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최근 자유아시아방송은 러시아에 있는 북한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과 아픔에 대한 특별기획 보도를 보내드렸습니다. 이 시간에는 지난달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북한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고 돌아온 양성원 기자와 함께 취재 관련 뒷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문) 일단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의 현황을 좀 소개해주시죠.
답) 일반적으로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는 적게는 2만에서 많게는 3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고요. 그 중 연해주 지역에만 1만 명 이상, 또 극동 항구 도시 블라디보스토크에만 3천 명 이상 북한 노동자들이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대한무역진흥공사 자료에 따르면 북한 노동자들이 소속돼 있는 북한 회사가 연해주에 15개 나와 있는데요. 그 중 ‘릉라도’와 ‘젠코’ 그리고 ‘철산’ 등 3개 사가 가장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또 정확한 통계가 발표된 것은 아니지만 모스크바 주변에도 4, 5천명의 북한 건설 노동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모스크바 현지에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주로 시베리아 벌목공 위주로 북한 노동자가 파견됐지만 요즘에는 건설 노동자, 또 농업 노동자 등 다양하게 파견되고 있습니다.
문) 러시아 극동 도시, 하바로프스크는 어땠습니까? 모스크바에서 꽤 멀지 않나요?
답) 그렇습니다. 모스크바에서 비행기로 약 8시간 걸렸습니다. 워싱턴과 모스크바의 시차가 7시간이고 모스크바와 하바로프스크 시차가 또 7시간이 났는데요. 거의 한반도 위쪽 부근에 위치한 곳입니다. 일단 비행장에 내렸더니 무척 우중충하고 황량한 느낌이었는데요. 공항도 무척 낙후해보였습니다. 일단 하바로프스크에서 가장 좋다는 빠루스 호텔이라는 데 여장을 풀고 고려인, 북한 출신 노동자 등을 만났습니다. 빠루스 호텔에는 북한 김일성 주석이 묶었던 방이 있고 러시아 푸틴 대통령도 그곳에 가면 숙박한다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하바로프스크에는 2백에서 3백 명의 북한 노동자가 있다고 하는데요. 제가 방문했을 당시가 휴일이었는데 시내 중앙시장 근처 건물 공사장에서 일하고 있는 북한 노동자를 직접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남루한 옷을 입고 왜소한 노동자를 가까이 가서 보면 대부분 북한 노동자란 이야기를 현지 한인들이 해줬고요. 또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기 위해 휴일에도 일하는 사람은 모두 북한 노동자란 말도 들었습니다.
문) 하바로프스크에서는 벌목장 출신 북한 노동자 박 씨를 만나셨죠? 그 분 이야기를 좀 해주시죠.
답) 네, 박 씨는 65년생으로 올해 50세였는데, 지난 92년부터 99년까지 8년 동안 러시아 아무르주 띤따 벌목장에서 일했습니다. 99년부터는 그곳을 탈출해 하바로프스크에서 약 200킬로미터 떨어진 러시아 원주민들이 사는 곳에 정착해 살고 있었습니다. 박 씨로부터 벌목장 노동자 관련 이야기, 왜 그가 벌목장을 탈출할 수밖에 없었는지, 또 탈출해서 지금까진 어떻게 살았는지 등 그의 인생 이야기를 3시간 정도 들어봤습니다. 박 씨와 인터뷰를 한 장소는 하바로프스크 시내에서 북쪽으로 고속도로를 70킬로미터 쯤 가서 있는 아무르 강변이었는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황량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는데, 꼭 무슨 영화에 나오는 장면 같았습니다. 그는 러시아 현지인과 지난 2001년 결혼해 12살 난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요. 박 씨는 이 아들을 한국 신학교에도 보내고, 목사를 만들어 북한 내 기독교 선교 사역을 시키고 싶다는 희망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문) 북한과 매우 가까운 러시아 극동 항구도시 블라디보스토크도 방문하셨는데요. 그 곳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답) 네 블라디보스토크는 지난 2012년 APEC즉,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정상회의 개최를 계기로 공항도 신식으로 깨끗하게 잘 꾸며져 있었고 도시 분위기도 하바로프스크보다는 많이 밝았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도 여기저기서 북한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는데요.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독수리 전망대란 곳엘 갔더니 양복을 차려 입은 남녀 북한 간부들 6명이 관광을 하고 있는 모습도 목격했고요. 시내 잠수함 박물관엘 갔더니 그 앞 계단 공사를 북한 건설 노동자들이 하고 있었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만 3천 명 이상의 북한 노동자들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이들 중 일부는 그 곳 한인들과도 꽤 많은 교류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문) 북한에서 파견돼 현재 연해주 지역에서 일하고 있는 북한 노동자 김 씨도 직접 만나셨는데 그와 관련된 이야기도 좀 해주시죠.
