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에서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비중으로 보아 이번 회동이 경색 국면의 북미 관계에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합니다. 그러나 다른 일각에서는 적대적인 북미 관계의 관점에서 이는 일종의 깜짝 쇼에 불과하다는 평가도 내놓고 있습니다. 이에 관한 자세한 소식을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앵커: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회동 결과는 어떻게 나왔는지요?
허형석:
북한은 관영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두 사람의 회동 결과를 보도했습니다. 한편 미국은 백악관과 국무부 대변인 발표,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과 관련한 행정부 고위 관리의 설명 등만 내놓고 있습니다. 북한은 클린턴 전 대통령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특사로 보고 있는 반면 미국은 그를 비중 있는 민간인 신분으로 북한에 억류된 여기자 두 명을 데리고 오는 역할을 한 사람 이외에는 다른 의미를 두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회동 결과에 관해 양측의 공통점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일단은 북한 측의 발표문을 통해 행간을 읽어 가면서 회동 결과를 추측해 볼 수밖에 없습니다.
앵커:
그러면 북한 측은 이번 회동 결과를 어떻게 보도했나요?
허형석:
조선중앙통신이 전하는 바를 보면 클린턴 전 대통령은 미국 기자 두 명이 반공화국 적대적 행위를 한 데 대해 심심한 사과의 뜻을 전달했습니다. 또 김정일 위원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클린턴 전 대통령과 한 일련의 회동에서 조미 사이의 현안이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허심탄회하고 깊이 있게 논의됐으며 대화의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나갈 데 대한 견해 일치가 이룩되었다고 이 통신은 전했습니다. 이밖에도 클린턴 전 대통령은 두 나라 사이의 관계 개선 방도와 관련한 견해를 담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를 정중히 전달했고 이 통신은 덧붙였습니다. 이 중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조미 사이의 현안 논의> <대화 해결에 관한 견해 일치>와 <미국 측의 사과 표명> <오바마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 전달> 등입니다. 이런 부분은 북한 측이 특히 강조하고 싶었던 사항입니다.
앵커:
그런데 미국 측이 이에 관해 반박하는 견해를 자꾸 내놓고 있습니다. 벌써 회동 결과에 관한 진위 공방이 벌어지고 있나요?
허형석:
미국의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4일 오바마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와 관련해 “클린턴 전 대통령이 서면이든 구두든 오바마 대통령의 메시지를 소지하지 않았다”고 북한 측 발표를 반박했습니다. 이어 같은 날 이름을 밝히지 않은 미국의 고위 관리는 클린턴 전 대통령이 미국 여기자와 관련해 북한에 사과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으로 미국 통신사 AP와 프랑스 통신사 AFP가 전했습니다. 이 관리는 북한이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임무에 여기자 석방과 무관한 북핵 문제와 관한 논의를 붙이지 않기로 사전에 동의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같은 발언은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평양 회동에 관한 양국의 현격한 시각차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일단은 이와 같은 미국과 북한의 견해차가 같은 침대에서 다른 꿈을 꾼다는 동상이몽(同床異夢)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앵커:
자, 그렇다고 해도 이번 회동이 일어날 수 있었던 접점은 있었던 것 아닙니까?
허형석:
우선 북한은 대내외 사정이 아주 어렵습니다. 김일성 주석 출생 100주년과 김 위원장 출생 70주년을 맞는 2012년을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로 정한 바 있습니다. 김 위원장의 3남 김정운 씨를 후계자로 하는 작업을 진행하고도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은 미국에서 오바마 신행정부가 출범한 뒤 장거리 로켓 발사, 제2차 핵실험, 단거리 미사일 발사 등을 통해 오바마 행정부를 자극했습니다. 그런데 오바마 행정부가 예상 외로 강경한 대북 정책을 고수하는 국면을 맞았습니다. 그래서 양국은 심한 경색 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북한에는 큰 부담이 됐습니다. 북한은 다시 국제 사회를 자극할 카드도 없어지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로 형성된 불리한 대결 국면을 맞아 이를 화해 국면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런 필요에서 내놓은 카드가 미국 여기자의 석방입니다. 한편 미국은 자국민이 북한에 억류된 사실에 상당한 부담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북한 당국에 억류되기 시작한 뒤부터 지금까지 수 개월 동안 비공개 접촉을 해 왔습니다. 더구나 자국민의 보호를 제일로 내세우는 미국한테 자국민이 열악한 환경에서 고생한다는 점은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럴 때 북한이 내민 카드를 미국은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앵커:
미국과 북한이 클린턴 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회동을 통해 노린 바는 무엇입니까?
허형석:
대다수 전문가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이 미국 행정부 관계자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여기자 석방 외에 다른 임무도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북한도 석방하는 여기자만을 단순히 데려가는 사람으로 그를 부르지는 않았다고 보입니다. 북한은 이번 회동을 통해서 한국과 미국이 내놓은 포괄적 패키지(포괄적 타결안)의 내용을 알아보려고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 북한이 어렵게 잡은 기회를 이용해 북핵 문제를 포함해 주요 핵심 현안에 대해 미국 측에 중대한 제안을 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반면 미국 오바마 행정부도 부담을 느끼지 않으려고 민간인 신분으로 내세운 클린턴 전 대통령을 통해 북핵 문제, 더 나아가 평화 체제를 비롯한 한반도 문제를 더 포괄적으로, 더 전향적으로 해결해 보겠다는 의사를 전달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관한 북한 측의 견해를 들으려고 했다고 보입니다. 북한 측이 말하는 <조미 사이의 현안을 깊이 논의>와 같은 대목을 보면 이런 추측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앵커:
그렇다면 이번 회동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습니까?
허형석:
일각에서는 앞서 설명을 드린 바처럼 미국과 북한이 전반적인 변화의 출발점에 섰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전직 미국 대통령이 15년만에 김정일 위원장을 면담함으로써 양국은 관계 개선의 전기를 찾았다는 설명입니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미국이 이런 거물급 인사를 파견하고 단순히 여기자 석방만을 논의했을 리는 만무합니다. 반면 다른 일각에서는 이번 회동은 앞서 말한 양국의 필요성 때문에 이루어졌다며 양국 사이에 신뢰 관계가 없는 점을 감안하면 이것이 양국 관계의 개선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전망을 내놓습니다. 이는 두 사람의 회동을 두 나라의 필요에 따라 일어났던 일회성 행사로 보는 측면이 강합니다.
앵커:
네, 지금까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회동에 관해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