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김일성, 무능∙무식∙무자비한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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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미군은 북한군 총사령관인 김일성을 “거칠고, 못 배웠으며, 언어 구사에 서툰 데다 행정 능력도 없지만 유격전에는 능한 무자비한 지도자”로 평가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작성된 북한군에 관한 미군 극동사령부의 기밀 문서 내용을 박정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습적인 남침을 감행한 북한군의 총사령관인 김일성은 본명이 김성주인 사기꾼.”

미군 극동사령부 산하 군사정보단이 한국전쟁 중인 1952년 7월 작성한 북한군에 관한 기밀 정보 보고서가 평가한 총사령관 김일성입니다. 최근 기밀 해제된 이 보고서는 진짜 김일성이 이미 1935년 봄 사망했고 그가 살아있다면 67세가 됐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보고서는 20대에 동 만주 지역에서 게릴라 활동을 한 김일성이 유능한 게릴라 지도자였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그를 “유능하고 무자비한 게릴라 지도자”라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보고서는 김일성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비 공산주의자의 말을 인용해 김일성이 “거칠고, 교육받지 못했으며, 언어에 서툰 데다 행정 능력이 거의 없다”고 평가했습니다.

총 211쪽에 이르는 보고서는 만주 지역에서 중국 공산당과 함께 항일 무장 활동을 펴던 한국인들이 이후 북한군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후 일본의 패망에 이은 소련의 북한 점령과 소련군을 통한 무장 등 북한군의 무장과 체제 정비 과정을 비교적 자세히 기술했습니다.

보고서는 한국전쟁의 발발과 전개 과정에 대해서도 언급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1950년 6월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할 당시 미군 극동군 사령관은 서울에 남아있던 군사고문단장에게서 새벽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면 남침했다고 최초로 보고받았습니다. 하지만 “실제 북한군의 공격이 시작된 시각은 북한군이 38선 너머로 야포를 쏜 새벽 4시40분”이라고 보고서는 밝혔습니다.

이후 새벽 5시를 기해 북한군 보병이 동두천, 춘천 등을 통해 38선을 넘어왔고 강릉지역 해안가에서는 상륙작전도 이뤄졌지만 북한 당국은 오전 11시에 뒤늦게 전쟁을 선포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습니다. 중공군의 참전과 관련해, 보고서는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한군이 사실상 패배한 상태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이라며 중공군 병사가 1950년 10월 말 운산 부근과 함흥에서 북쪽으로 40 마일 가량 떨어진 수동 지역에서 붙잡히면서 그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보고서는 이 밖에 북한군의 조직과 각 지휘자를 도표와 함께 자세히 설명하고 김일성과 남일 인민군 총참모장 등 북한군 수뇌부와 주요 지휘관의 이력도 함께 실었습니다. 또 북한군의 전투부대 구성과 배치 그리고 각 예하 부대의 부호는 물론 주요 무기의 제원까지 상세히 실어 극동사령부 예하 부대가 실제 전장에서 작전을 수행할 때 활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한편 보고서는 “김일성이 1950년 1월 홍명희 북한 부수상의 딸과 결혼했다는 소문이 있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