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 한국 국회에서는 북한인권법 제정 문제가 지난 10년째 제자리걸음입니다. 과연 국회의원들이 법안 통과 의지를 갖고 있는지를 의문시하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지방 의회가 북한인권법안 통과를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경주에서 박성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에서 북한인권법안이 처음 발의된 건 지난 2005년 6월입니다. 이후 북한 인권과 관련해 여당과 야당이 국회에 제출한 법안만 20건이 넘습니다. 하지만 통과된 건 하나도 없습니다. 국회의원들이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의지가 있는지를 의문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지방의회가 나섰습니다. 가장 최근 사례는 경상북도의회입니다. 지난 3월 26일 '북한인권법 제정 촉구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된 겁니다.
결의안을 대표 발의한 배진석 의원. 경주에 지역구가 있는 배 의원은 북한인권법 제정을 위한 여론 형성에 기여한다는 마음으로 결의안을 내게 됐다고 말합니다.
배진석 경상북도의원: 이제는 지방 정부도 중앙 정부에, 지방 의회도 국회에, 이에 대한 (북한인권법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단순히 정치적인 논리로 이걸 통과시키자, 통과시키지 말자가 아니고, 이건 국민 여론이 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렇게 되려면 밑에서도 우리 경북에서도 이런 여론이 같이 움직여야 하고, 같이 이야기될 때 북한인권법이 하루라도 빨리 통과되지 않겠느냐, 이런 취지에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배 의원도 "사실은 북한 인권이 지역 현안은 아니다"라고 인정합니다. "도 의회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복지, 문화, 경제 현안이 수없이 많다"는 겁니다. 하지만 북한 인권 문제는 "경상북도에서 이득이 되느냐 아니냐를 따지는 차원에서 접근해선 안 될 문제라고 생각했다"고 말합니다.
"인권 문제는 모두가 함께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당위적인 사안"이라는 겁니다.
배진석 경상북도의원: 어찌보면 지금 개입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 중요한 문제에 있어서 소외되는 거죠. 통일이나 북한 인권에 대해 경북 도민으로서 당연히 소외되지 않고 가까지 가 있어야 하고, 접근해야 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고, 이게 맞는 겁니다.
배 의원은 결의안이 "아무런 이견없이" 도의회 본회의를 통과했다고 말합니다. 총 60명 도의원 중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의원이 5명이지만, 이들도 반대 의견은 내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유는 간단하다"고 배진석 의원은 설명합니다. "야당도 북한인권법 제정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며, 이번에 도의회가 통과시킨 결의안은 북한인권법의 제정을 촉구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도의회 차원에서도 야당이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는 겁니다.
또한 배 의원은 국회 차원에서 여당과 야당의 견해차로 인해 북한인권법이 10년째 표류하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해서도 "차라리 남의 나라 일이었으면 이렇게까지 질질 끌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아프리카 어느 못 사는 나라의 인권 문제였다면 국회의원으로서 국제적 사안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걸 대외적으로 보여주는 기회로 활용한다는 차원에서라도 당장 처리했을 것"이라고 배 의원은 말합니다.
하지만 북한 인권 문제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지적합니다.
배진석 경상북도의원: 오히려 다른 나라이기 때문에, 미국이니까, 일본이니까, 호주니까 쉽게 통과될 수 있는 겁니다. 왜? 어찌 보면 자기들의 문제는 아닌 거죠. 인류 보편적인 문제이지만, 직접적으로 자기 피부에 박혀 있는 가시는 아닌 거죠. 그런데 우리는 우리 피부에, 우리 손톱 밑에 들어와 있는 가시고 우리 문제가 되다 보니까, 이걸 어떻게 지원하고 어떻게 관리하는 것이 더 좋은가에 대한 여러가지 이견이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배 의원은 "국회의원들의 통일을 바라보는 시각,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이 획일적일 수는 없다"면서 "이들이 북한 인권문제에 관심이 없어서, 또는 고의적으로 밀고 당기고 하고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배 의원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최초로 법안이 발의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쯤은 어떤 방향으로든 결론이 내려졌어야 하는 시점"이라면서 "문제를 이렇게 질질 끌면 모두가 지치게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인권법안 처리를 놓고 여당과 야당을 대치하게 하는 가장 대표적인 원인은 시민단체 재정 지원 조항입니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북한인권재단을 만들어 북한 인권 관련 시민단체를 지원하는 조항을 법안에 넣고자 하지만, 야당은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단체까지 예산을 지원하게 될 수 있다며 이 조항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0년간 북한인권법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지만, 배진석 의원은 한 가지 분명히 할 점이 있다고 말합니다. "북한에서 멀리 떨어진 경주에서도 북한 주민의 열악한 인권 상황을 걱정하는 사람이 있으며, 그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하는 사람이 있다는 점을 북한 주민들이 알아줬으면 한다"는 겁니다.
배진석 경상북도의원: 경상북도 경주가 북한 두만강 끝에서 700-800km 정도 거리가 될텐데, 여기서도 그쪽을 향해서 큰 소리로 '우리 곧 만납시다'라고 이야기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희망을 잃지 마세요. 끊임없이 북한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서 힘껏 노력하겠습니다. 북한에서도, 여러분들도 희망을 잃지 마시고 계속 노력해 주시고, 우리도 여기서 노력하면, 언젠가는 가까운 시일 내에 북한 인권이 개선되는 날이 올 거라고 믿습니다.
배 의원은 앞으로도 도의회 차원에서 인권 사진 전시회 등 북한의 현실을 알리는 행사를 많이 기획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경북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2천여명의 탈북자들이 좀 더 잘 적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도의회 차원에서 노력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배진석 의원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서 2003년 '주권과 인권'에 대한 논문을 써 석사 학위를 받았고, 이후 국회의원 보좌관과 경기도지사 정책 보좌관으로 일하다 지난해 도의원에 당선됐습니다.
북한인권법안 통과를 요구하는 지방 의회의 의정활동은 지난 2011년 3월 충남도의회가 최초로 시작했고, 이후 잠잠하던 움직임은 2014년 2월 유엔의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가 발표된 후 다시 본격화됩니다. 속초, 대구, 울산, 청주 시의회가 2014년 10월부터 12월 사이에, 충주와 제천 시의회가 2015년 2월에, 그리고 원주시의회와 경상북도의회가 2015년 3월에 북한인권 관련 결의안과 건의안 또는 성명을 각각 채택했습니다.
경상북도의회를 통과한 결의안은 대통령 비서실, 국회, 국무총리실, 외교부, 통일부,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전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