답) 네, 김 씨를 만나 식사를 같이 하면서 2시간 넘게 진솔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일단 놀란 것은 북한 건설 노동자들이 회사에 바치는 납입금을 회사 사장이 착복하는 게 너무 억울하다는 김 씨가 이를 고발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겁니다. 직접 그를 만나봤더니 정말 억울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는데요. 그런데 김 씨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러시아에 나와서 북한에는 없는 자유, 또 정보, 주로 인터넷을 통한 정보를 접했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김 씨는 직접 자기는 '인권'에 대해서 눈을 떴다면서 이제는 다 알았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더 이상 살기가 힘들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모르면 모를까 다 아는 데 북한 안에서 간부들이나 보위부원들이 하는 행태를 보면서 또 그들의 거짓말에 더 이상 속고 살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문) 김 씨는 열악한 북한의 인권 상황도 알고 국제 정세에도 무척 밝아 보이는데요.
답) 그렇습니다. 김 씨는 최근 북한 당국이 유엔 등 국제사회의 북한 인권문제 제기에 민감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아는지 해외 파견 북한 건설회사 사장들의 노동자 상납금 착복을 막기 위해서는 북한 당국 검열 성원만으론 부족하고 유엔 같은 국제기구가 같이 나와서 특별 검열을 해야 한다며 아주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북한 당국이 국제 사회에 보여주기 위한 이른바 ‘인권감옥’, 그러니까 일반 시설보다 수감 환경이 월등히 뛰어난 시설을 증산교화소 안에 따로 운용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김 씨는 북한 당국이 인권 문제와 관련한 국제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많이 의식하고 있다는 것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문) 다른 재미난 이야기도 좀 했습니까?
답) 네, 일단 김 씨는 북한의 핵무기에 대한 자부심이 무척 컸습니다. 한국의 경제력과 북한의 군사력을 합쳐서 통일을 해야 하는데 서로 양보를 하지 않아 통일이 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고요. 그러면서 남북한이 통일되려면 북한의 체제, 그러니까 3대 세습 체제가 끝나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정치 문제, 사상 문제 이런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면서 돈을 많이 버는 게 가장 큰 목표라고 말했습니다. 최근 북한 사람들의 정서를 대변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또 부인과 자식, 가족들과 떨어져 살면서 느끼는 말 못할 고통, 예를 들면 부부생활 같은 것에 대해서 터놓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그는 자신이 집에 인편으로 보내준 달러로 50와트 태양전지를 사서 밤에 남부럽지 않게 밝게 산다는 북한 가족들의 이야기를 전해주기도 했습니다.
문) 한국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나요?
답) 김 씨는 고된 공사 일을 하면서 피곤한 와중에도 한국 드라마를 무척 즐겨본다고 말했는데요. 최근 가장 재미나게 본 드라마는 몇 년 전 것이긴 하지만 '올인'이라는 카지노, 도박 관련 드라마, 또 최근 것은 한국 케이블 텔레비전 OCN에서 방영했던 '나쁜 녀석들'이라는 범죄 수사 드라마였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김 씨는 한국 드라마를 통해 한국 중산층의 연봉이 얼마인지도 대충 알고 있었고 한국의 발전상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어 무척 놀랐습니다.
앵커: 네, 지금까지 지난달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북한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고 돌아온 양성원 기자로부터 취재 관련 뒷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