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사망 소식을 접한 북한 전문가와 탈북자들은 개인의 영달보다 북한 주민의 인권과 삶을 개선하기 위해 헌신한 그의 외로운 삶을 추모했습니다.
양희정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미국 북한인권위원회의 척 다운스 사무총장은 2000년 수잔 숄티 디펜스 포럼 대표와 함께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미국 의회에서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해 증언하도록 돕는 작업을 하면서 처음 만났다고 기억했습니다. 그는 그후 지치지 않고 북한의 인권을 위해 힘써온 황 전 비서와 10년 가까이 돈독한 관계를 맺어왔다면서 그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다운스 사무총장은 황 전 비서가 북한 정권에 대해 신랄히 비판하고 늘 꼿꼿한 모습을 보였지만 마음 한 구석에 담아둔 개인적인 슬픔을 엿보기도 했다면서 안타까움을 표했습니다. 2008년 23살이었던 아들과 함께 서울을 방문했을 때 황 전 비서가 아들을 만나고 싶다고 해서 자리를 마련했었는데, 북한에 아들을 두고 홀로 떠나야만 했던 상황을 설명했다고 말했습니다.
척 다운스
: 제 아들에게 북한에 두고 온 자신의 아들에 대해 얘기해 주셨습니다. 다시는 못 볼것을 알고 떠나야 했던 심정을요. 그분과 만난 뒤 제 아들은 “세상에 태어나 저렇게 슬픈 사람은 처음봤다”고 말하더군요.
(He talked to my son about his son and how had to leave his son in North Korea and how he would never see his son again. I have a 25 year old son and when he was 23, Hwang jang yop wanted to meet my son and talk about his son. My son came out of the meeting and said “he was the saddest man I’ve ever met.”)
탈북자 출신 박사 1호인 세계북한연구센터 안찬일 소장은 북한이 황 전 비서에 대해 ‘변절자, 배신자’라고 딱지를 붙였지만 3대 세습으로 봉건시대로 돌아가는 북한이야말로 ‘사회주의의 배신자’이고 ‘봉건정치로 회귀하는 역사의 죄인’이라고 말했습니다.
안찬일 교수
: 그분이 대한민국 서울에서 보낸 13년 동안 어떤 모습으로 살아오셨는가를 보고 장례식장에서 2만여명의 탈북자들이 그분의 영면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런것을 볼때 누가 변절자냐, 배신자냐 이런 논리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분이 탈북할 때 자신의 영달이나 부귀영화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탈북하면 부인과 가족이 어떤 처참한 일을 당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안 교수는 황 전 비서가 목숨을 걸고 북한을 떠난 것은 북한의 독재를 끝장내고 인권을 개선하려는 원대한 뜻을 품었기 때문이며, 실제로 한국에서 북한 민주화 위원회를 통해 실천적 모범을 보였다고 강조했습니다.
미국 내 북한 지도층 연구의 권위자인 미국 해군분석센터 켄 고스 해외지도부 연구담당 국장은 2009년 서울에서 마지막으로 황 전 비서로부터 북한의 지도층에 대해 다양하고 광범위한 분야에 대해 들었다면서 그를 추모했습니다. 북한 정권의 선전이나 언동을 곧이 곧대로 들어서는 안된다는 경각심을 주고, 북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짚어 주던 황 전 비서는 북한 특히 지도층 연구에 ‘귀중한 자원’이었다고 고스 국장은 말했습니다.
켄 고스
: He was definitely a very valuable resource. And now it leaves a big hole for us now in terms of being able to gain wisdom about how the very mundane aspects of running of a leadership. What it’s like. Because he was the only person that we have access to who would talk to the Pyongyang-watching community that could provide that for us about policy making was a very personal… from my perspective, he was a great resource. …they may have not agreed on what he had to say about nkorean leadership. Unless we understand NKorean dynamics, we should be caught off guard by North Korea.I believe his voice became more one of raising awareness that regime in the north.
탈북자 출신 미국 북한인권위원회의 김광진 객원 연구원은 개인의 운명보다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 더 소중하다는 큰 뜻을 갖고 한국으로 망명한 황 전 비서를 처음 만났을 때 “사람이 변하면 안된다”라고 말씀하신대로 남북한의 민족을 위해 뜻을 굽히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김광진 연구원
: 제가 황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 들은 얘기가 ‘사람이 변하면 안된다”는 말을 들었어요. 북한 체제에 극도로 환멸을 갖고 뛰쳐 나오는데 마음이 변하면 안된다는 것이죠.
김 연구원은 첫 만남에서 “사람이 변하면 안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북한 정권이 나쁘고 북한인민이 고통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생사의 기로에서 탈출하겠다는 결단을 내렸는데 북한 정권에 대한 증오와 그에 반대해서 투쟁하는 정신이 한국에서 편안히 살면서 약화되면 안된다”는 황 전 비서의 말을 되새기게 된다며 그를 추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