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한국에 사는 탈북자 3명이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찾았습니다. 험난했던 3번의 탈북 과정과 꽃제비 생활 그리고 한국에서의 적응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을 전했습니다. 탈북 동포들의 생생한 증언을 들으며 함께 울고 웃었던 현장을 유지승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탈북 후 한국으로 망명한 탈북자 3명이 지난주 로스앤젤레스의 은혜한인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은혜 한인교회의 초청으로 미국에 온 이들은 로스앤젤레스의 라디오 방송국과 여러 교회에서 생생한 탈북 체험담을 소개했습니다.
그 중 한명인 케빈 박씨는 7살 때 부모님과 함께 탈북에 성공했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북한에 대한 원망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했다고 회상합니다.
케빈 박 탈북자 : 나라(북한)는 우리를 살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고향을 등지고 나라를 버렸습니다. 오직 먹고 살기에만 급급했지 어떠한 꿈도 희망도 없이 살았습니다.
케빈 박씨 가족은 첫 번째 탈북 후 중국 공안에 붙잡혀 북송 됐지만 두 번째 탈북에도 성공했습니다. 함께 모여 살면 발각되기 쉬워 아버지와 누나, 어머니와 케빈이 각각 흩어져 생활했습니다.
다시 합칠 수 있으리라는 행복한 기대도 잠시, 어머니와 케빈은 다시 붙잡혀 두 번째 북송을 겪습니다. 어머니는 정치범 수용소에, 케빈은 꽃제비들이 모여있는 보호소에 감금됐습니다.
꽃제비 수용소에서 케빈은 먹을 것이 모자라 굶주려 쓰러지는 아이들과 서로 경계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옴병과 영양실조 등으로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게 됩니다.
케빈 박 : 하루는 제 옆에 죽은 쥐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너무 반가웠습니다. 항상 배고파서 허기져 있었기 때문에 그 쥐를 보는 순간 고기를 먹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에 불 아궁이에 (쥐를) 통째로 집어 넣었습니다.
케빈 박씨 모자는 우여곡절 끝에 3번째 탈북했지만 다시 붙잡혀갔고 친척들의 도움으로 수용소에서 나와 다시 4번째 탈북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북한으로 잡혀간 아버지는 생사불명이지만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후 케빈은 한국으로 넘어와 겨우 마음 편안 삶을 시작했습니다.
케빈 박 : 한국에 와서는 더 이상 절박한 상황도 없었고, 위급한 상황도 없었습니다. 배고프지도 않았고, 공안들에게 붙잡혀 북송될 염려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평범하고 평안한 삶도 탈북자에게는 쉽지 않았습니다.
케빈 박 :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7살때부터 11살 때까지 겪었던 그 상처와 아픔들이 계속 마음에 남아서, 아픔이 계속 되살아 나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누나와 함께 이제 한국생활에 적응한 그는 어렸을 때 수용소에 함께 있던 꽃제비들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다고 합니다. 통일이 되면 하고 싶은 일은 수용소의 굶주린 어린 친구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수용소에서 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던 그 기억을 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은 조리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케빈 박 : 조리사로 성공해서 아직도 굶주린 배를 움켜잡고 죽어가고 있는 수십만 명의 꽃제비들을 비롯한 고아들에게 최소한 배는 곯지 않고 대한민국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며 공부할 수 있는 미래에 통일이 되면 조리사 학교를 세우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이날 은혜 한인교회에 모인 사람들은 케빈 박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부모와의 생이별 이야기 때는 함께 눈물을, 거듭된 탈북 성공이야기에는 같이 기뻐하며 이런 비극이 사라질 그 날이 하루빨리 다가오기를 기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