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 당국이 외화벌이를 위해 전 세계 곳곳으로 주민들을 내보내고 있습니다. 북한 해외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이 마련한 '2016 연중 기획보도' 북한 해외노동자 시리즈. 오늘은 그 다섯 번째 순서로, 해외 북한식당의 운영 상황을 알아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기자가 직접 캄보디아를 방문해 현지 북한 식당들을 취재했습니다. 보도에 노재완 기자입니다.
캄보디아에는 세계적인 문화유적인 앙코르와트가 있어 일 년 내내 관광객들로 붐빕니다. 그래서 앙코르와트가 있는 씨엠립시에는 무수히 많은 식당이 있습니다. 이 중에는 북한이 운영하는 식당도 있는데요. 공항에서 가까운 곳에 평양냉면관과 평양친선관이 있습니다. 씨엠립 한인회 장원표 사무국장의 말입니다.
기자: 평양냉면관에는 모두 몇 명이 근무하고 있습니까?
장원표 사무국장: 현재 제가 파악한 것은 23명입니다. 그리고 평양친선관은 26명이 근무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자: 이 사람들의 일과는 알고 계십니까?
장원표 사무국장: 일과는 아는 게 없고요. 밖으로 나와 활동하는 것을 보면 예를 들어 아플 때 병원에 가는 것을 보면 보통 3~5명이 감시하에 이동하더라고요.
식당마다 운영 주체는 다르지만 운영 방식은 거의 같습니다. 다른 해외 북한식당이 그런 것처럼 냉면을 비롯한 다양한 북한 음식을 팔면서 저녁 시간에는 무대에서 춤과 노래 등 공연이 펼쳐지는데요. 한국인 여행자가 북한 식당을 찾는 이유는 무엇보다 호기심 때문입니다. 기왕이면 동포 음식 팔아주자는 마음도 있습니다.
강성진(한국 교민, 가명): 한국 관광객들 입장에선 북한 식당이 신기하죠. 공연 끝나고 방에서 술을 마실 때는 가야금과 기타도 쳐주고, 또 노래도 불러주니까 그 맛에 찾는 거죠.
그러나 지난 3월 초 유엔에서 대북제재가 발표된 뒤 북한 식당들도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식당을 찾는 손님이 크게 줄었기 때문인데요. 특히 한국 정부의 방침에 협조하고자 캄보디아 교민 사회와 여행 업계는 북한 식당의 이용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습니다.
강성진: "손님들이 북한 식당에 갈 수 있어요?"라고 해도 가이드들은 안 된다고 하죠. 정부의 지시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해 드립니다. 손님들도 이해하죠. 북한에서 핵실험을 계속하고, 또 이번에 5차 핵실험까지 한다고 하니까 당연히 북한을 싫어하는 거고요.
한국 교포들의 모임인 씨엠립 한인회의 경우 지난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북한 식당을 이용하지 말자는 취지에서 포스터를 만들어 현지 한인 식품점과 식당마다 붙였습니다.

장원표 씨엠립 한인회 사무국장: 얼마 전 저희 한인회는 지금 보시는 포스터를 제작했습니다. 4차 핵실험을 규탄하는 포스터를 만들어 홍보하고 있고요. 여행사 하나투어라든지 모두투어 등에도 공문이 하달됐는데 관광 코스에서 북한 식당을 제외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시엠립을 찾은 지난 4월 22일에도 북한 식당을 출입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날 점심시간을 이용해 북한 식당 평양친선관을 들어가 봤습니다. 영업 중인데도 식당 안은 매우 어두웠습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요. 안으로 들어서자 그때서야 불이 켜졌습니다. 한쪽에서 식당 접대원 2~3명이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요. 이들은 약간 놀란 표정으로 응시했습니다. 밖에 온도가 섭씨 40도 가까이 오르는 무더운 날씨였지만 식당 안은 벽걸이 선풍기가 돌아가는 소리만 들릴 뿐입니다. 손님이 없는 탓에 전기를 아끼려고 냉방장치와 식당 불을 켜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잠시 후 한 여성 접대원이 다가와 "어서 오세요"라며 더우니까 방으로 모신다며 가까운 방으로 안내했습니다. 계속 덥다고 하자 곧바로 방에 설치된 냉방장치를 틀었습니다. 냉면 먹으러 왔다고 하니까 여성 접대원은 메뉴판을 보여주며 꿀떡도 함께 권했습니다. 주문한 음식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시간이 걸려 나왔습니다. 음식을 내려 놓을 때 식당에서 몇 명이 일하느냐고 묻자 시중을 들던 접대원은 "그건 왜 묻냐"고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강성진: 지금 여기에는 몇 명이 일하니?
식당 종업원: 그게 중요합니까?
강성진: 종업원들이 없어서 다들 갔나 해서..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위생실(화장실)을 가기 위해 잠시 방을 나왔습니다. 식당에는 여전히 손님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식당 종업원: 점심값은 17불입니다.
강성진: 영수증 줘야지?
식당 종업원: 영수증 있어야 합니까?
기자: 네.
강성진: 이것도 싸줘야지.
식당 종업원: 그거 포장했습니다.
기자: 잘 먹었습니다.
식당 종업원: 안녕히 가십시오.
식당 주변에서 1시간가량 식당 출입문을 계속 관찰했습니다. 역시 들어가는 손님은 없었습니다. 그 시각 바로 옆 한국 식당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가득해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평양친선관에서 200여 미터 떨어진 곳에는 평양냉면관이 있었는데요. 저녁 7시 무렵 평양냉면관으로 이동했습니다.

