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러시아에 진출한 북한 건설 회사들은 노동자들이 탈북을 꾀할 경우 러시아 정보 당국에 이들을 간첩으로 신고한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양성원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러시아 극동 연해주 지역에서 일하고 있는 북한 건설 노동자 김 모 씨는 5월 중순 현지에서 자유아시아방송(RFA)과 만나 건설 현장을 이탈해 이른바 ‘탈북’에 나서는 북한 노동자들이 있긴 하지만 흔하진 않다고 말했습니다.
일단 북한에 두고 온 처와 자식들이 자신의 탈북으로 인해 겪어야 할 고초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북한 당국이 해외 파견 노동자의 탈북을 막기 위해 반드시 이들의 처자식을 북한에 인질로 잡아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바로 현지 북한 회사 측에서 작업장을 이탈한 노동자를 러시아 정보기관인 연방보안국(FSB)에 간첩으로 신고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김 씨의 설명에 따르면 러시아 내 북한 회사에도 ‘부지배인’ 등의 명칭으로 북한 보위부 요원들이 나와 있지만 이들은 직접 이탈 노동자를 체포하러 다니지 않고 일정 기간 기다립니다.
그러다 러시아 정보 당국에 신고하면 이들이 3일 내에 신속히 이탈 노동자를 체포해 온다는 것입니다.
김 씨: 이 인물 간첩이야, 잡으라, 그러면 3일 내에 잡아요. 우리가 신청하면 3일이면 답이 옵니다. 그러면 석고 붙여서 (북한으로 송환되는데) 감옥행, 정치범 교화소로 가는데, 거기 가면 끝입니다.
김 씨는 북한 건설 노동자들이 러시아에서 열심히 일을 하지만 ‘개별청부생(회사 일을 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일감을 구해 일하는 노동자)’일 경우 러시아 화폐 약 4만 루블, 즉 미화로 800 달러 씩 매달 회사에 반드시 바쳐야 하는 납입금이 너무 많아 항상 빚쟁이 같은 심정으로 살아간다고 말했습니다.
일감이 없어 납입금을 바치지 못하면 동료 등 여기저기서 돈을 꿔야 하며, 일을 다 끝내지도 못했는데 납입금을 바쳐야 하는 특정 날짜가 돌아오면 일감을 준 고용주에게 공사비를 미리 선불로 달라고 애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 씨는 또 공사 현장에서 사고로 몸을 다쳐 일을 하지 못할 때도, 또 북한에 처자식을 만나러 다녀오는 기간에도 어김없이 납입금은 매달 바쳐야 하기 때문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또 휴일에도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습니다.
그러면서도 납입금을 제 때 바치지 못해 딱한 사정에 있는 북한 노동자들이 부지기수지만 이들은 자살 등 극단적인 선택은 또 쉽게 할 수 없다고 탄식했습니다.
김 씨: 내가 여기서 자살해 죽으면 내 처, 내 아이가 망합니다. 우리는 자살자 하면 대, 대로 타격을 받습니다. 정권에 대한 반항주의자로, 죽고파도 못 죽어요. 자유가 없다고, 아예 없어요.
이들의 생활을 지켜본 현지 한인들은 북한 노동자들을 ‘북한’이란 국가가 외화 획득을 위해 해외로 내보낸 ‘앵벌이’로 밖에는 볼 수 없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