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법 5주년]② 영향과 문제점

미국 정부가 북한인권법을 시행한 지 5년이 지났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은 시행 5년을 맞은 북한인권법의 영향과 문제점, 전망을 재조명하는 기획보도를 마련했습니다.

두 번째 순서로 북한인권법 시행의 문제점과 원인을 김진국 기자가 살펴봅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북한 인권단체인 디펜스 포럼의 수잔 숄티 대표는 하루 평균 44명의 버마인이 미국 정부의 망명 허가를 받아서 정착하는 데 비해 탈북자는 3달에 5명 수준에 그친다며 북한인권법의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20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 한 전화통화에서 주장했습니다.

1996년부터 북한 인권을 위해 활동해온 숄티 대표는 북한인권법보다 1년 앞선 2003년 미국 의회를 통과한 버마자유민주법으로 버마인의 미국 망명 허용은 매년 1만 6천 명에 달하지만, 북한은 5년 동안 93명에 그쳤다고 지적했습니다.

수잔 숄티: 미국 의회는 아주 자세하게 미국 정부가 북한 출신 난민을 도와야 한다고 북한인권법에 명시했습니다. 하지만 부시 전 행정부가 의회의 주문을 이행하는 데 실패했다고 봅니다. 미국이 탈북자 93명을 받아들이는 동안 한국은 1만 7천여 명의 탈북자를 정착시켰습니다.

미국 국무부의 난민 부서 담당자는 미국 정부가 북한 출신의 망명 허가를 까다롭게 하기보다는 미국행을 희망하는 탈북자들의 수가 많지 않다고 19일 자유아시아방송과 한 전화통화에서 말했습니다.

신원을 밝히기 원하지 않는다는 이 관리는 자유아시아방송에 미국 정부의 일반적인 난민 수용 절차를 설명하면서 북한 출신의 수가 많지 않은 이유는 이들 중 대부분이 미국보다는 한국행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국무부 난민이주국의 관리는 유엔고등판무관실(UNHCR)을 통해 난민 심사가 진행되는데 난민 대부분은 고국으로 돌아가거나 현재 체류하는 나라에 정착하기를 희망한다면서 미국을 비롯한 제삼국으로 이주를 원하는 난민은 1% 미만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관리는 제삼국으로 이주하기를 원하는 난민을 받는 전 세계 20여 개국 중 미국의 숫자가 나머지 국가의 총합보다 많다고 전했습니다.

이 관리는 미국에 입국하기를 희망하는 난민의 입국 심사는 국토안보부가 전담한다면서 통상 신청에서 입국까지 8개월에서 1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말했습니다.

일부 미국행을 희망하던 탈북자의 수속 기간이 1년 이상 걸린 것은 신원확인이 어려워서 입국 결정이 늦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숄티 디펜스포럼 대표는 탈북자가 많이 있는 중국이나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의 미국 대사관에 한국어를 구사하는 인원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수잔 숄티: 한국어를 하는 인원을 중국이나, 태국, 베트남, 라오스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 배치해야 합니다. 미국 정부는 탈북자의 미국 입국에 수동적으로 대처했습니다. 적극적으로 북한 출신 난민을 받아들이겠다는 자세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당시 미국의 대표적인 인권단체에서 북한인권문제를 담당했던 구재회 존스홉킨스대학 국제대학원 한미연구소 소장은 난민 심사를 담당하는 미국 정부 부처가 국무부나 국토안보부로 단일화되지 않아서 연방수사국, 이민국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할 뿐만 아니라 탈북자의 미국 입국을 허용하는 심사기준이 복잡하고 엄격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구 소장은 북한인권법이 미국에서 시행된 직후 정부의 예산으로 2005년 미국과 한국, 유럽에서 북한인권대회를 개최했던 프리덤 하우스의 북한인권국장을 맡은 바 있습니다.

구 소장은 북한인권법으로 대북인권단체가 미국 정부의 자금을 지원받을 길이 열렸지만, 국무부 내 부처 간 업무 조율이 안돼서 자금 지원이 대부분 무산됐다고 20일 자유아시아방송에 말했습니다.

구재회: 민주주의인권노동(The Bureau of Democracy, Human Rights and Labor/DRL)국이 대북활동을 지원하는 예산을 배정받았지만, 동아태국과 업무 조율이 안돼서 많은 단체가 지원받지 못했습니다.

이와 함께 당시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가 인권에서 핵문제 해결로 전환되면서 북한인권법의 시행과 관련한 미국 정부의 관심도 줄었다고 구 소장은 회상했습니다.

구재회: 2006년부터 2007년, 2008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북한 인권과 관련한 미국 정부의 관심은 핵문제에 가려졌습니다. 크리스토퍼 힐 동아태 차관보를 중심으로 핵문제 해결에 매달리면서 북한에 인권문제 제기하는 움직임을 최소화하려 했습니다.

이밖에 북한인권법으로 새로 임명된 제이 레프코위츠 당시 북한 인권 특사가 상근직이 아닌 임시직이어서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없었던 점과 대북 협상에서 레프코위츠 특사가 철저하게 배제된 점 등도 북한인권법 시행의 문제점으로 지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