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김 씨가 앞장서서 ‘150일 전투’를 성공적으로 지도해 경제 도약을 이룩했다고 알리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요즘에는 “김정운 대장의 지략으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장군님에게 사죄했다”고 인민에게 선전하고 있습니다. 이에 관한 자세한 소식을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앵커:
허형석 기자, 우선 김 위원장의 3남인 김정운 씨는 어떤 인물입니까?
허형석:
김정운 씨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남으로 올해 1월 김 위원장의 후계자로 내정됐다고 전해지는 인물입니다. 김 위원장은 지금까지 모두 처첩 9명을 두었다고 합니다. 김정운 씨는 일본에서 살다가 북한으로 건너가 평양만수대예술단의 무용수가 된 고영희(1953-2004) 씨가 낳은 김 위원장의 세 번째 아들입니다. 고 씨는 김 위원장의 아홉 처첩 중 여덟 번째입니다. 김 위원장은 정식으로 결혼하기 이전에 이미 사망한 성혜림 씨와 동거했으며 그 사이에서 장남 김정남 씨를 낳았고, 앞서 말씀을 드린 고 씨에게서는 차남 김정철 씨도 낳았습니다. 김 위원장은 김영숙 씨와는 정식으로 결혼해 슬하에 딸 김설송 씨를 두었다고 합니다. 김 위원장의 후계자로 지명을 받았다는3남 김정운 씨는1984년 1월생이어서 우리 나이로는 26살입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공식 석상에 나오지 않아 이렇다하게 북한과 국제 사회에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앵커:
북한이 김정운 씨의 업적 만들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는데 내용은 무엇입니까?
허형석:
우선 미국 여기자의 석방과 관련한 김 씨의 업적 찬양입니다. 얼마 전 남한 통신사인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는 “김정운 대장의 지략으로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태평양을 건너와 장군님(김정일)에게 사죄했다”고 선전해 이를 김 씨의 업적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김 씨는 후계자로 내정된 이후 4월 장거리 로켓의 발사를 통제하는 장소에도 김 위원장을 수행했습니다. 북한 당국은 이것도 김 씨의 업적으로 말합니다. 또 북한 축구팀이 44년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고 평양시에 10만 가구를 건설하는 일들이 그의 치적으로 포장되고 있습니다. 정치적 야심이 있다고 알려진 김정운 씨는 김일성 주석의 97회 생일과 5.1절을 맞아 야간의 불꽃놀이 행사를 주관했고 경제 부분에서는 ‘150일 전투’를 이끌며 업적 쌓기에 나섰습니다. 북한의 관영 매체는150일 전투가 아주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선군 정치’와 ‘조선과 미국의 대결’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김 씨의 영도력이 뛰어나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습니다.
앵커:
북한은 김 씨의 업적 만들기 외에 경력 부풀리기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하지요?
허형석:
역시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우선 북한 당국은 현재 26세에 불과한 김 씨의 나이를 무려 10살 가까이 부풀려 35세로 소문을 내고 있습니다. 또 충성 경쟁에 앞장선 보위부는 ‘충성의 편지’에서 “김정운 대장 동지께서 보위 사업을 20년간 지도하시어---보위 사업의 영재”라고 말해 역시 경력을 과장했습니다. 북한 당국은 김 씨가 어릴 적에 스위스에서 유학한 사실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김일성군사종합대학과 5년 과정의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했다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김 씨의 스위스 유학은 일본 언론에 이어 남한의 언론에서 최근 대대적으로 보도된 바가 있습니다. 남한의 대북 소식통들은 김 씨가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이나 김일성종합대학 과정을 등하교를 하는 식으로 해서 졸업하지 않고 이 대학 교수들한테서 개인 교육이나 단기 교육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앵커:
자, 그렇다면 북한으로서는 왜 김 씨의 이런 업적과 경력 만들기가 필요한가요?
