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양성원 yangs@rfa.org
12박 13일 동안의 미국 방문을 마치고 28일 남한으로 돌아간 남한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번 미국 방문 기간 중 여러 차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통일 후에도 미군의 한반도 주둔에 적극 동조했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김정일 위원장이 염두에 두고 있는 미군의 성격은 주둔군의 지위가 아니라 미국이 북한과 관계를 개선한 이후 중립적인 성격의 미군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왔습니다.

지난 25일 뉴욕을 방문했던 남한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코리아소사이어티 주최 행사 연설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난 2000년 자신과 만나 한반도에 주둔해 있는 미군이 현재는 물론 통일 후에도 한반도에 있어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에 적극 동조했다고 거듭 말했습니다. 앞서 워싱턴 내셔날 프레스클럽 연설에서도 김 전 대통령은 북한의 대미관계 정상화 의지를 강조하면서 같은 언급을 했습니다.
김대중: (When I met North Korean leader Kim Jong-il in Pyongyang, he earnestly desired to normalize relations with the US. He even said that 'US forces should remain on the Korean Peninsula even after unification...)
"제가 평양에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을 때 그는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열망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미군이 통일 이후까지도 한반도에 주둔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북한이 안전을 보장받고, 파탄 난 경제를 구하는 길은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말하는 김 위원장의 미군주둔 찬성 발언 속에서의 미군은 현재 주둔군으로의 성격을 그대로 유지한 미군이 아니라 북한과 관계를 크게 개선한 미국의 중립적인 성격의 미군이라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미국 민간연구기관인 뉴욕 사회과학원(SSRC)의 레온 시갈 박사의 말입니다.
Leon Sigal: (I think fundamental issue is getting, what they called, end of American hostile policy, change the relationships...)
"북한에게 있어 근본적인 문제는 미국의 대북적대시 정책을 끝내고 양국 관계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런 변화가 있은 후에야 북한은 미군의 한반도 주둔에 찬성한다는 것입니다."
시갈 박사는 지난 92년 1월 북한의 김용순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가 뉴욕을 방문해 아놀드 캔터(Arnold Kanter) 당시 미 국무부 차관을 만나 사상 최초의 북미 고위급을 회담을 하면서도 미군의 한반도 주둔을 용인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면서 북한의 이러한 입장은 지난 십여 년간 계속 지속돼 온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남한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지난 3월 한 남한 언론에 92년 당시 김용순 비서가 캔터 차관에게 미군의 한반도 주둔을 용인하는 조건에서 북미수교를 요청하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시갈 박사는 북한이 지난 90년대 초반부터 주한미군을 용인하면서까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원한 이유는 구 소련이 무너진 상황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합니다. 북한은 구 소련과 중국 두 나라 모두 신뢰하지 못했는데 구 소련이 무너지자 중국을 견제할 나라로 미국과 남한, 일본을 찾게 됐다는 것입니다.
Leon Sigal: (With the collapse of the Soviet Union, they looked for others to hedge against China and that's why they reached out the US, Japan and S. Korea.)
하지만 미국과 관계 정상화가 되지 않은 현 시점에서 북한은 여전히 주한미군 철수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 재단 연구원의 말입니다.
Bruce Klingner: (Since then the North Korean government has repeatedly, officially called for an end to the US-S. Korea alliance and remove of all US forces from the Peninsula...)
"지난 2000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한반도 미군 주둔 찬성 발언 이후에도 북한 당국은 거듭 공식적으로 한미군사동맹을 철폐하고 한반도에서 미군이 완전히 철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제1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발언은 그 후 북한 당국의 이러한 발언이 계속되고 있다는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김정일 위원장의 한반도 미군주둔 찬성 발언은 현재 상황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미군의 역할이 중립적인 동북아의 균형자로 바뀐다는 것을 전제로 나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