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미국 정부와 유럽 연합 등이 분배 감시의 투명성이 보장되면 북한에 대한 식량 지원에 나설 가능성을 내비친 가운데 식량 지원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습니다. 분배 감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뿐더러 대북 지원이 오히려 북한 주민의 생활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노정민 기자가 우려의 목소리를 종합해 봤습니다.
미국 정부가 대북 식량 지원의 재개를 검토하고 이에 관한 논의를 진행 중이라는 보도 이후 지난달 자유아시아방송(RFA)에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2년 반 전에 미국에 정착한 탈북자 김 명국(가명) 씨. 13년간 북한의 특수부대에서 근무했다는 김 씨는 자유아시아방송에 보낸 편지에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더는 북한에 쌀을 지원하지 말아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김 씨는 지금 북한에서 식량이 많이 모자란다고 하지만 2호 창고, 즉 군량미 창고에는 전쟁을 대비해 최소 4~5년간 버틸 수 있는 물자들이 가득하다며 특히 오는 4월까지 군량미를 수집하는 기간인 만큼 외부에서 지원한 대부분의 식량은 북한 당국의 군량미로 전용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지원된 쌀은 북한의 국가 보위부나 그 산하 단체에 보내져 북한 주민에게 전달되지도 않을뿐더러 최근에도 북측과 연락해 보니 일반 북한 주민도 미국과 한국 등에서 지원하는 쌀을 기대하거나 이에 의존하지도 않는다는 게 김 씨의 설명입니다.
끝으로 김 씨는 현재 자신의 가족들도 북한에서 장사를 해 강냉이밥이라고 먹고 살듯이 일반 북한 주민도 지원 없이 알아서 살아가니 미국과 국제사회가 북한의 지원 요청을 받아들여 북한의 민주화와 개혁 개방, 변화의 시기를 늦추는 일은 제발 하지 말아 달라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최근 미국 정부와 유럽 연합 등 국제사회는 식량을 지원해 달라는 북한의 요청에 따라 국제기구를 통한 식량 상황 조사에 착수하고 철저한 분배 감시의 투명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조건 아래 대북 지원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아무리 분배 감시의 투명성을 약속한다 해도 북한에 지원한 식량이 온전히 북한 주민에게 전달될 수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작지 않습니다.
한국 내 대북방송인 ‘자유북한방송’도 지난 4일 북한 함경북도 주민의 말을 인용해 “북한의 군부와 당 간부계층의 배만 불려주는 대북 쌀 지원은 바라지 않는다”는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국제사회로부터 쌀이 몇십만 톤씩 들어와도 북한 주민은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으며 군부와 당 간부계층만이 이를 차지하기 때문에 북한 주민은 오히려 쌀 지원을 반기지 않는다는 설명입니다.
실제로 최근 북한의 잇따른 지원 요청은 식량난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2012년 강성대국을 앞둔 비축용, 또는 군대용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의 ‘열린북한방송’도 7일 북한의 잇따른 식량 지원 요청은 군량미 보충과 추가 도발을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전제하고 북한 주민의 80% 이상이 시장에 의존해 살아간다며 “철저한 분배 감시가 없는 국제사회의 식량 지원은 오히려 주민의 생활을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했습니다.
미국 북한자유연합의 수잔 숄티 대표도 식량 지원이 재개되더라도 전달하는 데만 그치지 말고 북한 주민이 이를 소비하는 것까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7일 자유아시아방송에 주장했습니다.
Suzzane Scholte:
과거에 북한에 식량을 지원했던 일부 민간단체들도 지원된 식량이 북한 군부에 의해 잘못 사용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북한 정권은 지원을 북한 주민이 아닌 무기를 만드는 데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식량 지원을 재개하더라도 전달하는 데만 머무르지 말고, 그것을 북한 주민이 소비하는 것(먹는 것)까지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따라서 분배 감시의 투명성 없이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는 것은 북한 주민을 탄압하는 행위를 돕는 것이라고 숄티 대표는 거듭 강조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를 역임했던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도 지난달 24일 논평을 통해 대북 식량지원이 북한 주민을 악랄하게 대하는 북한 정권의 생존을 도울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국무부의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지난 1일 열린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분배 감시의 투명성을 조건으로 대북 식량 지원에 나설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식량 지원의 관리와 지원한 식량이 다른 곳에 전용되는지를 확인하지 못할 경우 식량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의회도 분배 감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 식량 지원의 재개에 동의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입니다.
또 유럽연합 위원회(EU Commission)도 북한에 지원한 식량이 적절한 분배감시 아래 꼭 필요한 주민에게 전달되는지를 확실히 해야 식량을 지원하겠다고 지난 3일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힌 바 있습니다.
한편, 한국의 북한민주화위원회는 2007년 탈북자 250명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100명 중 8명만이 한국에서 지원한 쌀을 받아봤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