평양냉면관은 전 세계 북한 식당 가운데 가장 큰 식당으로 알려졌습니다. 듣던 대로 식당은 무척 넓었습니다. 하지만 손님 없는 것은 이곳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짙은 파란색 원피스를 입은 접대원 3명이 돌아가면서 시중을 들었습니다. 손전화로 나온 음식을 찍으려고 했지만, "사진은 안 된다"며 예민하게 반응했습니다.
식당 종업원: 사진 찍으시면 안 됩니다.
강성진: 음식 사진 찍는 것도 안된다는 말이야?
기자: 괜찮아요. 안 찍을게요.
기본적으로 식당에서 일하는 북한 접대원들은 3년 주기로 교체됩니다. 해외에 오래 있으면서 그것도 남한 사람을 자주 만나기 때문에 사상적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이유입니다. 실제로 지난 2014년 캄보디아에서 탈출한 식당 접대원이 있습니다. 그는 현지 남한 사람의 도움으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고 강 씨는 말했습니다.
강성진: 자신의 의지로 탈출한 건데요. 누군가의 도움으로 태국까지 가고 거기서 한국대사관의 도움으로 한국으로 가게 된 거죠. 그 친구는 북한에서 고위 간부의 자녀였는데 모든 걸 버리고 자유를 찾아 한국으로 간 겁니다.
다른 북한 식당과 마찬가지로 씨엠립 북한 식당도 여성 접대원들이 자유가 거의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게 대북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숙소조차 식당 안에 있어 외부 출입이 쉽지 않습니다. 북한 외교관 출신의 탈북자 고영환 씨는 해외 북한 식당 접대원들의 생활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고영환: 북한 식당 종업원들은 집체생활을 합니다. 2명이 한 방을 쓰거나 4명이 한 방을 씁니다. 오고갈때도 같이 항상 줄서서 다니죠. 먹는 것도 다 식당에서 해결합니다. 일 끝내고 들어가서는 그날 있었던 특이사항을 써서 보위부 사람이나 보위부 임무를 받은 지배인 또는 부지배인한테 줍니다. 기본적으로 요리하고 판매하고 노래 부르고 청소하는 것 등은 종업원들이 모두 하는 일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임금착취입니다. 북한식당 종업원들은 최저임금도 안 되는 돈을 받고 일하고 있는데요. 한 달에 평균 100유로 정도 받지만 최근 대북제재 등으로 인해 이마저도 못 받고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여기에다 '충성자금'으로 북한에 돈을 보내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행동의 자유가 없다는 겁니다. 이곳에서 생활은 노동과 감시의 연속입니다..
4월 23일 수도인 프놈펜으로 이동해 북한 식당을 좀 더 알아봤습니다. 프놈펜 현지 관광안내자인 최성호 씨(가명)는 "프놈펜도 씨엠립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일부 식당은 중국인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중국 춤과 노래를 부르는 등 영업 전략에도 변화를 주고 있다"고 최 씨는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프놈펜 중심부 쪽에 있는 북한 식당을 가보니 중국인들을 상대로 영업하고 있었습니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중국 단체 관광객들뿐이었습니다. 어림잡아도 100여 명은 돼 보였습니다. 기자가 중국사람인 줄 알고 중국말로 안내했다가 한국말로 답하자 금방 조선말로 바꿔 말했습니다.
기자: 여기 만두도 있죠?
식당 종업원: 네, 메뉴판 뒤쪽에 있습니다. 쟁반 냉면도 맛있습니다.
곧이어 공연이 시작됐습니다. 공연은 중국인들을 위해 대부분 중국 음악과 노래를 불렀습니다.
(공연 현장음)
최성호(현지 관광가이드): 노래 풍이라든지 공연 분위기가 다르잖아요. 또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스타일로 데려온 느낌입니다. 손님 중에는 중국 본토 사람도 있고 대만 사람도 있고 그렇습니다. 저희 옆쪽에 앉은 분은 개인적으로 오신 것 같더라고요.
다음날 점심때가 돼서 다른 북한 식당을 가봤습니다. 모란봉식당이라는 간판이 보였습니다. 최 씨도 이 식당을 잘 몰랐던 모양입니다. 식당 접대원은 "2014년 11월에 개업했다"면서 "자주 찾아달라"며 자신의 명함을 건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는 식당 전체를 구경시켜주기도 했는데요. 식당은 상가 건물이 아니고 2층짜리 주택을 개조해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2층까지 둘러보면서 다른 손님들이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1층 귀빈실에서 사람 소리가 났습니다. 손님인지는 확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식당 종업원: 그 방은 손님이 있습니다.
기자: 여기로 2층 올라가는군요.
식당 종업원: 계단 조심하십시오.
캄보디아 내 북한 식당은 지난해 말까지 8곳에서 영업이 이뤄졌지만, 올해 들어 프놈펜에서만 영업 부진으로 3곳이 문을 닫았습니다. 나머지 식당들도 손님이 크게 줄어 영업난을 겪고 있습니다. 영업을 하면 할수록 적자가 나지만 국가사업이어서 버티고 있을 뿐입니다. 더구나 지난 4월 7일 중국 내 북한식당에서 지배인과 접대원 등 13명이 집단 탈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캄보디아의 북한 식당도 경계 강화에 나섰는데요. 캄보디아는 해마다 한국인 관광객 30만 명이 찾기 때문에 한국인 손님이 없으면 북한 식당은 운영이 불가능한 실정입니다.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재완입니다.