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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면의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에는 수산자원이 풍부해 한국 사람들이 사철 신선한 물고기를 먹고 있습니다. 북한도 주민들의 식생활 개선을 위해 여러 가지 인공양어사업을 십년 넘게 벌이고 있지만, 매번 실패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정영기자입니다.
80년 역사를 자랑하는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 이곳에는 각종 물고기들이 차고 넘칩니다. 바닷물고기에서 양어물고기까지 고기 어종도 다양합니다.
하루 거래되는 수산물의 종류는 약 370종, 무게는 약 500톤이 넘습니다. 휴일이면 한국 사람들은 시중보다 약 20%에 더 싸게 물고기를 살 수 있어 가족들과 함께 나와 마음에 드는 물고기를 골라다 먹고 있습니다.
한국의 일반 슈퍼, 그러니까, 일반 상점에만 나가도 신선한 물고기를 살 수 있고, 도처에 있는 횟집들에서는 수족관에서 금방 건져낸 활어 회를 먹을 수 있습니다.
북한도 이렇게 물고기를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고 몇 년째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양어사업은 주민들의 식생활 개선을 위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야심차게 벌여온 경제활동 중 하나입니다. 최근에 있은 김 위원장의 경제관련 부문 시찰 중에서 양어장 시찰은 빼놓을 수 없는 단골메뉴였습니다.
실례로 지난 8월 김 위원장은 구장양어장을 찾아 주민들에게 더 많은 칠색송어를 생산해 인민들의 식탁을 푸짐하게 하라고 지시한 곳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사실 일제 때부터 내려오던 구장 양어장은 90년대 중반 홍수에 묻혀 거의 땅에 매몰되었지만, 북한이 양어사업을 본격화 하면서 다시 재생되었습니다.
북한은 90년대 중반부터 전국에 메기양어 못을 파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래서 평양시 각 구역과 중앙기관, 중앙병원 앞마당에는 양어 못이 건설되기 시작했습니다.
대동강과 거리가 먼 양어 못 옆에는 대형 우물도 큼직하게 팠습니다. 그 우물의 물을 펌프로 끌어올려 양어 못에 채우고 물고기를 기른다는 것입니다.
구역의 양어장을 건설하기 위해 학생들은 수업을 마치고 삽과 맞들이(두 사람이 짐을 나르는 들것)를 들고 못을 팠다고 몇 년 전 한국에 나온 평양출신 탈북자는 말했습니다.
북한은 이렇게 건설된 양어장들에 열대메기를 키우라고 지시했습니다. 그 뒤, 북한 선전매체들은 김정일 위원장이 찾아간 양어장마다 메기가 욱실거리고, 거기서 생산된 물고기들이 평양의 식당들에서 팔리고 있다는 보도를 이따금씩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 나온 탈북자들은 북한에 있을 때 메기를 먹어본 기억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 평양출신 탈북자도 대동강 구역에 건설된 양어장들에는 몇 년째 메기가 한 마리도 없었고 드러난 바닥은 거북잔등처럼 갈라져 있고, 그나마 물이 고인 곳은 여름에 ‘모기서식 장’으로 변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김 위원장이 찾아간 양어장들에는 고기가 욱실거리고 가지 않는 곳에는 양어장이 폐쇄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북한은 2009년 신년공동사설에서 양어중시 사상을 밝히고 수산당국은 양어를 과거에 비해 2배로 증식시킨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양어사업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은 우선 이 사업이 현실적 기후 조건이 맞지 않고, 대중적으로 벌리다보니 전문성이 떨어지고 사료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한국에서 뱀장어를 키우고 있는 한 양어전문가는 말합니다.
“장어가 키우기도 힘들지만, 실패원인도 많아요. 산소가 부족해서 죽을 수도 있고, 장어는 실패가 제일 심한 것은 아질산이라고 하는데 쉽게 말해서 사람이 방귀를 뀌면 산소를 다 잡아서 아질산이라고 하거든요. 아질산이 많이 나오면 고기들이 숨을 쉬지 못해서 다 죽어요.”
뱀장어의 경우에 물 온도와 산소, 사료 등 기술적 문제가 요구되기 때문에 너도나도 기르는 식으로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사료 없이 기른다는 ‘논판양어’의 경우도 실패하기는 마찬가집니다. 황해도를 비롯한 곡창지대의 논밭에 실시된 ‘논판양어’, 말하자면 양어 못을 따로 파지 않고 논판에 메기를 놓아주었다가 5개월 뒤에 가을할 때는 1.5kg까지 자란 고기를 잡는 다는 양어방식입니다. 단순계산으로 해봐도 1정보에 1만5천 마리만 넣어두면 가을에 최고 300~400톤을 건질 수 있다는 게 당초 북한의 타산이었습니다.
그러나 열대지방과 기후가 다른 북한에서 메기가 자랄 수 없거니와 먹을 것이 없어 그마저도 실패했다고 황해북도 출신 탈북자는 말합니다.
“논판에 넣어 키운다고 해도 먹이를 안줘도 그 고기가 성장할 수 있는 먹이 시스템이 돼있어야 되는데 그게 안 된다 이거지요. 메기를 넣는다고 하면 논판에 있는 달팽이라든가, 미꾸라지라든지 올챙이라든지 이런 것을 잡아먹어야 되는데 그게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북한 주민들은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에서 양어장은 왜 필요한가? 바다에 있는 고기만 잘 잡아도 되는데..”라는 불평을 부렸다고 다른 탈북자들도 당시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수산자원이 풍부한 북한에서 양어사업을 애써 벌이는 이유는 물고기 잡이 그물과 어구가 턱없이 부족하고, 기름이 없어 배들이 출항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조금씩 잡는 물고기는 노동당과 군부대 외화벌이 단체들이 포구에서 인수해 외국에 팔아 외화를 벌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빈번히 실패하는 양어사업은 북한 실정에 맞지도 않는 외국의 양어기술을 교조적으로 받아들인 북한 지도부의 섣부른 판단 때문이라고 북한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지난 70~80년대에는 북한의 중앙텔레비전에 물고기가 사태처럼 쏟아지는 장면들이 방영되곤 했지만, 지금은 옛말이 된지 오래됐습니다.
바로 30년 전 그때처럼 북한 주민들도 바다에 풍부한 물고기도 잡고, 실정에 맞는 양어사업을 해서 사철 신선한 물고기를 맛보는 그날을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