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시 잃은 딸 찾는 게 유일한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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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 미국 서부 로스앤젤레스에서 가정을 꾸린 탈북 가정들을 차례로 만나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중국으로 탈북 후 두 번의 북송 끝에 다시 자유를 찾아 탈북해 미국에 정착한 김홍철씨를 유지승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1998년 중국으로 탈북해 자유를 만끽하기도 전에 중국 경찰에 체포돼 북송 된 김홍철씨는 북한 수용소에서 지옥 같은 6개월을 보낸 후 다시 탈북을 시도했고, 2003년 다시 중국 경찰에 붙잡혀 북송 됐습니다.

당시 김홍철씨는 원성 수용소에서 청진 수용소로 이동하던 중 수송차량이 고장 난 틈을 타 기적같이 세 번째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김홍철 탈북자: 2003년도에 또다시 잡혀 북한에 나갔다가 감옥에서 원성 집결소에서 청진 도당 감옥으로 수송하는 과정에서 트럭이 고장 났습니다. 그 차 없었으면 살 수도 없었겠지요.

김홍철씨는 북한 수용소에서의 생활 중 굶주림이 가장 힘든 부분이었다고 지난주 RFA 자유아시아방송에 말했습니다.

김홍철: 인간으로서 제일 힘든 고생이 배고픈 고생입니다. 하루에 한 끼 식량은 옥수수 알을 소금물에 삶은 것 40알을 줍니다. 나라에 먹을게 없는데 감옥의 죄인들을 사람 취급 하겠습니까?

그나마도 수용소 내 힘있는 사람들이 빼앗아 먹고, 힘없는 사람들은 굶어 죽기가 다반사라며 처참한 북한 수용소 생활을 증언했습니다.

그렇게 세 번의 탈북 과정을 거쳐 김홍철씨는 2008년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했습니다.

처음 미국에 도착해 아찔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미국에 와서 처음 접한 영어.

한 마디도 하지 못해 주머니에 집 주소만 적어서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가 길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미국 경찰을 만나 ‘노스 코리아’ 북한 이라는 단어만 이야기 한 후 주머니에서 주소를 적은 쪽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경찰은 차에 타라고 해서, 순간 김홍철씨는 중국에서 북한으로 북송 됐던 기억이 나 아찔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상황은 정 반대였습니다.

김홍철: 혼자 있다가 갑갑해 나왔다가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담도 크게 지나가는 경찰을 불렀어요. 경찰에게 '노스 코리아(North Korea, 북한), 북에서 왔다' 라고 하고 주소를 줬더니 경찰들이 집까지 와서 문 열어주고 앉아 있는 것 보고 갔습니다. 북한에서 미국이 양키 놈 이라고 욕했는데 여기(미국) 와서 할아버지 대접받는 것을 보면 미국이 참 좋은 나라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저런 우여곡절 끝에 직업도 구했습니다. 김홍철씨는 열심히 일해야 하지만 북한에서 일하던 버릇이 남아있어, 열심히 일하지 않는 모습을 스스로 반성하게 된 사연도 공개했습니다. 북한에서는 열심히 일해도, 열심히 하지 않아도 똑 같은 대우를 받았기 때문에 대충하는 버릇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제는 대충하는 일이 없다고 합니다.

김홍철: (북한에서는) 많이 일해도 돈이라는 것이 없으니까 (일 열심히 안 합니다). 북한의 습관을 여기서 많이 고쳤습니다. 나가서 건축일 하는 데 북한식대로 대충대충 하는데 일하는 거 맘에 안 들 텐데 그래도 많이 (사장님이) 많이 봐줍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금방 잘랐을 겁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부자라고 자부합니다.

김홍철: 난 부자입니다. 아파트에서 살지, 차한대 있지, 생활하지, 하루에 20달러씩만 쓰면 세계 인구 20억 순위 안의 부자입니다.

김홍철씨는 이제 직업도 있고, 햄버거가 가장 맛있다며 완벽히 미국 자유세계에 적응된 부자라고 말합니다. 그러고 나니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생겼습니다.

김홍철: 중국으로 탈출하는 과정에서 딸을 잃어버리고 아직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소망이라는 것은 한가집니다. 내 딸을 찾으면 그것이면 됩니다.

모든 탈북자들은 인터뷰를 하면서 가족 이야기를 할 때마다 눈물을 억누르지 못했습니다. 때로는 그리움에 때로는 미안함에 주체할 수 없는 눈물만 흘러 오랜 시간 아무 말 없이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한참 동안 먼 곳을 응시하던 김홍철씨는 모든 탈북자들에게 힘내서 잘살자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서로 상처주지 말고, 그리고 스스로 부자가 된 만큼 힘든 한국의 어린이들도 돕고 싶다는 새로운 소망도 말했습니다.

김홍철: 탈북자 모든 분들께 2015년에는 힘내서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나중에 되기만 하면 한국의 힘든 어린아이들도 돕고 싶습니다.

스스로 이제는 60이 다된 노인이라고 말하는 김홍철씨는 탈북자 사회에서도 어른, 원로가 된 만큼 많은 탈북자 가정들에게 힘이 되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탈북자 가정들이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다 행복하기를 기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