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한반도의 최대 민속명절인 음력설 연휴가 끝났습니다. 설 연휴 기간 남한에서는 고향을 오가는 사람들로 기차역과 고속버스터미널이 몹시 붐볐습니다.
이런 가운데 북녘 땅 고향을 둔 실향민들은 지난 23일 설날 아침에 경기도 파주 임진각에 모여 합동 차례를 지내며 망향의 한을 달랬습니다.
황은희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금부터 이북도민께 드리는 제28회 망향 경모제를 시작하겠습니다."
설날 아침 파주시 임진각.
북녘 땅이 바라다 보이는 임진각은 분단의 한이 서려 있는 곳입니다. 임진각에서 강 건너 북한 땅까지는 3km밖에 되지 않습니다. 해마다 설날 아침만 되면 실향민들이 이곳 임진각 망배단에 모여 합동 차례를 지냅니다.
오전 11시 30분 군악대의 연주로 설날 합동 차례의 시작을 알립니다. 정성스럽게 차려진 차례상에 조상님께 술을 올리고 공손히 큰절도 올립니다. 통일경모회 남궁 산 회장입니다.
남궁 산
: 고향에 물론 못 가니까 여기에 나온 겁니다. 우리가 지금 60여 년을 가족들의 생사도 주소도 아무것도 모르고 지내잖아요. 그 불효의 일부분이라도 덜기 위해서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다른 도리가 없어서 안타까운 따름입니다.
추운 날씨 속에 참석자들은 손을 호호 불어가며 국화꽃을 들고 순서를 기다립니다. 차례를 마친 실향민들은 임진각 주변을 둘러봅니다.
망배단 뒤쪽에는 ‘자유의 다리’가 있습니다.
‘자유의 다리’는 자유를 찾아 귀환한 다리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돌아가는 길이 아쉬운 듯 참석자들은 ‘자유의 다리’에 들러 북녘 고향 땅을 한 번 더 바라봅니다.
60여 년 전 부모님과 형제를 북쪽에 두고 홀로 남쪽에 내려온 김춘삼 할아버지.
황해도 재령이 고향인 김춘삼 할아버지는 가족이 보고 싶을 때면 이곳 자유의 다리에 와서 하모니카를 불곤 했다고 말합니다.
김춘삼
: 휴전되고서 이 다리를 넘어왔는데 북, 남문이 있어요. 남으로 가고 싶은 사람은 남으로 가고 북으로 가고 싶은 사람은 북으로 가고 그 때 나는 남한으로 왔어요. 그래서 제일 기억이 남는 것이 이 다리입니다. 60년이 넘었는데도 통일이 안 돼요. 매번 여기 오면 눈물이 나요. 그래서 이렇게 하모니카를 부릅니다.
자유의 다리 양쪽 끝 철조망에는 통일을 염원하는 편지들이 형형색색 매달려 있습니다.
실향민들도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가져온 원주필(볼펜)로 색 편지지에 글을 써 내려갑니다. 실향민 2세 김지산 씨입니다.
김지산
: 부모님께서 실향민이시니까 항상 마음 한쪽은 비어 있는 그런 기분이 듭니다. 가슴이 아프죠. 북한도 주민을 잘 살게 하면 통일이 좀 더 일찍 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한반도가 전 세계에 내로라하는 국가가 되지 않을까 그런 내용을 적고 싶어요.
해마다 명절 때 임진각을 찾아 망향의 한을 달래는 이북 실향민들.
내년 설에는 남과 북의 이산가족들이 두 손에 선물 보따리를 들고 설레는 마음으로 고향 땅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경기도 파주 임진각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황은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