허형석: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작년 8월 뇌혈관계 질환이 일어나는 바람에 장기간 병상에 있었습니다. 김 위원장은 통치 기간 중의 권력 누수를 우려하고 권력 세습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어 후계자 문제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김 위원장과 북한의 지도부는 와병 후 생각해 보니 사망 후의 대비가 없었고 그것이 체제 존속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김 위원장은 서둘러 후계자를 내정할 필요를 느꼈고 올해 1월 노동당 조직지도부 리제강 제1부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3남을 후계자로 내정했다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후 김정운 씨를 김 위원장의 후계자로 만드는 작업은 빠른 물살을 타고 있습니다. 한편 장남 김정남 씨는 중국의 마카오에서 주로 살며 일본에 가짜 여권을 갖고 들어갔다 망신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차남 김정철 씨는 체내 호르몬의 분비 이상으로 너무 여성스럽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김 위원장은 세 아들 중에서 정치적 야심이 있는 3남 김정운 씨를 후계자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3남이 아직 어리고 정치와 행정 또는 군사 분야의 경험이나 경력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여기에 걸맞는 경력과 업적이 있어야 했습니다. 북한 인민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김정운 씨를 잘 모릅니다. 북한 지도부는 인민이 김정운 씨의 통치 능력에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고 보고 있고 이런 생각을 털어내려고 김정운 씨의 경력과 업적 만들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중입니다.
앵커:
이 같은 업적과 경력 만들기가 북한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허형석: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례로 150일 전투는 북한 경제를 벼랑으로 몰고가는 조치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국 통일연구원의 박형중 박사는 이른바150일 전투의 실상을 북한 인민이 잘 알고 있으리라고 전제한 뒤 “이런 방식은 인민과 국가를 모두 가난하게 만드는 정책”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박 박사는 “인민과 국가가 모두 부자가 되는 방법은 개혁과 개방”이라며 “7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보다 못 살았던 베트남과 중국도 개혁과 개방을 통해 모두 부강해 졌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북한에서는 보안원들이 거리에서 사람을 보면 체포해 농촌과 공장으로 보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시다시피 북한에서는 인민이 장마당에서 장사를 하거나 개인 밭을 가져야 그나마 먹고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개인의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사람을 농촌이나 공장으로 보내는 데 대해 불만의 소리가 높다고 합니다.
앵커:
북한 당국이 앞서 말씀을 드린 대로 후계자 김정운 씨의 업적과 경력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는데 김 씨가 후계자로 내정됐다는 사실은 어디에서 감지할 수 있습니까?
허형석:
일본의 아사히(朝日)신문7월24일자는 김정운 씨를 칭송하는 노래인 ‘발걸음’이 현지 노동자들 사이에서 폭넓게 불리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가사는 “우리 김대장의 발걸음, 힘차게 한번 내딛으면 전국의 산하가 반기네”라고 김 대장을 칭송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일부 주민은 노래에 나오는 김 대장이 3남 김정운 씨를 의미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고도 이 신문은 전했습니다. 또 신의주에서는 가두 방송을 하는 차량을 통해 이 노래가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다고 중국과 북한을 오가는 무역상들은 전했습니다. 그런가하면 남한에서 나오는 북한 전문지 ‘데일리 NK’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평양에서 베이징으로 향하는 열차를 타는 승객에게 김정운 씨가 후계자로 나선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선전했다고 합니다. 지난 7월 20일 오전 9시 20분경 평양역 대합실에서 여성 선전원은 “김정운 대장이야 말로 강성대국을 이끌어 주실 청년 대장”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같이 후계자를 통보하는 작업은 북한 전역으로 차츰차츰 확산하고 있다고 대북 소식통들은 전합니다.
앵커:
김정일 위원장에게도 이와 같은 업적과 경력을 만드는 사례가 있었습니까?
허형석:
김정일 위원장도 1974년 후계자로 내정된 뒤 ‘70일 전투’를, 1980년에는 ‘100일 전투’를 벌였습니다. 북한은 당시에도 “경제가 도약했다”고 선전했습니다. 또 이보다 앞서 1968년에는 미국 정보함 푸에블로호의 납치, 1969년에는 미국 정찰기의 격추 사건이 있었습니다. 북한은 이런 사건을 모두 김정일 위원장이 승리로 이끌었다며 업적과 경력을 부풀리는 데 이용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김 위원장과 3남 김정운 씨 경우는 차이가 있습니다. 김 위원장의 경력과 업적 부풀리기는 비교적 장기간에 걸쳤습니다. 반면 김 씨의 경우 김 위원장의 건강 문제가 있어 이 작업이 아주 단기간에 걸칠 수밖에 없습니다.
