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창섭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측은 지난주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와의 협상에서 영변 핵시설 검증안에 핵폐기물 시설의 포함 문제를 미국과의 군사회담을 통해 논의하자는 제의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미국 국무부 고위 관리는 8일 북미 군사회담에 관한 질문에 "현재로선 아무것도 말해줄 게 없다"고만 말했습니다. 이 관리는 그러나 라이스 장관이 7일 부시 대통령을 만나 힐 차관보의 방북 결과에 대해 설명했고, "분위기도 좋았다"고 밝혔습니다. 이 관리는 또 "라이스 장관이 행정부내 고위 관리들과 잇따른 협의를 가졌고, 현재도 평가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라이스 국무장관은 8일 기자들에게 힐 차관보의 협상 결과물과 관련해 "문제는 검증의정서는 우리의 기준에 맞느냐 여부"라고 말하면서도 "현재 계속 작업중이다" (We are continuing to work on it)라고 밝혀서 모종의 대응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미국이 마련중인 대응책이 무엇인지는 즉각 알려지지 않았지만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영변 핵폐기물 시설과 북미 군사회담을 연계하려는 북측의 요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현재 영변 핵단지 내에 3개의 핵폐기물 시설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고, 그중에서도 미국 중앙정보국이 '500호 건물' (Building 500)이라고 명명한 핵폐기물 시설을 가장 주목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북한이 1990년부터 문제의 핵폐기물 시설을 운영해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고, 북한이 신고한 플루토늄양의 정확한 검증을 위해서 이곳에 대한 접근과 시료 채취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 1993년 국제원자력기구가 이곳에 대한 사찰을 요구하자 '군사 시설'이라며 접근을 거부했고, 이 때문에 핵위기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의 리찬복 상장은 지난주 평양을 방문한 힐 차관보에게 해당 시설이 '군사 시설'이라는 똑같은 주장을 펼쳤고, 이 문제 논의를 위해 북미 군사회담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웠던 것으로 외교 소식통들은 전하고 있습니다.
미북 핵협상에 정통한 미국의 외교 전문가는 "부시 행정부가 엄청난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핵폐기물 시설을 군사회담과 연계하려는 북측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줄 가능성은 없다"고 지적하고 "그러나 북한이 핵폐기물 시설에 대한 접근과 무제한적인 시료 채취를 허용한다는 전제 조건하에 부시 행정부도 군사회담을 수락할 가능성은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 외교 전문가는 부시 행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또다른 절충안으로 "미국이 비핵화 2단계가 완료되는 즉시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를 군사회담을 시작할 준비가 있다며 북한에 대해서 핵폐기물 시설 접근과 시료채취를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워싱턴의 또다른 외교 전문가는 지난 2003년 이후 6자회담이던 미북 양자회담이던 북한 군부 장성이 핵문제와 관련해 힐 차관보를 공식으로 처음 만난 것은 "상당히 의미있는 일"이라고 지적하고 "향후 핵협상에서 북한 군부가 자기 입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겠다는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고 풀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