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방북을 계기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비핵화에 대한 사실상의 거부 의사와 더불어 온전하지 않은 건강 상태도 일부 불가피하게 드러냈습니다. 지난 4일 평양의 순안공항에서 중국 언론을 비롯한 외국 언론에 잡힌 김 위원장은 겉으론 건강하게 보였지만 두 손가락이 꼬부라져 있어 뇌졸중의 후유증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었습니다. 김 위원장의 건강에 관해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봅니다.
앵커:
김정일 위원장은 현지 지도와 관영 언론 외에는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아 일반인이 그의 건강 상태를 잘 알 수가 없는데 이것이 어떻게 일부나마 알려지게 됐습니까?
허형석:
김 위원장이 원자바오 중국 총리를 영접하려고 평양 순안공항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중국 총리를 수행한 중국 언론을 비롯해 북한 언론과 다른 언론의 기자가 있었습니다. 김 위원장은 붉은 카펫 위를 걸어가 비행기에서 내리는 원 총리를 맞았습니다. 취재단은 자연히 김 위원장과 가까운 거리에 있어 육안으로 그의 보행과 함께 건강 상태를 비교적 소상히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공항 환영식장에서는 근접한 사진 촬영이 가능해 여기에서 찍힌 사진들을 통해 김 위원장의 신체 부위 가운데에서도 특히 붓고 구부러진 손가락이 잘 드러났습니다.
앵커:
그렇다면 김 위원장이 아직 뇌졸중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었다는 말은 이런 사진에서 나타난 손가락 모양을 보고 하는 이야기입니까?
허형석:
4일 순안공항에서 김 위원장이 원 총리와 악수할 때 찍힌 사진을 보면 그렇다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당시 그의 왼손 검지가 확연히 꼬부라져 있었습니다. 따라서 김 위원장의 현재 건강이 비교적 양호하다는 일부 평가와 달리 김 위원장이 뇌졸중의 후유증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는 이야기에 설득력이 더해지고 있습니다. 이 행사 얼마 전에 공개된 사진에서도 김 위원장은 왼손이 오른손에 비해 눈에 띌 정도로 부어 있을 뿐만 아니라 손가락을 제대로 피지도 못했습니다. 검지가 확연히 꼬부라진 이런 현상은 뇌졸중을 앓는 사람의 일반적인 특징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진은 한국의 여러 언론사를 통해서도 보도됐습니다.
앵커:
그렇다고 해도 김 위원장이 현지 지도를 자주 다니고 공식 석상에도 종종 등장하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그의 건강이 회복 국면에 들어섰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지 않습니까?
허형석:
김 위원장은 뇌졸중으로 고생한다는 이야기가 나도는 가운데 올해 8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맞아 무려 3시간 여를 환담하고 접대하면서 건강 문제에 관한 좋지 않은 풍문을 일단 잠재웠습니다. 김 위원장은 그 이후로도 현정은 한국 현대그룹 회장과 장시간 만났습니다. 그런가하면 김 위원장은 올해 상반기부터 최근까지도 현지 지도를 비롯해 공식 석상에 자주 나타납니다. 이런 상황은 김 위원장이 뇌졸중의 위험한 고비를 일단 넘긴 것으로 해석됩니다. 60대 후반이라는 김 위원장의 나이를 감안할 때 고비를 넘기지 않고서는 이런 공식적인 활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김 위원장은 올해 4월 최고인민회의 12기 1차 회의에서 매우 수척한 모습을 보여 일각에서는 그의 건강이 더 악화했다는 이야기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앵커:
외국 언론은 평양 순안공항에 나타난 김 위원장의 건강을 어떻게 평가했습니까?
허형석:
아무래도 원 총리를 수행했던 중국 기자단의 관찰이 정확하다고 봅니다. 일례를 들면 중국 신문 신민만보(新民晩報)의 인터넷 사이트 <신민망(新民網)>은 “김 위원장이 차에서 내려 원 총리의 비행기가 내린 곳까지 5분 정도 주변의 고위 관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걸었고, 매우 마른 모습이었지만 외부에 알려진 이야기보다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해 보였다”고 전했습니다. 또한 러시아의 일간 신문 코메르산트는 5일 김 위원장이 온 총리를 맞는 모습을 봤을 때 건강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고 보도했습니다. 일본에서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조선신보는 5일 “기운찬 발걸음으로”라는 표현으로 김 위원장의 보행을 미화했습니다.
앵커:
김 위원장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오래 만났다는 사례 외에 그가 비교적 건강하다는 평가를 내리는 외국 언론의 보도를 뒷받침하는 사례가 더 있습니까?
허형석:
세 가지 정도가 더 있습니다. 무엇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이례적 언급을 들 수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CNN 방송의 대담 프로에 나와서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결과에 관한 보고를 토대로 김 위원장이 건강한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이보다 앞서 티머시 키팅 미국 태평양군 사령관은 15일 역시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결과를 토대로 “김 위원장은 곧게 서 있었고, 힘이 있어 보였을 뿐만 아니라 논리적 토론을 할 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이밖에 평양을 방문해 관현악단을 지휘하고 김 위원장과 면담한 러시아 음악가 파벨 오브샨니코프 씨는 15일자 일본 요미우리(讀賣)신문과 회견하고 “김 위원장의 기억과 말투가 확실했다. 양손을 자유로이 움직였고 담배도 피웠다”고 전했습니다.
앵커:
그렇지만 한국에서 나오는, 열린북한방송의 온라인 소식지인 <열린북한통신>은 이와는 아주 다른 이야기를 했다고 하는데 그 내용을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허형석:
열린북한통신은 16일 “김 위원장의 건강이 겉으로는 비교적 회복된 듯이 보이지만 실상은 매우 악화하고 있다”면서 “김 위원장이 최근 방북 인사를 만나고 건강이 좋아진 듯한 모습을 보여준 데 대해서 이는 외부를 향해서 연출한 쇼”라고 말했습니다. 또 열린북한통신은 “7월 이전에는 김 위원장이 부축을 받아야 걸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 주장하고 “그러나 뇌졸중 후유증보다 더 심각한 증상은 5월에 악화한 만성신부전증”이라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김 위원장은 현재 신장 투석을 일주일에 2-3회 받아야 하는 형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밖에 이 통신은 김 위원장이 가벼운 우울증에 걸렸다고 전하며 음주와 흡연을 재개한 이유가 우울증의 결과라고 덧붙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열린북한통신 보도는 최근의 사진에서 드러난 뇌졸중의 후유증보다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만성신부전증이 더 문제라는 내용입니다.
앵커:
현재까지 나타난 김 위원장의 건강 상태가 통치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닌가요?
허형석:
서울에서 나오는 신문 <매일경제>는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이 정도의 후유증이 통치에 어려움을 주지 않는다고 전했습니다. 서울 성모병원의 김영인 신경과 교수는 “언어와 인지를 담당하는 부분은 좌뇌인데 김정일 위원장은 좌뇌에는 이상이 없어 말하거나 통치하는 데 큰 무리가 없다”고 진단했습니다. 한편 북한에 소식통을 갖고 있는 열린북한통신도 “김 위원장의 사고 판단에는 아직 크게 문제가 없다”고 전했습니다.
앵커:
네, 지금까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에 관해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