앵커:
김 위원장의 3남 김정운 씨를 후계자로 만드는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허형석:
북한이 후계 문제를 아직 대외적으로 공식화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을 드린 바처럼 김 씨를 후계자로 만드는 작업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여러 사례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작업의 전면에는 국방위원회와 그의 후견인으로 나선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 겸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있습니다. 북한은 이런 작업을 가속화하기 위해 대대적인 인사 개편을 단행했고 4월에는 최고인민회의 제12기 1차 회의를 통해 헌법을 개정해 국방위원회의 권한을 대폭 강화한 바 있습니다. 국방위원회는 권한 강화와 함께 당과 군, 공안기구의 핵심 인물을 받아 들여 후계자를 만드는 작업에 더욱 박차를 가하려고 조직을 한층 강화했습니다.
앵커:
그렇다면 김정운 씨는 언제 후계자로 공식적으로 추대될 것으로 보입니까?
허형석:
2010년과 2012년이 유력하게 꼽힙니다. 일부 대북 관측통들은 김정운 씨의 공식 등장을 2010년으로 예상합니다. 북한에서 꺾이는 해인 1970년에 제5차 당대회, 1980년에 제6차 당대회가 열렸다는 점을 그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이후 당대회가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이 꺾이는 2010년에 당대회를 열고 김정운 씨를 공식 후계자로 추대할 것으로 이들은 전망합니다. 이런 예상과 함께 이른바 강성대국의 문을 여는 2012년에 김 씨가 후계자로 등극한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2012년은 김일성 주석이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고 김 위원장은 70세를 맞는 해입니다. 따라서 2012년도 나름대로 상당한 설득력이 있습니다.
앵커:
대북 전문가들은 앞으로 들어설 김정운 체제를 어떻게 전망합니까?
허형석:
김 위원장이 비교적 오래 생존하면서 그의 뒤를 봐줄 경우 김정운 체제가 안착할 수는 있다고 전망합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갑자기 유고 사태를 맞으면 후계자를 선정한 작업이 졸속인 데다 김 씨가 카리스마(강한 마력이나 능력)나 국가를 통치한 경험이 없어 나이가 어린 그의 체제가 유지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남한의 국가정보원은 최근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서 “권력이 김 씨에게 승계되고 유고 상황이 발생할 경우 현재 2인자로 통하는 장성택 국방위원 주도의 권력 투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내다봤습니다. 반면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빠른 시일 내에 사망하더라도 북한의 기득권 세력이 김 씨를 중심으로 오히려 뭉칠 가능성도 있어 권력 투쟁이나 체제 붕괴와 같은 혼란은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전망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장성택 부장이 김 씨를 잘 돕는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이와 함께 군부를 중심으로 하는 집단지도 체제가 들어선다는 전망을 내놓은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김정운 씨가 권력 기반과 통치 경험이 거의 없다는 점을 이유로 내놓고 있습니다. 집단지도 체제는 위에 나온 두 가지 가설을 묶었다고 볼 수 있지요.
앵커:
이외의 다른 전망도 있습니까?
허형석:
다른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에 김정운 체제나 집단지도 체제가 들어서도 이런 체제 자체가 이전의 체제처럼 다시 많은 문제를 안고 갈 경우 장기적으로 존속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북한 당국이 자체적으로 안고 있는 많은 문제를, 인민이 외부 세계를 통해서 알지 못하도록 현재까지는 필사적으로 막아 왔지만 언제까지나 이렇게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견해를 나타냈습니다. 이는 김정일 체제 이후 들어서는 체제가 개혁과 개방 정책을 채택하지 않고 같은 폐쇄 정책을 고수할 경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앵커:
네, 지금까지 북한 당국이 올해 1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내정됐다고 알려진 3남 김정운 씨의 업적과 경력 만들기에 열중하는 배경과 현황, 그리고 이에 관한 전망 등을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