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북한의 실상을 폭로한 기록영화 '태양 아래서'가 이번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개봉 직전 상영이 취소된 가운데 모스크바 주재 북한 대사관의 항의가 이번 결정의 배경임을 증명하는 문서가 공개됐습니다. 박정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주민들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통제하고 연출하려는 북한 당국의 시도를 폭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기록 영화 ‘태양 아래서.’
효과음: 영화 ‘태양 아래서’
러시아의 비탈리 만스키 감독은 평양에 사는 8살 소녀 진미가 조선소년단에 가입해 태양절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을 따라갑니다.
그는 매일 촬영한 필름을 검열한 북한 당국의 감시를 피해 북한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기록 영화를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27일부터 러시아 모스크바 시내 극장에서 상영될 예정이었던 이 영화는 극장 측이 상영 직전 이를 취소하는 바람에 관객을 만나지 못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러시아 일간 ‘노바야 가제타 (Новая газета)’는 이와 관련해 모스크바 주재 북한 대사관의 영화 상영 방해 압력을 입증하는 문건을 확보했다고 보도(10월25일자)했습니다.
신문이 공개한 문서는 러시아 문화부가 10월18일 북한 대사관 앞으로 보낸 공문으로 ‘상영될 판본은 감독이 새로운 내용을 추가했고 아직 문화부의 상영 허가를 받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공문은 ‘애초 상영 허가가 난 판본은 북러 간 건설적이고 긍정적인 협력 정신에 부합하는 내용이었다’고 덧붙였습니다.
결국 북한 대사관이 영화 내용을 문제 삼아 러시아 문화부 측에 이의를 제기했고 러시아 측이 북한의 손을 들어줬다고 신문은 꼬집었습니다.
‘태양 아래서’의 러시아 배급사 측은 애초 영화의 판본은 상영시간 1시간 46분짜리 한 개뿐이었다고 반박했습니다.
또 상영 예정관들이 바쁜 일정 탓에 영화를 상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힌 데 대해서도 ‘왜 갑자기 상영 직전에 바쁜 일정이 생겼냐’고 되물었습니다.
한편 ‘태양 아래서’의 상영 취소에 대한 러시아 영화인들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어 주목됩니다.
‘메트로’ 신문은 27일 영화인들이 이번 조치가 러시아 헌법에 보장된 창작의 자유와 검열 금지 규정을 어겼다며 반발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신문은 ‘소련 시절로 되돌아 가자는 얘기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통제사회인 북한의 실상을 드러내는 영화가 공교롭게도 러시아에 여전히 드리워진 옛 소련의 어두운 그림자를 폭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