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중국으로 넘어온 북한 꽃제비들은 지금도 낮에는 구걸하고, 밤에는 산에 있는 토굴에서 잠을 자는 등 야생 생활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중국에 있을 당시 실제 토굴생활을 했던 한 탈북고아를 정영기자가 만나보았습니다.
지난 달 라오스에서 탈북 고아 9명이 북한당국에 의해 강제북송 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탈북 고아들을 북송시킨 당사국인 라오스 정부는 탈북청소년들을 인도하던 한국인을 인신매매범으로 매도했고, 북한 조선적십자회도 한국의 인신매매범들이 북한의 아이들을 유인 납치해 가려다가 발각됐다고 강변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중국에서 꽃제비 생활을 했던 탈북 고아 출신 김진명(가명) 씨는 "북한으로 끌려간 탈북고아들은 중국에서 낮에는 빌어먹고 밤에는 잠자리가 없어 산에 토굴을 짓고 잤던 불쌍한 애들이었다"고 8일 자유아시아방송과의 인터뷰(회견)에서 밝혔습니다.
김진명 씨: 중국에서 만나서 좀 같이 있다가 다 뿔뿔이 갈라졌지요.
기자: 중국에 가있을 때는 어디에 있었어요?
김진명: 집을 지었어요. 중국에 이름 없는 산들이 많지 않아요. 마을의 뒤에 골짜기 같은 곳에 토굴을 많이 지었어요. 경찰들에게 탄로 나면 다른 집으로 가서 자곤 했어요.
대부분 함경도와 양강도 일대에서 몰려온 북한 꽃제비들은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중국으로 넘어가게 되고 이러한 애들끼리 서로 모여 생활하게 된다고 김 씨는 말했습니다.
1993년 북한 양강도에서 태어난 김 씨도 어릴 적에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시고, 어머니마저 불치의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학교를 그만두고 중국으로 건너가 꽃제비 생활을 한 경우입니다.
그는 중국에서 빌어먹는 과정에 동료 꽃제비들을 만나 이름 없는 산야에 토굴을 짓고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기자: 지금도 그런 토굴이 남아 있나요?
김진명 씨: 아마 아직도 남아 있을 거예요. 왜냐면 위장이 너무 잘 되어 있었어요.
기자: 그러면 몇 명씩 살았나요?
김진명 씨: 그 안에 20명까지 들어가 살 수 있었어요.
북한의 꽃제비들이 이렇게 중국의 산야에 토굴을 만들 게 된 동기는 북한에 있을 때 배운 김일성 주석의 항일빨치산 이야기가 오히려 큰 도움이 되었다고 그는 떠올렸습니다.
김 씨는 "이번에 북송된 9명 고아들 중에는 자기 친구도 있다"면서 "중국에 건너와 구걸하다가 매를 맞은 그에게 먹을 것을 쥐어주던 추억이 있지만, 안전 때문에 그의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점이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2011년 김 씨는 그들과 헤어져 중국 심양과 베이징, 그리고 태국을 거쳐 한국으로 먼저 입국했습니다.
그가 먼저 자유를 얻어 한국에서 다시 미국까지 방문할 수 있었지만, 잡혀간 탈북 고아 친구들은 반대로 북한으로 끌려가 정말 아쉽다고 담담하게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북송된 9명의 탈북자들이 이렇게 빌어먹고 토굴에서 생활하던 아이들인데, 한국인 선교사님이 이들을 배불리 먹여주고 재워주기까지 했다면서 그런 선교사님이 인신매매범일 수 없다고 라오스와 북한당국의 주장을 일축했습니다.
김 씨는 최근 9명의 탈북고아 북송 사태와 관련해 일부 언론이 탈북 고아들의 이름과 얼굴까지 공개해 보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이는 외부에서 북한을 압박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아이들에게는 불리하다고 우려를 표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