곧 탈북자 중에 핵물리학 박사가 탄생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의 꿈은 거기서 머물지 않습니다.
박기명: 앞으로 미국에 가서 열심히 해야죠. 빠른 시일 내에 박사 학위를 받고 다른 대학에서 박사후 연구원 자리도 알아봐서 이 과정을 거쳐 나중에 교수가 되고 싶습니다. 우리 전공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학자가 되고 싶습니다. 노벨상을 받을 정도로 큰 학자가 되고 싶습니다. 큰 학자가 돼서 과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정말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쓰임 받는 학자가 되려는 겁니다. 한민족의 평화와 이익을 위해 헌신하고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박 씨는 한때, 탈북해서 중국에서 떠돌며 자신의 꿈을 포기할 뻔했습니다. 그리고 남한에서도 새벽에 학교 도서관을 찾아 밤늦도록 공부를 하면서 가끔 북에 있는 가족들 생각에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박 씨는 절대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해야 할 일에 충실했기에 오늘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면서 후배들에게도 꿈과 용기를 잃지 말라고 당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