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주민, ‘잔디심기 운동’에 시큰둥

앵커: 얼마 전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새로 건설된 잔디연구소를 둘러보고 전국에 잔디심기를 하라고 지시했지요, 하지만, 북한 주민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지시라고 실망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 정영기자가 보도합니다.

연일 전쟁분위기가 고조되던 북한에서 느닷없이 잔디심기 운동이 벌어질 전망입니다.

김정은 제1비서가 첫 민생현장 시찰로 잔디연구소를 방문하고 전국에 잔디심기 운동을 지시했기 때문입니다.

6일자 북한 중앙텔레비전:
지금 생땅이 드러난 곳이 많은데 보기에도 좋지 않고 바람이 불면 먼지가 일어난다고 하시면서 부침땅을 제외한 모든 땅에 나무를 심거나 풀판을 조성하며...

스위스 등 녹화가 잘 조성된 유럽을 경험한 김 제1비서가 북한에도 푸르른 잔디밭을 구상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하지만 이 보도를 접한 지방의 주민들은 소토지가 회수당할 것이라는 우려와 불안 속에 벌써부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평안북도 국경지방의 한 농장 주민은 "잔디심기 운동이 벌어지면 또 많은 뙈기밭(소토지)이 압수당할 것"이라면서 "김정일도 90년대 말에 염소방목지를 만들라고 해서 소토지가 모조리 회수당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또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6일 자유아시아방송에 말했습니다.

이 주민은 현재 북한의 산비탈이나, 경사지는 대부분 개인 소토지인데, 이런 곳에 잔디를 심으면 개인수확량이 크게 줄어들 거라고 우려했습니다.

또 다른 북한주민들도 "잔디는 중학교 학생들을 고생시키는 '대명사'로 불려왔다"면서 "북한에서 잔디심기는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빈번히 실패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먼저 중국에 나온 평양 주민 민모 씨는 "중학생들은 매해 일인당 200그램씩 잔디씨를 학교에 바쳐야 하는데, 그 잔디 씨 계획을 하느라 사적지(김부자 사적물 보관장소)에 나갔다가 단속원들에게 쫓기기도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또, 그는 "잔디씨를 뜯는 과정에도 손가락이 상해 손에 유리가락지를 끼우고 겨우 흟어낸다"면서 "이렇게 잔디씨를 어렵게 얻어 와도 여물지 않아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지난해 건설된 만경대유희장 주변에도 현지지도하는 김정은에게 잘 보이려고 다른 곳에서 급하게 잔디를 떠다 심었는데, 적응하지 못하고 말라 죽기도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미국에 정착한 한 평양출신의 탈북자도 "미국이나 한국 등 발전된 나라들은 잔디를 심을 때 부식토도 깔아주고, 비료도 주고 있는데, 북한에선 비료는 생각지도 못한다"며 "뿌리를 내리기까지 물을 줘야 하는데 이 또한 고생이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북한에선 잔디 규찰대까지 세워놓고 잔디를 밟지 말라고 통제하지만, 사람들이 잔디를 밝는 현상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며 주민들의 의식도 문제로 꼽았습니다.

계속하여 그는 "김정일은 외화벌이를 할 수 있다고 뽕나무를 평양시 도심 가운데 심게 했다가 흐지부지 됐고, 또 분꽃나무도 심으라고 했다가 실패했다"면서 "김정은은 도시미화, 국토환경을 부쩍 강조하고 있는데, 과연 성공할지 의문스럽다"고 난색을 표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