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오시천 시장, 옛 명성 되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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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 고려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우리나라의 가장 큰 장마당 중의 하나였던 대오시천 시장, 북한 당국이 지역개편을 하면서 없애버렸던 대오시천 시장이 최근 들어 온갖 '되거리(중개상)' 상거래의 중심지로 떠오르면서 옛 명성을 되찾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문성휘 기자가 보도합니다.

대오시천 시장이라고 하면 고려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북부지방에서 가장 크고 역사가 깊은 장마당(시장) 중의 하나였습니다. 과거 이곳 장마당을 통해 상인들은 해안가에서 가져온 소금과 건어물, 절인 고등어를 중국동북지방에서 생산된 비단, 인삼, 놋그릇들과 바꾸어 가기로 유명했습니다.

일제 강점기까지만 해도 함경남도 갑산군에 속해있으면서 유명한 장마당과 예배당(교회당), 절간들로 흥행하던 대오시천면은 해방 후 김일성 주석이 지역개편을 단행하면서 자그마한 농촌마을로 쇠퇴했습니다. 예배당과 절간들은 모조리 헐리었고 대오시천 장마당은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회오리 속에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대오시천 장마당이 북한 국경지역과 내륙지역을 연계하는 ‘되거리’ 장사꾼들의 불법 상거래 중심지로 변하면서 요즘 들어 다시 유명세를 타고 있다고 복수의 양강도 소식통들이 전해왔습니다.

최근 연락이 닿은 양강도의 한 소식통은 “대오시천 역전주변이 통째로 장마당으로 변했다”며 “이곳에서 거래되는 물품들은 대부분 ‘앞지대(함북 길주 이남지역)’에서 들어 온 통제품(통제품목)들”이라고 말했습니다.

밀수품과 마약 등과 같은 통제품들은 단속이 하도 심해 ‘앞지대’에서 국경연선 지역들까지 직접 반입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런 틈을 노려 ‘되거리(중개상)’ 장사꾼들이 중간지역인 대오시천 장마당에서 여러 가지 통제품들을 전국에 유통시키고 있다고 소식통은 덧붙였습니다.

통제품들에 대한 ‘되거리’ 장사가 유명해지면서 대오시천 역전주변은 도심중심가 못지않게 집값이 오르고,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이 삼삼오오 길거리에서 잠을 자거나 패싸움을 벌리는 것과 같은 기현상이 일상화되어가고 있다고 그는 언급했습니다.

또 다른 양강도의 소식통은 “요즘 양강도 간부계에서는 ‘승급(승진)을 하려면 대오시천에 배치 받는 게 상책’이라는 우스갯말까지 나돌 정도”라며 “그곳에서 1년만 근무하면 출세하는데 필요한 뇌물을 마련할 돈을 충분히 벌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법기관 하급직이나 하급 당 간부들은 불법 상거래가 판을 치는 대오시천에 배치 받으면 ‘되거리’ 장사꾼들 단속으로 떼돈을 벌수 가 있어 누구나 그곳에 배치받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소식통은 설명했습니다.

한편 소식통들은 “최근 양강도에서 크게 출세한 간부들을 보면 대부분 대오시천에서 근무했던 경험들이 있다”며 “그들 대부분이 ‘되거리’ 장사꾼들로부터 얻은 돈으로 뇌물을 바치고 출세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