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 12년형] 형법상 최대 형량 선고

북한이 억류 중인 미국인 여기자들에 대해 불법 입국과 적대 행위의 혐의로 12년의 노동 교화형을 선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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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 기자가 전합니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8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재판소는 미국인 기자 유나 리와 로라 링에 대한 재판을 4일부터 8일까지 사이에 진행하였다"며 "재판에서는 이미 기소된 조선 민족 적대죄와 비법 국경 출입죄에 대한 유죄를 확정하고 유나 리와 로라 링에게 각각 12년의 노동 교화형을 언도하였다"고 보도했습니다.

북한이 미국인 여기자 두 명에게 선고한 12년의 노동 교화형은 중범죄에 적용하는 '조선 민족 적대죄'에 의거해 10년 이상의 노동 교화형을 정한 뒤 여기에 '비법 국경 출입죄'에 해당하는 2-3년 이하의 형량을 합산해 선고했다는 분석입니다.

북한 형법상 '조선 민족 적대죄'는 형의 경중에 따라 최고 10년 이상의 노동 교화형을, 그리고 '비법 국경 출입죄'는 3년 이하의 노동 교화형에 처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형법은 특히 한 사람이 여러 죄를 저지른 '병합범'에 대해서는 "매 범죄별로 형벌을 정한 다음에 제일 높은 형벌에 나머지 조항의 형벌을 절반 정도 합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북한이 여기자 두명에게 선고한 12년의 노동 교화형은 북한의 형법에 규정한 내용을 근거로 북한이 선고할 수 있는 최대 형량이라는 분석입니다.

북한의 재판은 통상 2심으로 끝나며 1심에 불복할 경우 항소할 수 있지만 북한의 최고 법원인 중앙재판소가 1심을 선고하면 단심으로 확정됩니다. 따라서 북한은 미국 여기자들에 대한 사법절차를 이번 재판으로 마무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사법당국은 독립성이 보장돼 있지 않기 때문에 여기자 두 명에 대한 이번 판결은 북한 당국의 일방적인 판단에 따른 결정이라는 지적입니다. 프랑스에 기반을 둔 국제 언론단체인 '국경없는 기자회'의 빈센트 브로셀(Vincent Brossel) 아시아 태평양 지역 담당자는 비공개로 불투명하게 진행한 이번 재판은 부당하다고 지적합니다.

Vincent Brossel: (The trial happened without any transparency, different lawyers, media, diplomats, and without a lot of accountabilities.) 이번 재판은 투명한 조사도 없었고 다른 변호사의 선임도 없었으며, 언론에 공개하지도 또 대사관 관계자들의 참관도 없이 진행하는 등 공정성이 결여된 재판입니다.

국제 인권 단체인 앰네스티 인터내셔널(AI)도 8일 언론 발표문을 내고 미국인 여기자 두 명에게 12년의 노동 교화형을 선고한 북한의 결정을 비난하고 즉각 석방을 촉구했습니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의 로즈언 라이프 아시아 태평양 지역 부국장은 북한의 재판과 형사 체계가 정의보다 억압을 위한 도구라면서 적법한 절차나 투명성이 없는 북한의 재판 체계의 결점으로 두 기자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북한은 재판을 진행하는 기간 북한과 외교 관계가 없는 미국을 대신해 여기자 두 명을 접촉해 온 스웨덴 대사관 관계자를 포함해 재판의 진행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어떤 사람도 재판장 입회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또 재판 과정에서 변호인의 변론이 있었는지, 변론이 있었다면 어떤 내용이었는지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국적을 가진 한국계 유나 리와 중국계 로라 링 기자는 3월 17일 북한과 중국과의 접경 지역에서 탈북자 문제를 취재하다가 북한 군인들에게 붙잡혀 억류됐습니다. 북한은 3월 말 두 여기자에 대해 중간 조사한 결과 불법 입국과 적대 행위의 혐의가 확정됐다고 발표했습니다. 북한은 이어 6월 4일 미국인 여기자 두 명에 대한 재판을 열겠다고 재판 일정을 공개한 바 있습니다.

한편, 과거 북한이 미국인들을 억류한 경우는 여러번 있었지만 북한에서 재판을 받고 형을 받은 경우는 이번 여기자 두 명이 처음입니다.

1994년 12월 17일 주한 미군에 소속한 헬기 조종사인 보비 홀(Bobby Hall) 준위가 강원도 휴전선 상공을 순찰하던 중 헬기가 피격되면서 북한에 억류됐습니다. 당시 빌 리처드슨 미국 하원의원이 방북해 북한과 협상을 벌였고 홀 준위는 억류 13일만에 판문점을 통해 무사히 풀려났습니다. 1996년 8월 26일 압록강을 건너 북한에 들어갔던 한국계 미국인 에번 헌지커(Evan Hunziker)도 간첩 혐의로 억류됐지만 재판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이 때도 빌 리처드슨 하원의원이 대북 특사로 방북해 헌지커를 데리고 왔습니다. 당시 북한은 헌지커의 간첩 혐의에 대한 형사상 벌금으로10만 달러를 요구했지만 미국은 헌지커의 호텔 비용인 5,000달러만 지불하는 데 합의했다고 알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