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남한에서 탈북자 신원 조사 등의 업무를 담당했던 국가정보원 간부가 이제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탈북자 정착지원 정책과 관련해 다음주 박사 학위를 받는 나원호 씨가 그 주인공인데요. 나 박사는 "앞으로 노년층 탈북자의 복지 향상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합니다.
서울에서 박성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탈북자가 한국에 입국하면 국가정보원 주관으로 진행하는 합동조사를 받아야 합니다. 정확한 신원과 탈북 경위 등을 파악하기 위한 절차입니다.
이 일을 지난 1987년부터 무려 30년 동안 하다가 지난해 퇴직한 인물이 있습니다. 오는 14일 서울에 있는 명지대학교에서 탈북자 정착지원 정책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는 나원호 씨가 그 주인공입니다.
나 씨가 처음 인연을 맺은 탈북자는 김만철 씨입니다. 국정원 근무 2년차이던 나 씨는 1987년 가족을 데리고 남한에 온 김 씨를 ‘관리’하는 일을 했습니다.
“김만철 씨 일가의 사회적응 교육을 도왔는데, 무척 보람 있고 재미났다”고 나 씨는 말합니다. “특히 김 씨의 아들과 친하게 지냈다”며 “아마 당시 경험이 탈북자 관련 업무를 30년이나 지속하게 했던 힘이 아니었겠느냐”고 말합니다.
나원호 박사: 지금도 탈북민들과 '형님' '아우' 하면서 지내는데요. 워낙 제가 탈북민을 좋아했고, 대화도 잘 통했고, 그렇다 보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했어요.
나 씨가 탈북자 ‘조사’ 업무를 시작한 건 1988년 3월 김창화, 어성일 씨가 남한에 입국했을 때부터입니다. 이들은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출했다가 필리핀을 거쳐 남한에 입국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탈북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조사관들이 그땐 북한 사정에 대해 참 무지했고 그래서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나 씨는 말합니다.
나원호 박사: 그때 무슨 일이 있었냐면, 얘네들이 '두만강을 그냥 쉽게 건넜다'는 거예요. 그 당시 합동조사니까 기무사 쪽에서 나왔던 나이 많은 분이 그러시는 거죠.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강을 쉽게 건넜다는 게 말이 되느냐! 그러면서 이틀인가 말싸움을 했던 기억이 나요. 옛날엔 그랬다고. (웃음)
이후 나 씨는 이른바 “VIP급 탈북자”, 그러니까 고위급 탈북자를 조사하는 업무를 주로 맡았다고 말합니다.
1989년 2월 체코 프라하 칼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다 망명한 조승군, 김은철 씨. 1991년 콩고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하다 망명한 고영환 씨. 1994년 망명한 김일성대 교수 출신 조명철 씨. 이들은 나원호 씨가 직접 조사했고 “지금도 연락하며 지내는” 고위급 탈북자들 중 일부입니다.
현재 김은철 씨는 경희대 치대를 졸업한 후 서울 성애병원에서 근무하고 있고, 고영환 씨는 국책연구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부원장으로 재직 중이며, 조명철 씨는 19대 국회에서 비례대표 의원을 지냈습니다.
나원호 씨는 “이들이 한국에 와서 사실상 처음 대면했던 사람이 바로 나였다는 점에서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강조합니다. “성공적으로 정착해 훌륭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다”고도 말합니다.
나원호 박사: 어떻게 보면 신분이 좀 역전됐다고 할까요. 특히 조명철 교수 같은 경우는 국회의원까지 했으니까요. 한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합니다. (웃음)
이제 나 씨는 제2의 인생을 준비 중입니다. 노년층 탈북자의 복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겁니다.
나 씨는 “파주에서 29인실 규모의 요양원을 운영할 예정인데 당국의 허가가 2월 10일 이전에는 나올 것 같다”면서 “노년층 탈북자 문제는 정부가 정책적 차원에서 다뤄야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겠다”고 말합니다.
나원호 박사: 제가 북한에 대해서 잘 아니까 대화도 잘 될 것이고, 인지치료 등의 측면에서 이분들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탈북민 노년층에서 대상자가 계신다면 저희 요양원에 적극 유치하고 싶습니다.
나원호 씨는 현재 ‘안보통일연구회’ 수석연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나 씨가 작성한 박사학위 논문은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 정책이 사회적응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입니다. ‘사회적 관계망의 효과분석’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종교단체나 친목모임, 자원봉사 단체나 시민단체 모임 등에 탈북자들이 많이 참여할수록 사회적응에 도움이 되니 사회적 관계망 구축과 함께 활용 방안을 마련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