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중국의 후진타오 국가주석 간의 정상회담 결과에 관심이 쏠립니다. 김 위원장은 한국 해군 함정인 천안함의 침몰과 관련한 북한의 연관 여부를 비롯해 여러 현안을 유일한 후원국 중국과 논의하는 일을 더 미룰 수가 없다는 판단 아래 중국을 갑자기 방문해 5일 정상회담을 했다고 보입니다. 이에 관한 이모저모를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앵커: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과 관련한 보도는 올해 초부터 꾸준히 나왔습니다. 한국과 일본, 미국의 언론사가 오보를 낸 적도 한두 번이 아닌데 그간의 경과를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기자: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작년 10월 28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을 방문 중인 최태복 노동당 중앙위 비서에게 김 위원장의 방중을 요청하면서 관심사로 떠올랐습니다. 김 위원장은 그때부터 양국 관계의 강화와 건강 과시 등의 여러 목적 때문에 곧 중국을 방문한다고 알려졌습니다.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에 관한 이야기는 연말연초설-2월말설-3월말/4월초설-5월초설 등을 거치며 끊임 없이 나왔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한국과 일본 언론의 오보도 많이 나왔습니다. 한때 김 위원장의 방중은 천안함이 3월 26일 백령도 인근의 해상에서 침몰한 뒤 북한의 연계 가능성이 나오면서 물 건너간 이야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앵커: 김 위원장이 이런 상황에서 후 주석과 정상회담을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기자: 중국과 몇몇 현안을 논의하는 일을 이젠 더 미룰 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양국 현안으로 천안함 침몰 후에 발생한 한반도의 긴장 고조, 북한의 심각한 경제난에 따른 중국의 경제 원조, 북한의 후계 구도에 대한 중국의 인정 등을 들 수가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논의하는 데 중국과 북한의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진 측면이 있습니다. 북한은 경제 위기로 중국의 도움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고 반면 중국은 천안함 사태로 긴장이 날로 높아가는 조선반도의 정세를 관리해야 하는 시기를 맞았습니다. 반면 중국이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김 위원장에게 직접 책임 있는 이야기를 듣고 대처 방안을 결정하려고 김 위원장을 불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앵커: 우선 가장 중요한 이유로 떠오른 천안함 사태와 방문의 연계성부터 설명해 주시지요?
기자: 한국과 일본의 대북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갑자기 중국을 방문한 이유로 천안함 사태를 꼽습니다. 한국과 미국은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서는 침몰 원인을 먼저 규명한 다음 6자회담을 비롯한 다음 문제에 착수할 수가 있다는 입장입니다. 북한의 연계 여부가 아직 확실히 드러나지 않은 가운데 김 위원장은 국제 사회의 압박이 점차 거세지는 상황에서 이 같은 판세를 뒤집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6자회담의 복귀 선언은 이런 판세를 뒤집을 아주 좋은 재료로 보입니다. 더군다나 북한이 이에 정말로 연계됐을 경우 이번 방중은 중국을 붙들어매고 협조를 얻는 데 절대적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앵커: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천안함 사태 이외에 중국의 대북 경제 원조에도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경제 원조와 방북의 상관 관계를 설명해 주시지요?
기자: 아시다시피 북한은 지금 유엔의 제재, 화폐 개혁의 실패, 장마당의 폐쇄, 만성적인 식량난 등으로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는 북한의 비핵화에 진전이 없을 경우 대북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실제로 남조선에서 오던 쌀과 비료는 수년 간 오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돌파구는 중국밖에 없습니다. 중국은 영향력을 넓히는 차원에서 북한을 마다할 리 없습니다. 베이징 외교가는 중국이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에 대한 성의 표시로 식량 10만 톤 가량을 지원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김 위원장은 무상 원조 외에도 신의주 일대의 공단 조성, 라진항 추가 개방을 비롯해 국경 지역의 경제 협력도 논의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징후는 이미 보였습니다. 김 위원장은 라선 지역이 따라가야할 사례로 삼으려고 다롄의 경제기술개발구와 톈진의 빈하이신구(濱海新區)를 4-5일 시찰했습니다.
앵커: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에서는 6자회담의 재개를 비롯한 북핵 문제도 주요 의제가 된다고 보입니다. 김 위원장의 방중이 6자회담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됩니까?
기자: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은 나름의 외교력을 보여줄 수 있는 이 회담을 재개하려는 단계의 일환으로 김 위원장을 불렀다고 분석됩니다. 북한은 올해 초부터 6자회담의 재개 조건으로 한반도 평화 체제의 논의와 유엔 제재의 해제를 내걸었습니다. 여기에다가 천안함 사태까지 일어나는 바람에 6자회담의 재개는 상당히 어려워졌습니다. 중국은 6자회담의 재개가 이처럼 지체될 경우 6자회담의 진전과 조선반도의 정세 관리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반면 북한의 입장에선 핵무기전파방지조약(NPT) 평가회의에서 NPT를 나간 나라를 제재하자는 불리한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따라서 북한은 6자회담에 복귀한다고 선언하는 대신에 경제 원조와 몇몇 국제 문제와 관련해 중국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북한은 6자회담 복귀보다는 재개의 가능성만을 언급할 수도 있다고 관측됩니다.
앵커: 김 위원장이 후 주석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를 만나서 북한의 시급한 현안인 후계 문제를 논의할 가능성도 크다고 보입니다. 이 문제도 중국 방문의 큰 이유로 꼽을 수 있는지요?
기자: 김 위원장은 현재 나이와 건강 상태를 고려할 때 중국 측과 이 문제를 논의하는 일을 더는 미룰 수가 없습니다. 세째 아들 김정은 씨의 동행 여부에 관계 없이 김 위원장은 후계 구도에 관해 중국의 추인을 받고 김정은 시대에서도 중국이 북한에 협력한다는 약속을 받아내려할 것으로 관측됩니다. 중국과 북한은 공산당과 노동당의 차원에서 서로 최고 지도자를 추인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중국의 후임 국가주석으로 가장 유력한 시진핑 부주석도 그런 이유로 내부 절차를 거쳐 2008년 6월 북한을 방문했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의 일각에서는 세습을 인정할 경우 자국 사회주의마저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이를 반대합니다.
앵커: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에 관한 한국과 미국의 시각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기자: 한국과 미국 정부는 김 위원장의 방중을 그리 달갑게 보지 않습니다. 두 나라는 한국 해군 함정인 천안함의 침몰 원인이 밝혀질 때까지 이 사건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일단 떠오른 김 위원장의 방문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미국 정부는 이런 상황에서 김 위원장의 방중이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중국에 전달했다고 5일 알려졌습니다. 한편 한국 외교통상부의 신각수 1차관과 통일부의 현인택 장관은 3일과 4일 장신썬 주한 중국 대사에게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과 관련해 유감의 뜻을 전달했습니다.
앵커: 지금까지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에 관한 이모저모를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