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3만 시대 기획-1] 취업난에도 꿋꿋한 탈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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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 11일을 기준으로 남한 입국 탈북자가 3만명을 돌파했습니다. '미리 온 통일'이라고 일컬어지는 탈북자들이 남한에 정착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그 의미가 큰데요. 이에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탈북자 '3만 시대'를 조명하는 세 차례의 기획 보도를 내보냅니다.

오늘은 그 첫번째 순서로, 낯선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정착하고 있는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서울에서 목용재 기자가 보도합니다.

(손님 응대, 돈 새는 소리, 도장 찍는 소리, ‘딩동’ 소리)

“10번 손님 3번 창구로 오세요. 안녕하세요. 어떤 업무 도와드릴까요.”

“통장 주시고요. 50만원 현금으로 드릴까요? 잠시만요. 비밀번호 네 자리 눌러주세요. 잔돈 7천원 드릴게요. 안녕히가세요.”

지난 2월부터 KEB하나은행에 입사해 고려대학교 지점으로 출근하고 있는 강원철 씨. 그는 은행 창구에 찾아온 고객을 응대하며 분주하게 업무를 처리하고 있습니다.

강 씨는 2001년 입국한 탈북자입니다. 그는 올해 초 KEB하나은행의 탈북자 지원사업을 통해 ‘선망의 직장’으로 꼽히면서도 업무강도가 높은 것으로 유명한 은행에 취직했습니다.

강 씨의 출근시간은 오전 7시에서 7시 30분 사이. 오후 9시를 넘기고 퇴근하는 날이 많습니다. 그만큼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신입행원 시절에는 고객의 이름을 관련 서류에 잘못 기입해 항의를 받는 등 실수가 잦았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보이스피싱 (전화사기)를 당할뻔한 대학생을 발빠르게 도와 사기 피해를 막는 등 활약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600만원(5300달러)가량을 사기범 계좌에 입금한 학생의 다급한 도움 요청을 받고 신속하게 지급정지 처리를 한 겁니다. 강 씨가 입사 이후 처음으로 뿌듯했던 순간이었습니다.

강 씨는 “당시 저도 당황했지만 빠르게 움직여 문제를 해결했던 기억이 난다”면서 “상황이 끝난 이후 그 학생으로부터 감사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여러차례 시행착오를 겪은 강 씨지만 지금은 ‘어엿한 은행원’으로 고객들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강원철 씨: 제 앞에 앉은 손님이 원하는 모든 금융관련 업무들을 제가 처리할 수 있어야 하니까 그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지금은) 제가 모를 때 어디가서 물어보고 이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으니까 시간은 좀 느리지만 해결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강 씨는 업무강도가 높은 은행에서 잘 적응하고 있는 이유를 자신에 대한 평가가 탈북자 전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라고 합니다. 일종의 사명감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강 씨는 “대한민국 대기업에서 탈북자를 채용한 것은 보통일이 아닌데 제가 잘못하면 ‘탈북자들은 저래서 안 된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면서 “우리는 백지나 다름 없어서 남한 사람들보다 느리고 또 못하지만 극복만 잘 해낸다면 다른 후배들에게 은행 같은 대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 있다”고 후배 탈북자들에게 조언을 건냈습니다.

이렇게 남한 사회에서 잘 정착해 살아가는 이들이 있지만 탈북자들이 남한 사람들과 경쟁해 좋은 직장으로 들어가기란 쉽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남북 구직자 간 학력과 연령대 그리고 취업할 때까지 사용하는 비용 등만 단순 비교해봐도 탈북자들의 취업 경쟁력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학력부터 남북 구직자 간 차이는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남측 통계청이 2010년 기준으로 발표한 ‘성별, 교육정도와 봉사상 지위별 취업인구(15세 이상)’ 통계에 따르면 남한의 15세 이상 취업인구 가운데 2명중 1명의 학력이 전문대 이상입니다.

