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미국 뉴욕의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외교관들이 최근 이례적으로 김일성·김정일 배지를 착용하지 않은 채 공식 석상에 나타나 눈길을 끕니다.
뉴욕에서 정보라 기자의 보도입니다.
유엔주재 북한대표부가 지난 17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전세계 출신 유엔 출입 기자들을 대상으로 연 기자회견에서 이례적인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행사를 주최한 북한대표부 김인룡 차석대사가 김일성·김정일 부자 배지를 달지 않고 나온 것입니다.
김 차석대사와 동석한 조정철 1등서기관 역시 가슴에 배지가 없었습니다.
유엔의 한 소식통은 27일 "자성남 대사를 포함한 유엔 북한대표부 직원들은 각종 공식, 비공식 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김씨 부자 배지를 늘 착용해왔다"며 "특히 김인룡 차석대사의 경우 지난해 부임 후 지금까지 총 4차례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지난 3번 모두 배지를 달다가 최근 행사에서 배지를 달지 않은 것이 이례적이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말했습니다.
오랫동안 유엔 북한대표부와 관련 사안을 취재해 온 유엔 출입 기자단 소속의 한 기자는 "세계 각국에 뉴스를 전달하는 유엔 출입 기자단을 대상으로 한 공식 행사에서 북한 외교관들이 배지를 달지 않은 배경에 의문이 생긴다"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그는 "만약 한 명만 달지 않았다면 개인적 실수로 볼 수 있겠지만, 두 사람 모두 달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북한 외교관의 배지 착용은 대내적으로는 이른바 '수령'에 대한 충성의 의미를 내포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졌습니다.
대외적으로 이 배지는 새로 부임한 유엔 출입 기자단이 유엔을 방문하는 북한 대표부 직원들을 알아보는 척도로 여겨질 정도로 북한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일종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북한대표부 직원들의 배지 미착용 모습은 빈번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탈북자 출신으로 뉴욕에서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는 미주국제탈북민연대 마영애 대표는 "10여 년 넘게 북한대표부 앞에서 북한 정권의 인권 유린 규탄이나 핵, 미사일 포기 등 시위를 진행해 오면서 대표부 직원들을 자주 봤지만 배지 안 다는 이들이 허다하다"며 "과거 한성렬 차석대사와 신선호 대사, 현재의 자 대사도 달지 않고 돌아다니니 그 밑에 외교관이야 말하면 뭐하겠냐"고 말했습니다.

마 대표는 “일부러 배지를 양복 안쪽에 달아서 자신이 북한인임을 드러내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한국 국책연구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김광진 연구위원도 "북 관리들이 배지를 잘 달지 않은 것은 15-20년 전부터 그랬다"고 말했습니다.
김 연구위원은 "특별히 북한인임을 숨길 필요가 있을 때는 배지를 달지 않지만, 공식 외교 행사나 대사관에 모여 정치생활총화, 학습할 때는 꼭 달아야 한다"며 "최근 유엔 공식 석상에서 배지를 달지 않고 나타난 것이 좀 특이하지만 이 문제에서 실수할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허용되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북한 관리들의 배지 미착용이 허용되었을 가능성에 대해 탈북자 출신으로 한국의 동아일보에서 활동하는 주성하 기자도 "김정은이나 리설주도 배지를 달고 나오지 않을 때가 많은 것으로 봐서 내부적으로 초상화 같은 것으로 우상화 하지 말라는 방침이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습니다.
뉴욕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정보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