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지난 11일을 기준으로 남한 입국 탈북자가 3만명을 돌파했습니다. '미리 온 통일'이라고 일컬어지는 탈북자들이 남한에 정착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그 의미가 큰데요. 이에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탈북자 '3만 시대'를 조명하는 세 차례의 기획 보도를 내보냅니다.
오늘은 그 두번째 순서로, 탈북자들의 안정적인 남한정착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민간기업을 소개해 드립니다.
서울에서 목용재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서울 광화문에서 승용차로 두시간 거리에 위치한 평택. 이곳에는 기계와 화학, 금속, 식품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공단이 조성돼 있습니다. 제조업체들이 모여있는 지역답게 각종 화물차와 중장비 차량들이 오가느라 분주합니다.
조금 더 공단 깊숙이 들어가면 '바오스'라는 이름의 중견 제조업체가 보입니다. 텔레비전의 핵심부품인 분광판과 확산판 등을 생산하는 이 업체는 탈북자 정규 채용 사업을 진행하는 다소 '특이한' 민간기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탈북자를 채용하고 있는 기업은 있지만 '바오스'처럼 '북한이탈주민 근로자를 위한 바오스 연수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정기 채용 사업을 진행하는 업체는 드뭅니다.
'바오스'가 탈북자 채용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단순합니다. 이동왕 바오스 대표가 우연히 고용한 탈북 근로자에게 좋은 인상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 대표의 "'기업가'로서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도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이동왕 바오스 대표: 처음에 (탈북자인지) 잘 모르고 몇분을 고용했습니다. 그 중 부부가 저희 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굉장히 일을 잘 해서 인사팀에서 좋게 평가했습니다. (탈북자에 대한) 첫 느낌이 좋았습니다.
"탈북자 채용 사업을 진행하라"는 이 대표의 지시에 홍경호 바오스 인사팀 차장은 통일부와 남북하나재단, 하나원 등을 직접 찾아 다녔습니다. 탈북자들과 관련 있는 정부기관들을 찾아가 바오스의 탈북자 채용 사업을 소개하고 탈북자 모집을 위한 도움을 요청한 겁니다.
탈북자들을 만날 때마다 '바오스'의 인력으로 채용할 만한 인재인지를 가려내기 위해 장시간 동안 심층 면접도 진행했습니다. 면접은 이른바 '스펙'이라고 불리는 '학력'이나 '경력' 등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탈북자들의 일을 하고자 하는 '의지'를 확인하는 게 목적이었다"고 '바오스' 측은 설명했습니다.
홍경호 바오스 차장: 매년 정례화 한 (탈북자) 채용 제도를 정착시키려고 처음에는 하나원을 찾았습니다. 저는 밤을 새서 (탈북자 채용사업안을) 만들고 하나원에 제안도 했습니다. 안성의 하나원에 가서 기업 홍보도 했고 그 많은 인력들을 네 시간, 다섯 시간씩 면접을 봤습니다.
홍 차장에 따르면 면접에 통과한 연수생들은 회사의 제조공장을 탐방하고 '바오스' 직원으로서의 업무를 교육 받습니다. 이와함께 사칙, 사내 예절, 보건과 안전 등 기본 소양 이론 교육을 2주간 받습니다. 이론 교육이 끝난 후 평가에 합격한 연수생들은 45일여의 견습기간 동안 현장에 배치됐다가 바로 정규직으로 채용됩니다.
'바오스'가 탈북자 채용사업을 진행한 것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초까지 총 네차례. 이 기간동안 32명의 탈북 연수생이 들어왔고 이 가운데 총 25명이 '바오스'의 정규 신입사원으로 채용됐습니다.
이렇게 정규직으로 채용된 입사 1~2년차 탈북자들은 한달에 최고 300만 원(2550 달러) 정도의 월급을 받습니다. 회사의 월급 규정에 따라 정기적으로 월급 인상이 이뤄지는 등 대우도 남한 직원들과 동일합니다.
정규직 25명의 탈북 근로자 가운데 17명이 이직과 이사 등의 이유로 퇴사했지만 이 대표는 "잘 됐다"면서 미소를 지었습니다. "더 이상 걱정할 필요 없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이동왕 바오스 대표: 우리 공장에서 일했으면 어디가서도 일 할 수 있습니다. 유사 업종으로 갈 수 있고 어디든 (관련 업계에) 가서 바오스에서 일했다고 하면 인정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나간다고 하면 '잘 됐다'고 축하해줍니다.
이 대표는 탈북자 채용 사업을 통해 탈북 근로자들에게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합니다. "탈북자들의 안정적인 정착 방안은 일자리 제공보다 기술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겁니다.

정규직으로 ‘바오스’에 취직한 탈북자 김성훈(가명, 2013년 입국) 씨와 최지원(가명, 2014년 입국) 씨는 “남한 사람도 취직하기 어려운 요즘 정규직으로 취직해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 좋다”면서 회사생활에 만족감을 드러냈습니다.
김 씨는 "20대의 나이로 북에서는 꿈도 못꾸는 승용차도 구입했다"고 뿌듯해합니다. 삶이 안정돼 연애도 시작했다고 덧붙입니다.
김성훈 씨: 대학에 진학해봤자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허망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경력을 쌓고 기술을 배우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대학 다니는 사람들보다 제가 선배가 됩니다. 이 회사 온지 1년 됐는데, 덕분에 차도 샀습니다. 한국에 오니까 힘들긴 하지만 제가 벌어서 제 차도 사고, 제 집도 사고,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으니까 그게 좋은것 같습니다.
김 씨와 최 씨는 입사 1년여 만에 '오퍼레이터'라고 불리는 '주작업자'가 됐습니다. 김 씨는 제품 가공장에서, 최 씨는 제품 검사장에서 보조 업무가 아닌 공정의 핵심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작업장의 시끄러운 소음과 퀴퀴한 냄새에 아랑곳하지 않고 김 씨는 텔레비전의 핵심 자제인 분광판 원자재를 능숙하게 재단하고 있습니다. 현장을 지켜 본 바오스 인사담당자는 "김 씨는 두 가지 작업을 함께 하는 능숙한 직원"이라고 칭찬했습니다.
'바오스'는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노력하는 '성실한' 탈북자들에게 기회를 마련해주고자 앞으로도 꾸준히 탈북자 채용 사업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2017년 진행할 예정인 제5차 탈북자 연수 사업도 준비 중입니다. 홍경호 인사팀 차장에 따르면 '바오스'는 회사 전체직원 232명 가운데 탈북 근로자의 비율을 일정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현재 탈북자와 관련한 경제지표는 꾸준히 개선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정부에서는 이 같은 원인을 "탈북자들의 강한 자립∙자활의지와 정부의 정착지원 정책이 맞물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여기에 '바오스'와 같이 탈북자들의 정착에 힘을 보태는 민간기업이 늘어날수록 남한에서 탈북자들의 '연착륙'도 수월해 질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