반면 탈북자 대다수는 상대적으로 ‘저학력자’ 입니다. 탈북자 정착지원 기관인 남북하나재단이 지난해 발표한 ‘2015 북한이탈주민 경제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탈북자들은 10명 중 1명꼴로 전문대 이상의 학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취업에 소요되는 비용과 구직 연령대를 비교해도 탈북자들이 남한의 청년 구직자들과 경쟁하기란 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지난 2013년 남측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내놓은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남한의 한 가정이 자녀 출생부터 대학 졸업까지 사용하는 비용은 3억 896만원(27만 2000달러)가량 입니다. 남한 사람들은 취직할 때까지 다양한 공부를 하고 경험도 쌓으며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고 있는 겁니다.

반면 탈북자들은 생계를 책임질 나이에 남한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취업에만 신경 쓸 수 없다고 하소연합니다. 통일부에 따르면 올해 8월말 기준으로 입국한 총 탈북자 가운데 30대 이상은 10명 중 6명꼴입니다. 취업준비와 함께 생계를 꾸려야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셈입니다.

탈북자들이 북한에 있었을 당시 직업도 ‘단순직’이거나 ‘무직’이었던 경우가 상당수 입니다. 통일부의 ‘탈북자 재북 직업별 현황’에 따르면 무직이거나 부양을 받았던 비율은 절반가량, 노동자 같은 단순 직무 종사자는 네명 중 한명 꼴이었습니다. 구직활동을 하는 탈북자들이 내세울 만한 ‘경력’도 마땅치 않은 겁니다.

탈북자들은 생계를 이으며 구직활동을 하는 등 어려운 정착 과정을 겪지만 강원철 씨처럼 이른바 ‘선망의 직장’에 취업하고 있는 탈북자들이 하나둘 늘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탈북자와 관련한 경제 지표도 해마다 개선되는 추세입니다.

남북하나재단의 ‘2015 북한이탈주민 경제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탈북자들의 고용률은 상승하고 있고 실업률은 낮아지고 있습니다.

지난 2011년 49%였던 탈북자 고용률은 지난해 54%까지 높아졌고 지난 2011년 12%였던 탈북자 실업률은 4.8%까지 개선됐습니다. 2011년 46.7%였던 탈북자들의 기초생계수급률도 지난해 25.3%까지 낮아졌습니다. 기초생계지원은 소득이 적은 남측 취약계층의 기본적인 생활을 위해 남한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복지정책입니다. 탈북자들의 월평균 소득도 조금씩이지만 상승 추세입니다.

전문가들은 탈북자 관련 경제지표가 개선되고 있는 원인을 탈북자들의 강한 자립・자활의지로 보고 있습니다. 여기에 정부의 지원 정책까지 더해지면서 탈북자들의 안정적인 정착 사례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효숙 남북하나재단 기획연구부 팀장: (탈북자들의) 경제・생활 지표가 일반국민에 비해 낮기는 하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것은 탈북민 본인의 자립・자활 의지가 강하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탈북자들의) 상용직 비율이 증가하고 일용직 비율이 낮아지는 것은 정부 정책들이 어느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신 팀장은 “남한에 정착한지 3년에서 5년 된 탈북자들의 경우 ‘하루벌이’ 즉 일용직의 감소와 상근직 상승 추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면서 “경제지표가 개선되고 있는 것은 심층적인 분석이 필요하지만 탈북자들이 남한 사회에 어느정도 적응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신 팀장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노동 시장에 노동 공급보다 노동 수요가 늘어나는 현상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도 분석했습니다.

탈북자들의 정착을 위해 시민사회와 민간기업들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정부의 지원이 미치지 않는 영역에서 탈북자들을 돕고 있다는 겁니다.

손광주 남북하나재단 이사장은 “탈북자들을 지원하는 봉사단체와 시민단체들이 많다”면서 “탈북민을 잘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민간영역이 기여하는 부분은 상당히 크다” 고 평가했습니다.

손 이사장은 “특히 탈북자들에 관심을 갖는 민간기업이 늘어날수록 그들의 정착은 한결 수월해 질 것”이라며 “탈북자들에 대한 교육과 관심을 갖는 기업들도 조금씩이지만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