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 배치 제대군인 도주 잇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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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굴지의 구리 생산기지인 양강도 혜산청년광산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특별히 보내준 제대군인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생활고에 지친 제대군인들이 도주자, 약탈자로 변해 광산의 큰 우환거리가 되고 있다고 현지 소식통들이 전해왔습니다.

서울에서 문성휘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지난 8월 11일 오후 2시 북한 양강도 혜산시 공설운동장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보내준 제대군인들을 환영하는 모임이 크게 열린 바 있습니다.

이날 특별열차편으로 양강도 혜산시에 도착한 제대군인들은 모두 450명으로 이중 150명은 혜산청년광산에 배치될 인원이었고 나머지 300명은 1만정보 감자농장으로 알려진 백암군 10월 5일 종합농장에 배치될 제대군인들이었습니다.

당초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난 2009년 5월 22일, 양강도 삼지연군을 방문한 자리에서 김히택 양강도당 책임비서에게 혜산청년광산 일꾼들의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대군인 300명을 보내주고 백암군 10월 5일 종합농장의 노력보충을 위해 제대군인 1천명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했었습니다.

하지만 당장 2009년 가을까지 보내주겠다던 약속은 1년을 훨씬 넘겼고 1,300명을 보내주겠다고 장담한 약속도 450명으로 축소돼 현실을 무시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즉흥적인 약속으로 인해 북한 군부가 얼마나 고민이 많았겠는 지를 스스로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그나마 어렵게 보내준 제대군인들이 현지 적응에 실패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최근 연락이 닿은 양강도 소식통은 "혜산청년광산에 배치된 제대군인 노동자들이 광산설비와 동 정광을 훔쳐내다 팔아먹는가 하면 집을 버리고 도망친 사람들이 많아 야단"이라며 "광산노동자들이 없는 것만도 못한 괴물 짝들이라는 비난이 높다"고 전해왔습니다.

소식통은 혜산청년광산에 배치된 제대군인 150명 중에 정상적으로 출근하는 인원은 50명이 될까 말까 라며 최근에는 "도주한 제대군인들을 무조건 찾아내 현장에 안착시키라"는 중앙의 지시가 내려와 그러지 않아도 일손이 부족한 광산에 비상이 걸렸다고 설명했습니다.

그 동안 광산 초급당위원회에서 제대군인들에게 특별히 배급도 주고 월급까지 꼬박이 챙겨주었지만 배급과 월급만 가지고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북한의 현실이 제대군인들을 탈망살이(자포자기)에 빠지게 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와 관련 혜산청년광산 주변에 살고 있다는 한 주민은 "군대에 나가 10년 동안 고생한 것만 해도 분해죽겠다는데 제대되어 광산에 배치된다는 게 말이나 되냐?"며 "나 같아도 억울해서 일을 못 하겠다"고 제대군인들의 심정을 대변했습니다.

그는 광산노동자라는 것 때문에 처녀들이 그들을 등지고 있다며 결혼한 제대군인들은 몇 명 안 되는데 시집왔던 여성들도 생활고에 견디다 못해 야반도주 해버려 제대군인들의 삶이 망가지고 있다고 동정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겨울을 앞두고 땔감을 보장받지 못하는 제대군인들이 스스로 집을 포기하고 살길을 찾아 부모나 형제들이 있는 고향으로 떠나면서 광산에 빈 집들이 속출하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혜산청년광산뿐만 아니라 백암군 10월 5일 종합농장을 비롯해 제대군인들이 배치된 대부분의 협동농장과 공장 기업소들이 함께 겪는 고민이라며 "단순히 최고 지도부 명령 하나만으로 무조건 복종하던 시대는 끝장났다"고 소식통들은 강조했습니다.

기초적인 생활조건도 보장받지 못하는 제대군인들이 현지에 적응하지 못한 채 애물단지로 전락하면서 노동력 수효(수요)의 대부분을 제대군인들로 메워야 하는 북한 당국의 고민은 날로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