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법 때문에..." 탈북고아 미 입양 막혀

0:00 / 0:00

MC:

부모의 강제북송으로 고아가 돼 한국에 정착한 탈북고아를 미국에 입양하려는 미국인 가정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에서 생사조차 알 수 없는 부모의 동의를 받아야만 입양할 수 있다는 한국의 입양법이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노정민 기자가 그 사정을 들어봤습니다.

올해 초 한국에 정착한 진영이와 진숙이, 영심이(가명)는 모두 탈북 고아들입니다. 12살과 8살, 4살인 이들은 남매와 사촌지간으로 중국에서 부모가 강제 북송된 이후 고아가 됐습니다.

그리고 미국 인권단체의 도움으로 진영이와 진숙, 영심이는 지난 3월 초 태국에 도착한 뒤 곧이어 다른 탈북자들과 함께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인권단체가 처음 이들을 도울 때부터 미국에 입양하는 방법을 모색했지만 신원확인과 입양절차 등이 까다로워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아이들도 도움을 준 사람들이 있는 미국행을 소망했습니다. 하지만, 남매인 진영, 진숙이와 영숙이는 서로 다른 보호시설에 머물고 있습니다.

탈북고아들의 딱한 사정을 전해 들은 미국 내 2~3가정이 이들을 입양하겠다며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모두 유명 대학교의 교수나 지식인층으로 경제력이나 생활환경 등 모든 면에서 검증된 사람들입니다. 이 중 미국 미주리 주에 거주하는 미국인은 세 아이를 모두 입양하겠다며 직접 이들을 만나기 위해 한국을 찾기도 했습니다. 또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애덤 시프(Adam Schiff) 연방 하원의원도 세 탈북고아에게 큰 관심을 나타내며 현재 이들의 상황과 입양 절차 등을 주시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민간단체와 입양을 신청한 미국인도 아이들을 입양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한국의 민간단체와 입양 관련 기관에 수차례 문의했지만 이들을 미국에 입양할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습니다. 부모의 동의 없이 국외 입양을 할 수 없다는 한국의 입양법 때문입니다. '홀트 아동복지회'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관계자:

미혼 부모의 자녀만 국외입양을 허가하고 있습니다. 국내 입양의 활성화 차원에서 친권자가 확인되지 않은 아동은 해외 이주 허가가 제한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부모가 돌볼 수 없는 미혼 부모의 자녀인 경우, 부모가 동의했을 때만 국외 입양이 됩니다. 따라서 부모가 없는 탈북 고아의 미국 입양은 안 된다고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의 민간단체는 이들의 부모가 현재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 생존해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다시 말해 세 아이가 미국인 가정으로 입양되려면 수용소에 갇혀 있는 부모가 풀려나와 세 아이의 미국 입양을 허락한다고 동의해야만 가능하다는 설명입니다.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한국을 찾은 미국인 가정은 현재로선 아이들을 입양할 방법이 없다는 현실에 크게 실망하며 17일 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가까이에서 돕고 싶다는 마음으로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여러 방면에서 찾아볼 계획입니다.

미국 민간단체의 관계자는 탈북 고아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있어도 입양법 때문에 이를 추진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부모가 사망하거나 언제 만날 지 기약할 수 없는 등 특수한 상황에 놓인 탈북 고아들의 처지를 고려한 법 개정의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2007년에는 '북한 이탈주민의 정착지원에 관한 일부 개정법안'에 따라 북한에서 결혼했던 남한 내 탈북자가 이혼 청구 소송을 내고 새로운 가정을 꾸밀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전에는 혼인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배우자가 직접 법원에 나와야 했지만 북한에서 생사조차 알 수 없고,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법 개정을 가져온 겁니다.

부모 없이 한국에 정착한 탈북고아는 대부분 한국 정부가 인정해 준 보호시설에 모여 지내고 있습니다. 부모의 생사조차 모르고, 언제 만날지 모르는 이들의 특수성을 고려해 부모가 동의해야만 국외 입양이 가능하다는 현행법이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이에 대한 검토와 연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작지 않습니다.

한편, 미국 하원에 제출된 '탈북고아 입양법안'에 공동 발의자(co-sponsor)로 동참한 하원 의원은 현재 34명에 이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