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그랜드 바긴 Q/A]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 핵 문제를 일괄타결하는 방안으로 내놓은 '그랜드 바긴'은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제안은 북핵의 가장 직접적인 당사자인 한국의 국가원수가 내놓은 방안이라는 점에서 일단 검토할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보입니다.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앵커:

허형석 기자, 이명박 한국 대통령이 21일 뉴욕에서 북한 핵 문제를 일괄타결하기 위해 내놓은 방안의 영어 이름인 ‘그랜드 바긴(Grand Bargain)’의 뜻부터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허형석:

우선 ‘grand’는 ‘웅대하다/장려하다’는 뜻 이외에 ‘모두 포함한/총괄적인’이란 의미까지 있습니다. ‘bargain’은 ‘거래/계약/협정’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양쪽의 의미를 합하면 ‘총괄적 거래/계약/협정’이란 뜻이 됩니다. 이는 일괄타결이란 의미로 통용됩니다. 한국에서는 국제화 시대를 맞아 상품 또는 계획, 방안 등의 명칭에 이처럼 종종 영어 이름을 붙입니다.


앵커:

이 대통령이 내놓은 ‘그랜드 바긴’의 주요 내용은 무엇입니까?


허형석:

이는 북핵 문제와 관련해 핵개발계획 중 핵심적 부분의 폐기와 상응하는 대가를 동시에 주고 받는 일괄타결 방식입니다. 이 대통령은 미국외교협회(CFR), 코리아 소사이어티, 아시아 소사이어티가 공동으로 주최한 오찬 간담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밝혔습니다. 이 대통령은 “6자회담을 통해 북핵 개발계획의 핵심 부분을 폐기하면서 동시에 북한에 확실한 안전보장, 즉 체제 보장을 제공하고 국제 지원을 본격화하는 일괄타결, 즉 ‘그랜드 바긴’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면 북한이 핵 폐기와 관련해 돌이킬 수 없는 조치를 취하면 6자회담 참가국이 그에 상응해 북한 체제를 보장하고 400억 달러의 국제 협력 기금을 북한에 지원하는 데 나선다는 내용입니다.

앵커:

이런 제안이 나오게 된 배경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허형석: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북한을 상대로 비핵화를 놓고 협상하면서 이를 한 번에 해결하는 방식 대신 중간 합의 단계를 두었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중간 합의 단계까지는 가면서 막상 결정적 단계에 이르면 이전 합의를 뒤집고 다시 새 판을 짜서 시간을 버는 전략을 구사해 왔습니다. 외교계는 이를 ‘살라미 전술’이라고 말합니다. ‘살라미’는 얇게 썰어 놓은 이탈리아 소시지를 말합니다. 이 대통령은 이 같은 기존의 협상 방식으론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판단해 이런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예를 들면 1994년에 미국과 북한의 제네바합의는 북한이 핵을 동결한다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아 깨졌습니다. 2005년 9.19 합의로 나온 핵 동결-핵 불능화-핵 폐기도 북한이 핵 실험을 하면서 더는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앵커:

‘그랜드 바긴’은 이 대통령이 처음으로 내놓은 독창적인 제안입니까?

허형석: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가 통설입니다. 이 대통령은 6월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만나 이전의 일괄타결 방안인 ‘포괄적 패키지(Comprehensive Package)’를 제시하고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 정부 당국자는 ‘그랜드 바긴’ 방안은 이것을 한 단계 더 구체화한 방식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대통령은 북한과 관련해 내놓은 대통령 선거의 공약이던 ‘비핵 개방 3000’을 지금까지 단계적으로 수정해 이에 근거해 이번에 ‘그랜드 바긴’을 제안했습니다.

앵커:

이명박 대통령은 외교무대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왜 ‘그랜드 바긴’을 발표했나요?

허형석:

한국 측 입장에선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고 보겠습니다. 한국은 북핵 문제에 직접적인 당사자로 북핵 문제가 타결되던 타결되지 않던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한국은 국제적 위상으로 미루어 그런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는 평가를 이미 받고 있습니다. 이 대통령의 ‘그랜드 바긴’ 발표는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북미 양자회담 또는 다자회담을 앞두고 북핵 문제와 관련한 협상에서 한국 정부가 일단 협상의 의제를 선점하고 협상의 주도권을 쥐고 나가겠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한국 정부는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이라고 하는 북한의 외교 전략으로 소외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통미봉남’은 ‘미국과 통하고 남조선은 막는다’는 의미입니다. 한국 정부는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가 나올 때 두 나라에 외교적으로 는 주도권을 뺏기고 경제적으로는 대북 경수로 지원만 떠안은 적이 있습니다. 이 대통령의 이번 제안은 이런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한 측면이 있습니다.

앵커:

아주 중요한 이야기인데 ‘그랜드 바긴’의 실현성은 얼마나 된다고 보입니까?

허형석:

북한이 살라미 전술로 재미를 봐 왔기 때문에 이 대통령의 이런 제안을 받아들이기는 어렵다고 보입니다. 북한은 되돌릴 수 없을 정도의 비핵화를 이행할 경우 더는 내놓을 카드가 없다는 불안감 때문에 쉽사리 이 대통령의 ‘그랜드 바긴’을 수용하기가 어렵다고 보입니다. 더구나 이 대통령이 언급한 체제 보장의 문제는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미국의 언급이 없는 한 그다지 의미가 없다고도 보입니다. 북한은 한국의 ‘그랜드 바긴’을 참고로는 하지만 이 방안에 근거해서 정책을 펴지는 않을 것으로 일단 전망됩니다.

앵커:

이 대통령의 ‘그랜드 바긴’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 있었습니까?


허형석:

아직 공식 반응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23일자 대북 온라인 소식지 <열린북한통신>은 북한의 고위급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절대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전했습니다. 이런 반응이 공식 반응이 아니어서 북한의 입장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대략 북한 정부의 의중을 드러낸 말이라고 보입니다. 이 대통령은 북한이 핵 개발을 위해 들인 노력을 너무 가볍게 생각한다고 이 북한 소식통은 말했습니다.


앵커:

북미 양자회담을 앞둔 미국의 반응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허형석:

미국 정부도 이렇다하게 공식적인 반응을 내놓지는 않았습니다. 더구나 이 대통령의 제안이 외교적 주도권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면 미국 정부도 반응을 자제할 상황입니다. 커트 캠블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내용을 잘 모른다”며 이를 비켜갔고 이언 켈리 국무부 대변인도 “그것(그랜드 바긴)은 내가 논평할 사안이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신문인 뉴욕 타임즈 (NYT)는 22일 실현 가능성에 회의적인 기사를 실었습니다.

앵커:

이명박 대통령이 북핵을 해결하려는 방안인 ‘그랜드 바긴’의 이모저모를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