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최근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담 요리사였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 씨를 평양에 초청해 환영했습니다.
북한을 탈출한 뒤, 김씨 왕조의 사치스런 생활을 폭로해 수령 우상화에 흠집을 낸 일본인 요리사를 북한 지도부가 다시 초청해 환영하는 의도는 무엇일까요?
정영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7월 21일부터 약 보름 동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개인 요리사였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씨가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를 만나고 돌아왔습니다.
평양에서 열린 환영만찬에서 김 제1비서와 만난 후지모토 씨는 자신의 탈북행위에 대해 반성하고, 자신의 가족과도 만났다고 최근 일본 텔레비전 방송에 밝혔습니다.
23일 일본 TBS방송에 출연한 후지모토 씨는 김정은이 "앞으로 일본과 북한을 왔다 갔다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면서 "내달 다시 방북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한때 김정일 일가의 사치스런 생활을 폭로해 북한의 테러 위협에 시달렸던 후지모토 씨.
그가 다시 평양 땅을 밟게 된데 대해 외부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후지모토 겐지 씨는 1988년부터 2001년까지 13년 동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속 요리사로 일했습니다.
녹취/ 후지모토 겐지: 1982년 10월 원산초대소로 벤츠 3대로 갔는데, 거기서 운동복을 입고 있었던 게 김정일이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앞에서 스시, 즉 일본 초밥을 만들어 대접한 뒤, 개인 요리사로 전격 발탁된 후지모토 씨는 요리사로서 뿐 아니라 어린 김정은과 같이 놀아주는 상대가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00년 8월 일본 정보기관과 전화통화 했다는 사실이 발각되자, 후지모토 씨는 2001년 식자재를 구하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 아내와 딸을 두고 탈출하다 시피 북한을 떠났습니다.
그 후 후지모토 씨는 세권의 책을 써서 김 씨 왕조의 사치스런 생활을 외부에 공개했습니다.
그가 쓴 '김정일의 요리사'라는 책을 통해 김정일이 세계 최고의 식도락가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1990년대 중반 수백만 명의 주민들이 굶어죽는 와중에도 김씨 일가의 음식재료를 구하러 유럽과 일본 등지로 다녔다는 사실도 공개했습니다.
후지모토 씨는 도서 '김정일 사생활', '핵과 여자를 사랑하는 장군'을 통해 김정일에게 기쁨조가 있다는 사실, 북한 최고 간부들이 밤마다 은밀한 곳에서 고급 파티를 즐긴다는 사실도 폭로했습니다.
녹취/ 후지모토 겐지: 김정일이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성혜림의 영화 속 모습에 반해버린 것입니다. 성혜림에게는 남편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권력으로 억지로 데려왔던 것입니다.
후지모토 씨는 개혁개방을 하고 "정치범 수용소를 해체하라"고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에게 충고할 만큼 북한에서 환영받지 못할 인물로 알려졌습니다.
녹취/ 후지모토 겐지: 우선 김정은 대장이 해야 할 일은 개혁과 개방입니다. 계속 펼쳐온 쇄국정책으로는 북한의 성장을 결코 바랄 수 없습니다.
이렇게 김씨 일가를 욕되게 한 후지모토를 북한 김정은 제1비서가 평양으로 불러 주는데 대해 북한 문제 전문가들은 여러 가지 노림수가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그레그 스칼라티우 사무총장의 말입니다.
그레그 스칼라티우: 후지모토 겐지 씨가 2003년에 책을 쓰고 김씨 일가에 대해 많은 것을 폭로했습니다. 그런 일본인 출신 '배신자'가 용서를 받는다, 그런 과정은 김정은의 우상숭배를 조성하는데 상당히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후지모토씨가 비록 김씨 왕조를 폭로한 외국인일지라도 김 제1비서가 너그럽게 용서할 만큼 도량이 넓다는 것을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것이란 지적입니다.
김 제1비서는 최근 미국의 대표 문화상품인 '미키마우스' 등을 공개하는 등 외부에 개방된 지도자라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의 말입니다.
안드레이 란코프: 그들은 무조건 개혁과 개방을 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외부세계에, 특히 미국과 일본에 보여주려고 합니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북한이 일본 요리사를 초청한 것은 아주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봅니다.
북한은 김정은 위상 띄우기를 통해 최근 내부에서 시도 중인 신경제개선 조치가 개혁개방과 연관이 있음을 외부에 선전하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고 란코프 교수는 지적합니다.
한편, 북한이 후지모토 겐지 씨를 일본과의 교섭을 위한 메신저, 연락책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미국 워싱턴 D.C.의 한 대북 전문가는 "북일 관계가 냉각된 상황에서 후지모토를 통해 일본국민의 반북 정서를 완화시키기 위한 노림수일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일본은 2002년 고이즈미 수상의 평양 방문 때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가 불거지자, 북일 관계 개선의 전제 조건으로 납치문제 해결을 제시했습니다.
결과 '만경봉'호 입항이 거부되고, 최근에는 조총련 건물이 일본법원에 의해 압류되는 등 일본 내 총련의 입지도 상당히 위축된 상황입니다.
북한 지도부로선 이런 악화된 북일 관계를 풀고 현재 북한이 가장 목말라 하는 외화문제도 풀 수 있는 대안이 필요했다는 분석입니다.
이 대북 전문가는 "1990년 초 북일 교섭을 위해 김일성 주석이 일본의 유명 정치인 가네마루 싱을 북한에 초청했다"면서 "당시 라진선봉 개발을 준비하던 북한 지도부로선 일제의 식민지 배상금 100억 달러에 거는 기대가 컸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나선지구 특구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선 북한이 일본과의 관계를 풀고 종자돈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을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이번에 후지모토 씨를 환영하는 만찬에는 김정은 제1비서와 부인 리설주, 여동생 김여정, 고모부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 리수용 전 스위스 대사 등 외자유치에 주력하고 있는 북한 핵심실세들이 대거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하지만, 그레그 사무총장은 후지모토 겐지씨를 통한 북한의 접근법이 성공할 가능성을 낮게 평가합니다.
그레그 스칼라티우: 공식적인 채널이 아닌 후지모토 겐지라는 인물을 통해 일본과의 관계를 맺으려고 하면 북한이 그 만큼 고립된 국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북한이 민간인을 통한 접근보다는 개혁개방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주변 국가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