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잔디밭 조성지시에 ‘잔디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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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전국을 푸르게 하라는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지시에 따라 지금 북한에서는 잔디조성사업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데요, 하지만, 지독한 가뭄 때문에 잔디들이 말라 죽자, 잔디 도둑까지 등장했다고 합니다.

정영기자가 보도합니다.

"맨땅이 보이지 않게 잔디를 다 심으라"

유럽식 푸른 녹지를 꿈꾸는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이색적인 지시에 따라 북한주민들이 잔디심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근 연락이 닿은 평양의 한 소식통은 "최악의 가물로 농사가 망했는데, 위에서는 잔디를 심으라고 계속 독촉해 인민들이 고생하고 있다"고 29일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혔습니다.

김정은 제1비서는 지난해 5월 잔디연구소를 시찰하고, "꽃과 지피식물을 심어 빈 땅이나 잡초가 무성한 곳이 하나도 없게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때부터 북한당국은 고속도로에서 보이는 개인 뙈기밭을 몰수하고 그 자리에 잔디를 심었고 수도 곳곳에 잔디밭을 조성했습니다.

그는 "김정은이 다니다가도 맨땅이 드러난 곳을 보면 차를 세우고 간부들을 호되게 질책하고 있다"면서 "이로 인해 고속도로와 일선도로 주변 인민들이 막대한 고생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각종 현지 시찰 때 행사노정으로 다니지 않는 김정은 제1비서의 자유분방한 행동도 주민들을 고생시키는 원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김 제1비서가 예고도 없이 불쑥 나타나 녹지조성이 잘 되지 않은 지방의 간부들을 호되게 질타하면 다음날에는 녹지조성 책임을 지고 간부들이 수시로 바뀐다는 겁니다.

평양-희천 고속도로, 평양-원산, 평양 개성 고속도로 주변에는 잔디밭과 녹지가 들어서고 있는데, 올해 닥친 왕가뭄으로 잔디가 죽고, 잔디가 부족해 여전히 맨땅이 많이 보인다는 게 소식통의 설명입니다.

잔디 연구소에서 내려 보낸 잔디 씨가 가뭄 때문에 나오지 않게 되자, 일부 주민들은 야밤을 이용해 남의 구간의 잔디를 훔쳐다 입히는 일명 '잔디도둑'까지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지독한 가뭄 때문에 잔디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자, 주민들이 양동이로 물을 길어다 뿌리는데, 고속도로 주변 사람들은 "일 년 내내 농사도 짓지 못하고 잔디밭만 가꾸다 말았다"고 불만을 터놓고 있습니다.

특히 김 제1비서의 잔디 조성 지시가 내려가자, 오히려 전국의 강변이나 공원에서 자라던 잔디밭이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10년에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수도에 장미꽃을 화려하게 피우라고 지시해 평양시민들은 장미 심기 운동을 벌인바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도 진짜 장미꽃이 없어 가짜 장미를 심자, 장미를 훔쳐가는 사람들이 많아 아파트 화단에 경비원까지 세워두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