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창섭 기자가 보도합니다.
6자회담의 미국 측 수석대표로서 지난 3년간 북한과 핵협상을 벌여온 힐 국무부 차관보가 한반도 비핵화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결국 북한 핵 문제에서 손을 떼게 됐습니다. ABC 방송을 비롯한 미국의 주요 언론에 따르면 힐 차관보가 이라크 주재 신임 미국대사로 내정됐습니다.
이처럼 비핵화 2단계 협상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이라크 대사란 새 보직을 맡게 된 힐 차관보에 대한 북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립니다. 우선 힐 차관보가 주어진 여건 속에서 협상을 타결하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힐 차관보는 북한의 핵시설을 폐쇄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지난 2007년 2월 핵 합의를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북한과 모두 4건의 합의를 이끌어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합의를 끌어내는 과정에서 힐 차관보는 북한에 양보를 거듭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의 래리 닉시 박사는 힐 차관보가 특히 핵 협상의 범위를 플루토늄에 국한해 '불필요한 양보'(unneeded concessions)를 해왔다며 그에게 낮은 점수를 주었습니다.
Larry Niksch: Well, I'd say C to C+. You look at what he's taken us to where we're... (굳이 힐 차관보의 점수를 매기자면 C나 C+를 주겠다. 그의 협상 결과 우리가 처한 현실을 보라. 2007년 2월 13일 합의를 보면 북한의 모든 핵이 폐기 대상이지만 힐 차관보는 점점 더 이 합의를 플루토늄과 영변 핵시설로 국한했다.)
닉시 박사는 특히 힐 차관보가 비핵화 2단계의 핵심인 핵검증 문제와 관련해 지난해 10월 평양에서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구두 합의’를 한 점을 큰 실책으로 꼽았습니다. 닉시 박사는 힐 차관보가 김 부상과 협상을 벌이면서 “상당히 친하다고 믿었고, 또 그 때문에 구두 합의를 문서화할 필요를 못 느꼈고, 이게 실수였다”고 지적했습니다.
힐 차관보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특히 북한 인권을 위해 힘써온 사람들이 강합니다. 민간단체인 디펜스 포럼의 수전 숄티 대표입니다.
Susan Scholte: He met with defectors, he spent time talking to them... (힐 차관보는 탈북자들도 만나고 시간도 보냈다. 또 남한의 국군포로들도 만나 얘기도 들었다. 그가 이런 문제에 신경을 쓴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가 핵협상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북한 인권을 뒷전으로 미뤘고, 그게 정말 문제였다.)
반면 힐 차관보의 노력을 평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국무부 정책기획실장을 지낸 미첼 리스 윌리엄 & 매리 법대 교수는 “힐 차관보가 북한 핵협상이라는 몹시 어려운 일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서 “이제 훨씬 더 어려운 이라크 일을 맡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비영리 단체인 ‘북한전국위원회’(NCNK)의 캐린 리 사무총장은 “대북 협상과 관련한 부시 행정부의 정책이 기복이 심해 힐 차관보도 쉽지는 않았을 것”이라면서 “힐 차관보가 강력한 소신에 협상력을 발휘해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힐 차관보가 시리아에 대한 북한의 핵확산 여부를 분명히 밝히지 못한 것은 ‘오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Karin Lee: I think he underestimated the resistance he would find in Washington to accepting the declaration that didn't address Syria. I think he had a lot of support from non-proliferation community... (힐 차관보가 시리아 문제를 다루지 않은 북한의 핵 신고서와 관련해 워싱턴에서 저항에 부닥칠 것이란 점을 과소평가했다고 본다. 그를 지지하던 많은 사람도 시리아건 때문에 상당히 당혹스러워했고, 그도 많은 비판을 받았다.)
한편 힐 차관보는 지난달 20일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하기 전 사표를 냈지만, 후임인 커트 캠블 전 국방부 부차관보가 상원 인준을 받고 부임할 때까지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직을 계속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