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중국 방문을 통해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김 위원장은 특수 관계를 재확인함으로써 경제 지원에 관한 약속과 후계 구도에 관한 암묵적 승인을 받았다고 보입니다. 반면 중국은 이런 특수 관계를 바탕으로 북한을 계속 영향권 아래 두면서 국제적 역량을 과시할 토대를 재차 마련했습니다.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앵커: 우선 김 위원장의 가장 큰 방중 성과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기자: 가장 큰 성과는 김 위원장이 국제 문제를 비롯한 여러 현안에서 중국의 지지를 받아낸 데 있습니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5일 열린 정상회담에서 '전략적 소통의 강화'를 비롯하여 5개 협력 방안을 내놓았습니다. 김 위원장은 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화답했습니다. 5개안은 중국이 후계 문제를 포함한 내정과 천안함 사태나 6자회담 재개와 같은 국제 문제와 관련해서 북한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가 있습니다. 이 제안에는 양국이 국제와 지역 문제는 물론 내정에서도 협력을 강화한다는 방안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앵커: 그러면 김 위원장이 동의했다는5가지 협력 방안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소개해 주시지요?
기자: 5개 협력 방안은 1)고위층 교류의 지속, 2)전략적 소통의 강화, 3)경제/무역의 협력 심화, 4)인문 교류의 확대, 5)국제 및 지역 문제와 관련한 협력 강화 및 지역의 평화와 안정 수호 등 입니다. 이 가운데 '전략적 소통의 강화'는 양국이 수시로 또는 정기적으로 양국 내정 및 외교의 중대 문제와 국제 및 지역 정세, 국정 운영의 경험 등 공통 관심사에 관해서 심도 있게 의사를 소통해 나가는 방안을 말한다고 후 주석은 밝혔습니다. 이 5개 방안에는 북한과 중국이 각각 바라는 대북 경제 지원과 대북 영향력 증대가 들어 있습니다. 중국은 '내정에 관한 의사 소통'을 이끌어내 자국의 견지(見地)에서는 북한을 속국화할 정도로 영향력을 증대했습니다.
앵커: 이런 가운데 국제 관심사인 6자회담과 관련해 나온 김 위원장의 발언은 무엇입니까?
기자: 김 위원장은 후 주석과 한 정상회담에서 "유관 당사국과 함께 노력해서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발언은 그 동안의 입장에서 진전한 내용이 없습니다. 한국 정부의 소식통은 "북한이 회담 재개의 전제 조건을 제시했던 입장에서 나아가지 못했다"며 "회담 재개로 가기 어렵다"고 진단했습니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6자회담 참가국이 회담의 재개를 중국에 걸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만들었다고 해석될 수 있습니다.
앵커: 그렇다고는 해도 김 위원장은 조-중 정상회담에서 6자회담을 일단 언급함으로써 사실상 복귀 카드를 빼어 들었다고 보입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나요?
기자: 이는 여러 목적을 지녔다고 보입니다. 북한은6자회담 의장국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하는 중국의 체면을 세워주고 투자 유치와 식량 제공과 같은 경제 지원을 끌어내려 합니다. 북조선은 유엔의 대조선 제재와 화폐 개혁의 실패, 장마당 폐쇄 등으로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습니다. 이런 유엔 제재를 해제하려는 명분을 쌓을 수가 있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또 천안함 사태로 점증하는 국제 사회의 대북 압박을 사전에 차단해 보려는 이유도 있다고 보입니다. 회담 재개는 북한에 불리하게 전개되는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주요 수단으로 간주됩니다.
앵커: 후 주석의 발언에는 김 위원장의 셋째 아들 김정은 씨로 이어지는 후계 체제를 인정하는 듯한 대목이 있는데 그것이 무슨 내용이며 어떻게 해석되는지를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기자: 후 주석은 "양국의 선대 지도자들이 키워낸 전통적 우의 관계는 시간 흐름과 세대 교체로 앞으로 변화가 생겨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양국 우호 관계를 시대의 흐름과 함께 발전시키고 대대손손 계승하는 일은 양국이 가진 공통된 역사 책임"이라고 화답했습니다. 김 위원장에겐 이번 방문이 중국과 후계 문제를 논의할 아주 좋은 기회였습니다. '세대 교체'와 '대대손손'은 두 사람이 북조선의 후계 체제를 우회적으로 언급한 대목으로 풀이됩니다.
앵커: 그런데 이 같은 중국의 대조선 정책은 어디에 근거해서 나온다고 보이나요?
기자: 우선 조선반도의 현상 유지와 안정을 바라는 데 있습니다. 중국은 경제 성장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북한 정권이 붕괴해 조선반도의 안정이 깨진다면 대규모 난민의 발생, 핵무기의 유출 등과 같은 사태로 자국의 안정과 성장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 중국은 한반도의 통일을 원치 않습니다. 남조선이 북조선을 흡수해 통일하면 중국은 미국을 비롯한 해양 세력과 바로 대치하는 형국을 맞게 됩니다. 이밖에 중국은 통일된 한반도보다는 분단된 한반도가 자국 안보에 더 유리한 입장입니다. 따라서 중국은 조선반도의 안정과 현상 유지를 추구합니다.
앵커: 김 위원장의 이번 중국 방문을 계기로 나타난 중국의 대조선 정책은 무엇입니까?
기자: 한국보다는 북한을 우선시하는 정책입니다. 북한의 소행으로 보이는 천안함 사건의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과 미국은 김 위원장의 방중에 우려를 나타내며 중국에 책임 있는 역할을 주문했습니다. 그렇지만 중국은 김 위원장의 방중 사흘 전에 중국을 찾았던 이명박 대통령에게 이를 귀띔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국과 중국 사이엔 현재 냉기류가 흐릅니다. 전략적 동반자 관계인 한-중 관계는 혈맹적 특수 관계인 조-중 관계에는 한계를 보였습니다. 한편 중국은 김 위원장 방문을 처음엔 비밀에 부쳐 국제 사회에서 이미지가 실추했습니다.
앵커: 그러면 조-중 관계의 강화에 대응해 한-미 관계의 강화라는 대립 구도가 나올 수 있나요?
기자: 그런 그림이 이미 그려졌습니다. 천안함 사태와 6자회담을 놓고 볼 때 조-중 대 한-미의 대립 구도는 나타났습니다. 북한과 중국은 천안함 사태와 6자회담의 재개를 분리한다는 입장인 반면 한국과 미국은 이를 연계한다는 입장입니다. 한국 정부는 김 위원장이 방중을 통해 천안함 사태와 관련한 국제 공조를 깨뜨리려는 데 대해서 미국과 협력해 이에 맞불을 놓겠다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김 위원장의 방중을 계기로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의 질서는 한-미 대 조-중의 대립 구도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다시 확인됐습니다.
앵커: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에는 네 번째 부인인 김 옥 씨가 동행했다면서요?
기자: 7일 김 옥 씨로 추정되는 여성이 중국 CCTV에 몇 번 나왔습니다. 이 여성은 김 위원장과 원자바오 총리가 회동할 때, 후 주석이 만찬을 주최했을 때, 김 위원장이 중관춘 생명과학원을 방문했을 때 보였습니다. 김 옥 씨는 2004년을 전후해서 김 위원장과 동거해 왔습니다.
앵커: 지금까지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에 관한 결과를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